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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명승 제90호 한라산 백록담(漢拏山 白鹿潭)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토평동 산15-1에 있는 한라산 정상 분화구에 있는 화구호.
한라산 정상에 위치하고 있는지라 남한에서 가장 높은 산정 화구호로 침식에 거의 영향을 받지 않아 순상화산의 원지형이 잘 보존되어 학술 가치가 크고 빼어난 경관을 보여주는 화산지형이다. 또 한겨울 쌓인 눈이 여름철까지 남아 있어 녹담만설(鹿潭晩雪)이라는 영주 12경 중의 하나로 자연경관적 가치가 매우 뛰어나다.
명칭은 흰 사슴이 이곳 물을 마셨다는 전설에서 유래되었는데 실제로 한라산에는 사슴이 많이 산다.[2] 물론 흰색은 아니지만. 옛날 신선들이 하늘에서 내려와 이 백록을 타고 놀았다는 전설도 있다.
2. 역사 및 지리적 특성
해발 고도는 1,947m로[3] 남한에서 제일 높은 산인 한라산의 정상에 위치해 있으며, 면적 약 330,000㎡, 둘레 약 1,720m, 동서길이 약 600m, 남북길이 약 400m, 표고[4] 약 1,841.7m, 깊이는 약 108m인 순상화산의 화구호이나, 저수량은 많지 않다. 최초로 형성된 시기는 신생대 제4기 초로 추정되고 있다.[5]그리고 한국지질자원연구회에 따르면 백록담 분화구가 최소 1만 9천년 이전에 형성된 것으로 조사됐다.#
천연기념물 제182호로 지정된 한라산 천연보호구역의 일부로서 보호되고 있다.
백두산에 천지가 있다면 한라산에는 백록담이 있다는 식으로 쌍으로 외운다.[6] 그러나 둘 다 한반도의 유명한 화산에 있다 뿐이지 지질학적 특성은 상당히 다르다. 백록담과 같은 화구호는 단순히 분화구에 물이 고인 것이고, 천지와 같은 칼데라호는 분화 과정에서 함몰된 지형에 물이 고인 것이다. 그냥 산의 윗부분이 터지기만 했다면 화구호, 터진 후 주변 지형과 함께 주저앉았다면 칼데라호이다. 그렇다보니 천지의 규모가 백록담에 비해 압도적으로 크다. 실제로 2016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지구과학Ⅰ 과목에서 이를 가지고 낚시를 걸었다.
비로 인해 일시적으로 물이 꽉 차면 이런 모습이다. 한라산 꼭대기는 비가 제대로 오면 수백mm~1000mm씩 쏟아지기 때문에 유의미할 정도로 수위 변동이 발생한다.
3. 전설
백록담의 생성 과정에 대한 전설에는 여러 버전이 있다.설문대할망 버전에서는, 섬을 만든 설문대(선문대) 할망이 한라산을 의자로 쓰려고 했는데 뾰족해서 꼭대기만 잘라 던져버리면서 백록담이 생겼다고 한다. 그리고 설문대 할망이 던져버린 부분은 제주도 서남쪽에 있는 산방산(山房山)이 되었다고 한다. 산방산은 해발 345m밖에 되지 않는, 용암이 굳어 생긴 작은 돌산이다. 그런데 산방산 밑둘레 길이가 절묘하게 한라산 정상 지름과 얼추 비슷하게 맞아떨어진다고 한다. 실제로는 산방산이 1.2배 정도 크긴 한데, 항공사진에서 보면 정말 절묘하게 닮았다. 게다가 돌의 재질이 한라산 정상부와 마찬가지로 조면암이다. 한라산에서 잘려나갔다는 전설이 생긴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안덕면 화순리(安德面 和順里)에 둥그스름한 바윗덩어리로 이루어진 산방산(山房山)이 있다. 그 모습이 마치 한라산의 봉우리를 옮겨다 놓은 듯해서인지 이 산은 본래 한라산의 봉우리였다고 전한다.
옛날 어떤 사냥꾼이 한라산에 사슴을 잡으러 갔다. 활을 메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는데, 사슴은 안 잡히고 한라산 정상에까지 올라가게 되었다.
한라산은 하도 높아 하늘에 닿을 만큼 했다. 사냥꾼은 마침 사슴을 한 마리 발견하여 급히 활을 치켜들고 쫓았다. 그때 아차 실수하여 사냥꾼은 활 끝으로 옥황상제의 엉덩이를 건드리고 말았다. 옥황상제는 화가 발칵 났다. 곧 한라산의 봉우리를 뽑아서 서쪽으로 내던져 버렸다. 그 봉우리가 날아와 앉은 것이 지금의 산방산이 되고, 봉우리를 뽑아 버린 자국은 움푹 패어져서 백록담(白鹿潭)이 이루어졌다 한다."
- 1960년 10월 5일 대정읍 대정 고을 임태흥(남성, 82세) 제공 (현용준 지음, 『제주도 전설』, 개정판, 3쇄, 고양, 서문당, 2016, p.15.)
옛날 어떤 사냥꾼이 한라산에 사슴을 잡으러 갔다. 활을 메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는데, 사슴은 안 잡히고 한라산 정상에까지 올라가게 되었다.
한라산은 하도 높아 하늘에 닿을 만큼 했다. 사냥꾼은 마침 사슴을 한 마리 발견하여 급히 활을 치켜들고 쫓았다. 그때 아차 실수하여 사냥꾼은 활 끝으로 옥황상제의 엉덩이를 건드리고 말았다. 옥황상제는 화가 발칵 났다. 곧 한라산의 봉우리를 뽑아서 서쪽으로 내던져 버렸다. 그 봉우리가 날아와 앉은 것이 지금의 산방산이 되고, 봉우리를 뽑아 버린 자국은 움푹 패어져서 백록담(白鹿潭)이 이루어졌다 한다."
- 1960년 10월 5일 대정읍 대정 고을 임태흥(남성, 82세) 제공 (현용준 지음, 『제주도 전설』, 개정판, 3쇄, 고양, 서문당, 2016, p.15.)
옥황상제가 들어가는 버전도 있다. 사냥꾼이 사슴을 발견하여 잡으려고 활을 쐈는데, 사슴은 피하고 그게 하필 옥황상제의 엉덩이를 맞추는 바람에, 옥황상제가 분노해 한라산의 뾰족한 부분을 냅다 던져서 백록담이 만들어졌다고 한다. 또는 옥황상제가 사냥꾼을 발로 차버려서 패여 날아간 자국이 백록담이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백록담 전망대에 있는 안내 표지판에는 옥황상제와 선녀들이 술을 먹었던 장소라고 쓰여 있다.
4. 관람
2020년 2월 1일부터 성판악 및 관음사코스에 한해서 등반예약제가 시행되어 한라산 등반 코스 중 관음사 코스와 성판악 코스로만 올라갈 수 있다. 등반 예약은 여기서 하면 된다.[7] 초보자의 경우는 성판악 루트를 추천. 관음사 루트는 성판악에 비해 험한 지형이 많아 초보자가 올라가기에는 무리가 있을 수 있다. 특히 내려갈때는 올라가느라 다리가 아파 내려가기 힘들고 미끄러운 돌이 많아 부상의 위험도 있다.이전에는 백록담 호수까지 내려갔다 와서 사진을 찍는 사람도 많았으나, 1978년 9월 1일부로 백록담 보호 및 등산객 안전을 위해 울타리로 통제하고 1986년 4월 1일부로 백록담 호수로 가는 등산로도 폐쇄했으므로 현재는 백록담을 주변에서 지켜볼 수 밖에 없다. 과거 백록담의 무분별한 방문으로 호수 면적이 감소하고 백록담의 지반이 약해져 면적이 감소하는 등 인위적인 침식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아울러 일부 지역은 지반이 크게 약화되어 자칫하다간 붕괴와 산사태가 생겨 사망할 위험도 있기 때문이다.[8] 이로 인하여 백록담을 실제 눈으로 가까이가서 보는 건 사실상 힘들다. 안개와 같은 기상 문제로 기껏 정상에 와도 볼 수 없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만약 자신이 백록담 주변을 등산해서 맑은 하늘에 깨끗한 풍경으로 백록담을 구경했다면 운이 매우 좋은 거다. 실제로 2015년에는 계절과 상관없이 맑은 날이 지속되어 백록담을 쉬이 볼 수 있었는데, 이때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온 고등학교 학생들이 백록담을 매우 깨끗이 보며 좋아하자 따라온 현지인이 '큰 행운' 이라고까지 언급했다.
또한 백두산 천지하고 다르게 물 자체가 없는 날도 많다. 기상 운이 따라줘야 볼 수 있는건 천지나 백록담이나 마찬가지인데 백록담은 거기에 물이 있는지 없는지도 시기가 중요하다.
흔한 경우는 아니지만 한라산 주변에서 탈출하거나 유기된 개들이 야생화된 상태로 국립공원 내에 떼 지어서 출몰하는데 가끔 산 정상까지 올라와서 백록담 근처에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주로 야간이나 새벽 시간에 보이고 국립공원이라 관리도 하는지라 볼 확률은 매우 낮지만 주의가 필요하다.
조선 시대에도 한라산을 등산하면 백록담을 찍고 오는 등 백록담 관람을 많이 했다. 한반도 본토의 산은 그 놈의 호랑이 때문에 등산 한 번 하려면 각오를 해야 했지만 제주도는 그런 것도 아니다.[9] 기록으로 그 여정을 남겼으며, 가장 대표적인 것은 최익현의 《유한라산기》. 특히 백록담에서의 감상 부분이 2015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국어 B형에 나와 많이 알려져 있다. 현대 시에서는 정지용이 남긴 〈백록담〉이 유명하다.
2023년 8월 3일 오전 정상에서 '브로켄(Brocken)현상'이 목격됐다. #
[1] 남쪽에서 바라본 사진이다. 여담으로 위 사진의 백록담 바로 뒤에 한천이 있으며, 남벽 바로 아래론 영천이 있다. 또한 실질적 정상인 서릉에서 더 서쪽으로 가면 광령천이 있다.[2] 오늘날 제주도에서 발견되는 사슴은 전부 꽃사슴 혹은 와피티사슴과 교잡된 꽃사슴의 잡종으로 관광, 종교적 목적으로 방생하거나 사슴농장을 탈출한 개체의 후손이다. 과거에는 한라산에 사슴이 대거 서식했고 제주목사의 사냥 목록에 사슴이 들어가기도 했지만 노루를 제외하면 20세기 초에 멸종하였다.[3] 원래는 1,950m로 알려져 있었으나 정밀조사로 1,947m로 정정하였다.[4] 바다의 면이나 어떤 지점을 정하여 수직으로 잰 일정한 지대의 높이.[5] 한라산은 신생대 제3기 말에서 제4기 초에 분출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6] 간혹 백두산에 백록담이 있는 걸로 잘못 외우기도 한다.《푸른 거탑》 시즌 1 37화 〈계급이 깡패다〉 에피소드에 김재우가 백두산 백록담 괴물 이야기 하다가 이용주가 김재우의 무식 퍼레이드에 답답해하다 결국 백두산은 천지라고 정정하자 '백'두산이니 '백'록담 드립을 쳐서 완전히 폭발했다. 사실 이 드립은 1988년 간행된 유명 어린이 소설 "5학년 3반 청개구리들"에 나오는 드립이다. 푸른거탑 제작진 및 작가가 딱 저거 보고 컸을 세대이긴 하다.[7] 원래는 서귀포 돈내코 코스로도 올라갈 수 있었지만 백록담 훼손과 붕괴 위험 문제가 있어 윗세오름으로 가는 쪽으로 코스가 변경되었다.[8] 지금도 눈이나 비가 많이 내리면 무너져 내리는 사고가 발생한다. 2021년 5월에도 200km²가량이 무너진 적이 있는데, 현재의 과학기술로는 접근이 불가한 지역이라 현재도 잔해가 방치되어 있다.[9] 현대 일본에서는 비슷한 이유로 일본 본토 산에는 곰이 나오기 때문에 곰이 없는 섬의 산을 선호하는 일이 종종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