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6-07-26 13:10:46

박제민(1919)

파일:박제민.jpg
<colcolor=#fff><colbgcolor=#0047a0> 창씨명 하루야마 준이치(春山淳一)
출생 1919년 7월 24일
경상남도 울산군 상남면 명촌리
(현 울산광역시 울주군 상북면 명촌리)
사망 1943년 10월 6일
대구형무소
상훈 건국훈장 애국장
1. 개요2. 생애

1. 개요

대한민국독립유공자.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박제민은 1919년 7월 24일 경상남도 울산군 상남면(현 울주군 상북면) 명촌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대구사범학교에 재학 중이던 19441년 2월 항일결사 연구회(硏究會)에 가입하여 농업부를 책임 맡아 활동하였다. 연구회는 1941년 1월에 임굉·이태길·장세파 등 대구사범학교 학생들이 민족의식 앙양과 독립을 위한 실력배양을 목적으로 조직한 비밀결사였다. 이들은 당시 국제정세를 살펴 일제가 곧 패망하리라는 것을 예견하고 다가올 독립에 대비하여 각기 전문 분야의 최고권위자가 될 것을 다짐하였다.

또한 비밀엄수, 매월 10일 연구발표와 하급생지도 및 동지포섭 등의 방침을 정하고 1941년 2월부터 동년 3월까지 6회의 모임을 가졌다. 그런데 회원들이 졸업을 하게 되자, 이들은 장기적인 사업계획을 구상하였다. 즉 졸업 후 각기 국민학교 교사로 부임하게 되면 우수한 아동들에게 수재교육을 실시하여 독립에 필요한 인재를 양성하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그와같은 현지의 활동상황 및 성과를 매월 1회 사무원에게 보고하도록 하고 이렇게 보고된 상황은 취합하여 다시 전회원에게 배부하기로 하였는데 이때 우송방법은 일제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 공문을 가장하기로 했다.

그리하여 그는 1941년 3월 대구사범학교를 졸업한 후 경주에 소재한 하서공립국민학교(현 경주 양남초등학교) 교원으로 근무하면서 학생들에게 민족의식을 앙양시키며 연구회의 사업을 수행하였다. 그런데 1941년 7월, 대구사범학교 윤독회의 〈반딧불〉이 일본 경찰의 손에 들어가게 됨에 따라 대구사범학교 비밀결사의 전모가 드러나게 되었다. 이로 인해 체포된 그는 미결수 신분으로 2년여 동안 혹심한 고문을 당하다가 1943년 10월 6일 옥사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77년 박제민에게 건국포장을 추서했고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