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color=#fff><colbgcolor=#0047a0> | |
출생 | 1885년 11월 5일 |
전라남도 순천 | |
사망 | 1946년 3월 28일 |
묘소 | |
본관 | |
가족 | |
학력 | |
서훈 | 대통령표창 |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2. 생애
1885년 11월 5일 전라남도 순천군(順天郡) 낙안면(樂安面) 하송리(下松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당시 농업에 종사하였으며, 낙안면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1919년 4월 13일 2시 낙안 읍내 서문 밖에서 유흥주(劉興柱)와 김종주(金鍾冑)가 “우리 동지들은 오늘이 때마침 낙안읍 장날이므로 이를 기회로 삼아 장터에서 독립 만세를 외치고 우리 동포가 함께 일어나서 잃었던 국권을 되찾자”라고 연설하자 이에 찬동하였다. 김종주 등이 직접 만든 태극기를 장대에 매달고 낙안읍성 안으로 행진하자 함께 하였다. 이때 성문에서 보초를 서던 일제 헌병들이 총검으로 위협하자 이를 빼앗으려고 강하게 다투다 머리에 부상을 입었다. 이날 만세시위에는 150명 정도가 참가하였는데, 이때 동지들과 함께 붙잡혔다.
1919년 5월 29일 광주지방법원 순천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 관리집행 방해로 징역 6월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같은 해 6월 30일 대구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출옥 후, 1924년 순천군 주암면(住岩面) 농민대회 평의원으로 활동하는 등 지역의 사회 운동에 참가하였고, 1928년부터 1934년까지 순천군 주암면장을 역임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