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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지 필화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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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분지.jpg
소설 분지
대한민국에서 계급의식이 법적으로 배척될 근거는 전혀 없으며 반미감정을 어째서 불법으로 단속할 수 있는가? 북괴가 반미 한다고 하여 대한민국 국민이 반미감정을 가져서는 안된다는 논법이 선다면, 지금 한창 반미노선을 걷고 있는 프랑스의 드골 대통령을 추켜올려도 북괴 동조라는 삼단논법이 성립되지 않겠는가? 우리의 민주주의를 스스로 창살 없는 감옥으로 만드는 우(愚)만은 절대로 범해서는 안되겠기에 감히 일언하는 바이다.
조선일보 1967년 5월 26일자 사설 #
1. 개요2. 전개 과정
2.1. 소설 「분지」2.2. 반공법의 굴레
3. 참고 자료

1. 개요

1965년 소설가 남정현이 발표한 「분지」라는 소설을 공안당국이 문제 삼은 필화 사건.

이 사건은 문학작품을 가지고 용공성 시비로 법정까지 간 최초의 사건이다. 이전의 필화 사건은 신문 기사나 논설을 문제 삼았지만 문학작품이 문제가 된 경우는 이 사건이 처음이었다.

2. 전개 과정

2.1. 소설 「분지」

1965년 남정현은 현대문학 1965년 3월호에 소설 하나를 써냈는데 그 소설의 제목은 '분지(糞地)'였다. '똥의 땅'이라는 뜻의 제목을 가진 이 소설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홍길동의 10대손인 '홍만수(洪萬壽)'는 어머니의 영전에서 독백을 늘어놓는다. 먼저 가족사를 이야기하는데 그의 가족은 굉장히 불우했다. 그의 아버지는 항일투사로 독립운동에 뛰어들었다가 행방불명되어 돌아오지 않았다. 그의 어머니는 8.15 광복 이후 태극기와 성조기를 들고 환영대회에 나갔다가 미군에게 능욕당한 적이 있었다. 이 일로 어머니는 홧병에 걸려 세상을 떠나고 만다. 그의 유일한 누이동생인 '분이'는 그가 6.25 때 군복무를 마치고 돌아와보니 미군 '스피드' 상사의 첩이 되어 갖은 성적 학대를 당하고 있었다. 그 또한 어려운 가정형편을 견디다 못해 미국제 물건을 파는 장사를 시작했건만 상황은 나아지기는커녕 더 나빠만 갔다.

이런 현실에 분노하고 있던 그는 어느날 미군 상사의 본처 미세스 스피드가 한국을 방문한 것을 알게 된다. '본국에 있는 제 마누라 것은 그렇지가 않다면서' 스피드가 분이를 성적으로 학대했기 때문에, 만수는 스피드의 본처가 어떤 성적 매력이 있는지를 궁금해한다. 그래서 그녀를 '향미산'으로 데려가 정중하게 옷을 벗을 것을 요구하며 분이가 스피드로부터 겪어야 했던 성적 학대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다. 이에 그녀는 '갓뎀'이라고 외치며 만수의 뺨을 후려치고, 만수는 그녀를 덮친다. 그녀는 끝내 도망가 버리고 사건의 심각성을 깨달은 만수는 도망치기도 전에 미군들이 그를 잡으러 향미산에 들이닥쳤고 이미 만수의 행위는 '미국의 명예에 대한 중대한 위협'이 되어 있었다. 만수 자신도 '해괴한 악의 종자'가 되어 그가 계속 잡히지 않자 아예 향미산을 없앨 요량으로 향미산에서 펜타곤의 핵공격을 앞두게 되었다. 이에 만수는 자신의 삶을 반추하면서 자신의 선조 홍길동의 뜻을 이어 받아 자신의 억울한 한풀이를 하겠다고 다짐하게 된다.

이 소설에서 남정현이 의도한 바는 민족적 자존의 본질과 미국의 오만성이었다.

2.2. 반공법의 굴레

그 때 수사관들은 <분지>는 네가 쓴 것이 아니라 북에서 누가 써가지고 와서 너에게 건네준 것이 틀림없다. 언제 어디서 누구에게 받았다는 이야기만 정직하게 털어놓으면 이곳에서 살아나갈 수가 있으니 어서 대답하라고 다그쳤다. 그러더니 나중에는 너의 작품은 그렇게도 하나같이 북의 대남전략에 편승하여 철저하게 반미·반정부를 선동했느냐고 호통을 쳤다. 소설이란 아기자기한 사랑이야기가 주가 되어야(...) 하는데, 소설마저 일일이 세상일을 꼬집고 나서게 되니 세상이 조용할 리가 있느냐고 큰소리치기도 했다. [1]
<민족자주의 문학적 열망>, 남정현

남정현은 1965년 5월 초에 중앙정보부에 의해 연행되었는데 자신이 쓴 소설의 용공성과 북한과의 관련성을 고백할 것을 요구받았지만 혐의를 부인했고 마침내 7월 7일 정식으로 구속되었다. 검찰은 찬양 및 고무 관련 조항인 반공법 제4조에 의거해서 "남한의 현실을 왜곡 허위선전하며 빈민대중에게 계급 및 반정부의식을 불식 조장하고 (···) 방공의식을 해이케 하는 동시에 반미감정을 조성 격화시켜 반미사상을 고취하여 한미유대를 이간함을 표현"한다고 「분지」와 남정현을 공격했다. 공안당국은 이 소설을 처음부터 반미 감정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용공소설로 봤다.

법원이 구속적부심사 청구를 받아들이면서 남정현은 곧 석방되었으나 검찰은 1년 가량이 경과한 다음해 7월 남정현을 불구속 상태로 기소하였다.

남정현을 변호하기 위해 이항녕, 김두현, 한승헌 변호사가 사건을 맡았으며 남정현을 처음으로 등단시켰던 작가 안수길도 특별변호인 자격으로 사건에 임했다. 변호인 측에서는 당시 한참 떠오르고 있던 젊은 문학평론가 이어령을 증인으로 내세웠고 검사 측에서는 북한에서 온 전향 인사와 전향 간첩들이 증인으로 나왔다. 재판은 1967년 9월 6일부터 시작되었다.
파일:분지 필화사건.jpg
재판을 받고 있는 작가 남정현

재판 내내 검사 측과 변호인 측을 사로잡았던 것은 '소설의 용공성과 반미성, 그리고 그 소설적 표현'이었다. 검사는 「분지」 속의 표현들을 들며 이 소설이 반미 감정과 계급의식을 가졌다고 주장했다. 이에 남정현은 「분지」는 소설이기에 가능성의 세계를 표현한 것이고 우화와 상징의 기법을 사용했다며 항변했으며 북한의 선전에 동조할 의사가 없었다며 자신을 변호했다.

한편 소설에 대한 각 증인들의 반응도 볼 만했다. 검사 측 증인들은 모두 북한에서 온 전향자였기 때문에 검찰의 기소내용을 충실히 따르는 편이었다.
"제목부터 심히 반미적이다." - 공산권문제연구소장 한재덕
"그 내용이 남한에 대한 북괴의 악선전을 대신하고 있다.", "내용 자체가 북괴의 선전과 동일하다. - 남파간첩 최남섭
"철두철미한 공산주의 작가가 최고로 기술을 발휘해서 쓴대도 이 이상일 수는 없을 것이다." - 함흥공산대학 출신 이영명

반면 변호인 측 증인이었던 이어령은 소설적인 기법을 강조하면서 이 소설을 적극 변호했다.
변호인: 이 소설은 반미적인가?
이어령: 이 소설은 우화적 수법으로 쓴 것이므로 친미도 반미도 아니다.
변호인: 현실 그 자체를 그린 것이 아니란 말인가?
이어령: 그렇다. 이 작품에서 한국 여성과 미군의 관계는 미국 문화가 한국 문화에 접촉하는 과정을 비유한 것이다. 계급의식이란 것도 빈부의 차가 어떻게 이루어졌는가에 관해서 작품 안에 언급이 없으므로 단순히 약자에 대한 동정으로 해석된다. 군 복무의식을 해이시켰다는 문제도 지엽적인 상황 설정이지, 그것이 목적이 아니므로 인정될 수 없다.
변호인: 이 작품에서 작가는 어떤 저항성을 보이고 있는가?
이어령: 그에게는 저항성의 일면과 도술, 은둔 등 동양적 풍류사상의 양면성이 있다.
변호인: 이 작품이 북한 공산집단의 주장에 동조했다고 공격을 받고 있는데?
이어령: 달을 가리키라는데 달을 보지 않고 손가락만 보는 격이다. 남씨가 가리키는 달은 주체적인 한국 문화이며 '어머니'로 상징되는 조국이다.
검사: 이 소설을 처음부터 상징으로 보았는가?
이어령: 어머니를 강조한 데서 그렇게 느꼈다.
검사: 작가의 내심까지 알 수는 없지 않은가?
이어령: 작품은 자기가 썼지만 일반에게 발표가 된 뒤에는 작가만의 것이 아니며, 그렇다고 독자가 멋대로 해석해서도 안된다. 작품 속에 담긴 상징성은 그대로 존중되어야 한다.
검사: 나는 이 소설을 읽고 놀랐는데 증인은 용공적으로 보지 않았는가?
이어령: 나는 놀라지 않았다. 병풍 속의 호랑이를 진짜 호랑이고 아는 사람은 놀라겠지만, 그것을 그림으로 아는 사람은 놀라지 않는다. <분지>는 신문기사가 아니다.
검사: 증인은 반공의식이 약해서 이처럼 증언하는 것 아닌가?
이어령: 나의 저술과 나를 비평하는 글들이 그 점에 대한 증거가 될 줄 믿는다.

여러 번의 공판을 거친 후 검사는 남정현에게 징역 7년을 구형했다. 이에 변호인들은 '작가가 북괴에 동조했다고 볼 수 없다'면서 무죄를 주장했으며 특별변호인이었던 안수길은 문학적인 표현과 관련 사례[2]를 들면서 남정현을 변호했지만 1967년 6월 28일 법원은 "소설 「분지」가 우리 민족 주체성의 확립이라는 염원을 소설로 표현"했다면서 북한과의 직접적인 연관성은 부인했지만 "목적이 없다해도 독자에게 반국가단체에 호응하는 감동을 일으키는 걸 인식했다면 유죄"라며 남정현에게 선고유예 판결을 내렸다.

검사와 피고인 모두 1심 판결에 불복하여 항소했지만 서울지방법원 항소부는 쌍방의 항소를 모두 기각했고 남정현도 오랜 법정공방에 지쳐 더 이상의 재판을 원치 않아 상고를 포기[3]하면서 사건이 종결되었다.

3. 참고 자료


[1] 한승헌, <재판으로 본 한국현대사>에서 재인용[2] 존 스타인벡의 <분노의 포도>가 나치의 반미 선전에 활용된 사례와 작가 김동인이 <붉은 산>에서 애국가 가사를 넣었지만 검열을 통과하고 일본어로까지 번역된 사례[3] 유죄 판결이 선고되었으므로 검사에게는 상고권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