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의 前 축구선수 | |
<colbgcolor=#fff72a> 이름 | 오스바우두 벨로주 바후스[1] Osvaldo Velloso Barros |
<colcolor=#008558> 생년월일 | 1908년 8월 25일 |
사망년월일 | 1996년 8월 8일 |
국적 | [[브라질| ]][[틀:국기| ]][[틀:국기| ]] |
출신지 | 코룸바 |
포지션 | 골키퍼 |
신체조건 | 174cm / 74kg |
등번호 | -[2] |
소속팀 | 바히아노 테니스 (1926-1928) 플루미넨시 FC (1928-1935) |
국가대표 | 3경기 / 0골(1930-1931) |
1. 생애
1.1. 클럽
벨로주는 바히아노에서 데뷔하였는데 1927년, 바히아노 주 챔피언십에서 우승을 차지하였다. 1928년 바히아노에서 히우지자네이루로 건너갔고, 플루미넨시에 입단하였다. 이 20살의 젊은 골키퍼는 7년간 92게임을 치르면서 22경기의 클린시트를 기록했다. 하지만 그는 부상으로 인해 27살의 나이에 은퇴해야 했다.은퇴 이후에는 보험업에 종사하기도 하였고, 플루미넨시 클럽의 이사진으로 근무하면서 1951년의 무패 우승에도 공헌하였다.
1.2. 국가대표
벨로주는 1930년부터 1931년까지 브라질 국가대표팀에서 활약하였고 3경기(2실점)의 공식 경기와 1경기(1실점)의 비공식 경기를 치렀다.그는 브라질 대표팀의 초대 월드컵 멤버 중 한 명으로 볼리비아와의 두 번째 경기에서 월드컵과 A매치에 데뷔하였다. 이 경기에서 벨로주는 볼리비아 공격수 호세 부스타만테의 페널티 킥을 막아내는 활약을 펼쳤고, 브라질은 볼리비아를 4대0으로 대파하였다.
벨로주는 프랑스와의 시합에 출전하였고 또 다른 레전드 수비수 도밍구스 다기아와 좋은 호흡을 보이며 3대2의 승리를 이끌었다.
그 외에도 히우 브랑쿠 컵에서 월드컵 챔피언 우루과이를 2대0으로 꺾어 3경기의 A매치 출전 기록을 남겼다.
2. 사생활
1935년 축구계에서 은퇴한 후, 벨로주는 베라 마리아 테이카우와 결혼하였고, 두 아이를 두었다. 59년 간 결혼 생활 이후, 벨로주가 먼저 세상을 떠났고 아내 베라는 2009년에 93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3. 뒷이야기
4. 수상
4.1. 클럽
- 캄페오나투 바히아노 우승 1회: 1927(바이아나이스 테니스)
- 캄페오나투 바히아노 준우승 1회: 1928(바이아나이스 테니스)
- 캄페오나투 카리오카 준우승 1회: 1933(플루미넨시 F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