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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페르시아어: بندرلنگه영어: Bandar Lengeh
이란 남부 호르모간 주의 도시. 반다르아바스에서 서남쪽으로 120km, 라르와 게라쉬에서 동남쪽으로 110km 떨어진 해안에 위치한다. 인구 3만의 소도시지만 호르무즈가 쇠퇴한 후 18-19세기 이란 연안의 해상 무역 거점으로 번영하였다. 특히 걸프 지방 특산물인 진주의 최대 생산지 중 하나였으나 1921년 대공황과 양식 진주의 출현 후 반다르아바스에 밀려 쇠락하였다. 주민 중 50%는 라르인, 20%는 아랍인으로 구성되어 있다.
구도심에는 유서 깊은 모스크와 저수조가 많고, 서남쪽 외곽에 반다르렝게 국제공항이 있다. 도시 동쪽에는 아자드 이슬람 대학, 서쪽에는 파얌누르 대학 반다르렝게 캠퍼스가 위치한다. 거의 연담 도시화가 된 동북쪽의 콩 (반다르 콩)은 17세기 포르투갈이 호르무즈를 상실하는 후 상관을 설치한 곳으로, 포르투갈 시대의 요새 유적과 옛 저택 등이 남아있다. 구도심 건물들은 바드기르 (전통 냉방 장치)들이 굴뚝처럼 솟아있어 인상적이다.
2. 역사
말리크 빈 아바스 모스크 | 페크리 저택 |
고대의 지명은 고가나였고, 아케메네스 제국 시절부터 페르시아 만의 주요 항구 중 하나로 성장하였으나 사파비 왕조기에는 어촌에 불과하였다. 그러다 잔드 왕조 들어 '진귀한 항구'란 의미인 반다르렝게라 명명되었고, 라레스탄 지역의 외항으로 개발되었다. 카자르 왕조기 반다르렝게는 오만, 예멘, 인도 등과 교역하는 국제 무역항으로 성장하였다. 당시 (대부분 하인을 둔) 5천 가구가 거주하였고, 360개의 저수조가 설립되었다. 19세기 후반 영국, 프랑스, 독일, 벨기에 등이 영사관을 두었고 근대적인 학교가 세워졌다. 하지만 20세기 초엽 카자르 왕조의 입헌혁명 후 도입된 새로운 관세 정책과 부패한 관리들 때문에 도시는 점차 쇠퇴하였고, 주민들은 인근 지역 혹은 바다 건너 아랍 걸프 해안으로 망명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