范文程
1. 개요
범문정은 명청교체기에 활약했던 청나라의 한족 관료이다. 누르하치, 홍타이지, 순치제, 강희제의 아래에서 만주족이 대륙을 장악하는데 큰 공을 세웠고, 청나라에서 한족 최초로 의정대신까지 올랐다. 자는 헌두(憲斗).2. 생애
16세기 초에 만주로 이주한 한족 가정에서 태어났다. 18세에 명나라의 과거 4단계(원시, 향시, 회시, 전시)중 가장 아래 단계인 원시에 합격하여 심양의 생원이 되었으나, 21세때 누르하치가 심양을 점령하자 포로가 되었다. 누르하치는 포로가 된 범문정을 심문한 후, "이 선비는 재주가 대단하군"이라고 감탄할 정도로 감명을 주었다고 한다. 이후 그는 누르하치의 군사가 되었고, 만주족을 위해 여러 계책을 내어 명나라 군대를 격파하는데 일등공신이 되었다. 누르하치가 죽은 후에도 홍타이지, 순치제, 강희제를 연이어 섬겨 청나라 초반의 통치를 정비했다.범문정은 숭정제의 가혹한 벌을 두려워하던 명나라 측 장수들을 설득해 청나라 편으로 전향시키는 데 일조했으며, 병자호란에도 참군해 용골대와 함께 조선-청나라 교섭에도 관여하였다. 이후 조선에서 지어 보내온 삼전도비 비문을 심사하는 데도 간여했다고 한다.
범문정은 누르하치에게 한족의 문화를 중시하고 명나라의 항장들을 우대해서 청나라편으로 등용하고, 군사의 규율을 엄정히 하여 민폐를 끼치지 말고 한족 기득권층의 이익을 인정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누르하치나 홍타이지는 그대로 그의 계책을 따랐고, 결과적으로 만주족은 한족 기득권층 향신의 지지를 받아 대륙을 장악하게 된다.
이런 공로로 대학사, 한족 최초로 의정대신의 직위를 받게 되며, 사후 강희제는 원보고풍(元輔高風)이라는 서액을 내려 그의 업적을 기렸다. 이후 건륭제는 명청 두 조정을 섬긴 신하들의 열전인 "이신전"[1]을 지어서 명나라에서 출사했다가 청나라로 편을 바꾼 홍승주를 비롯한 여러 신하들을 조롱했으나, 범문정은 직접 그 명단에서 빼면서 "범문정은 청나라에 출사할 당시 고작 생원에 불과했으니 이신이 아니다."라고 옹호해줄 정도였다.
3. 가족
증조부는 명나라 정덕제 때 진사가 되었다.조부는 지휘동지를 지냈다.
아내가 여러명인데, 그중 하나는 청태종이 하사한 여인이다.
아들은 범승음, 범승모, 범승훈, 범승빈, 범승열, 범승조가 있다.
아들 범승음은 도통을 지냈다.
차남 범승모는 과거에 급제하여 절강순무, 복건총독을 지냈다. 삼번의 난때 반란을 일으킨 번왕의 한명인 경정충에게 포로로 잡혀 2년간 억류생활을 하다가 끝내 처형당했다. 이후 삼번의 난을 진압한 강희제는 그에게 충정의 시호를 내렸다.
3남 범승훈은 음서로 관직에 나갔고 병부상서를 지냈다.
4남 범승열은 병부시랑, 호부시랑, 예부시랑을 지냈다.
범승모의 아들 범시숭은 음서로 관직에 나갔고 병부상서를 지냈다.
범승훈의 아들 범시역은 호부상서, 공부상서를 지냈다.
범승빈의 아들 범시첩은 순무, 도통, 제독을 지냈다.
범문정의 손자 범시수는 공부상서, 형부상서를 지냈다.
범문정의 손자 범시기는 음서로 관직에 나갔고 공부시랑, 호부시랑, 예부시랑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