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01 16:20:45

번시 탄광 참사



주의. 사건·사고 관련 내용을 설명합니다.

이 문서는 실제로 일어난 사건·사고의 자세한 내용과 설명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1. 개요2. 사고 내용

1. 개요

1942년 4월 26일. 만주국 랴오닝성에 있었던 번시후 탄광에서 일어난 참사.

2. 사고 내용

랴오닝성은 예전부터 철광으로 유명했던 지역이었다. 일본에서도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고, 러일전쟁에서 승리 후 만주로 나아간 일본은 랴오닝성에 광산을 차렸다. 차리는데는 오쿠라(大倉) 재벌이 앞장 섰다. 이렇게 번시 탄광, 일본 이름으로는 혼케이코 탄광이 만들어졌다.

번시 탄광의 노동환경은 열악했다. 만주국이 세워진 뒤에는 더더욱 열악해졌다. 일본은 광부들을 학대하다시피 했다. 하루 12시간 넘게 일하는 건 기본이고, 굶은 채 일하는 광부들도 많았고, 맨발로 걸어다녀야 했고, 음식과 물이 오염되어 안에서 장티푸스콜레라가 퍼지기도 했다. 사람이 부족하면 항일운동하다가 잡힌 중국인들을 강제로 수용시켰다. 거기다 일본군이 근처를 지키고 있기에 도망가는 일도 불가능했다. 이렇게 이곳에서 학대에 가까운 노동을 한 중국인은 연인원 850만명에 달했다.

사고 당일 오전 11시 30분, 지상 변압기가 고장나는 바람에 광산 전체에 전기 공급이 끊겼다. 환풍기도 고장난 마당에 일을 제대로 할수가 없었으나 일본은 광부들을 계속해서 일하게 했다. 그러다 오후 2시 5분, 전압기가 복구되고 환풍기가 돌아갔다. 그러면서 내부에 쌓여있던 메탄가스와 분진에 폭발을 일으켰다.

일본에선 불을 끄기 위해 아직 사람들이 있음에도 환풍기를 전부 끄고, 입구까지 막았다. 거기다 희생자 유가족들이 광산에 접근 못하도록 광산 주변에 전기 울타리까지 설치했다.

시신이 전부 수습되기 까지는 10일이나 걸렸다. 일본에선 사망자를 겨우 34명이라 발표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1500명 넘게 사망했다. 상당수의 시신은 갱도 입구에서 발견됐고, 사인은 일산화탄소 중독이었다. 이들의 시신은 제대로 된 장례도 없이 매장됐다. 사고는 광산 사고 역사상 가장 많은 사람이 사망한 사례로 남았다.

일본은 1달 뒤 위령비를 세웠다. 하지만 희생자는 1,327명으로 기입했다. 이 외에도 일본에서 최대한 관련 자료를 감췄고, 중국에서 제대로 조사를 하지 않는 바람에 해당 참사는 규모에 비해 관련 자료가 적게 나오는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