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0-27 10:21:17

박보영(목사)

마가의 다락방 원로목사
박보영
파일:parkboyoung.jpg
출생 1952년 9월 15일 ([age(1952-09-15)]세)
소속교단 한국독립교회선교단체연합회
학력 중앙대학교 (의학 / 학사)
협성대학교 (신학 / 석사)
약력 마가의 다락방 원로목사
인천방주교회 원로목사
전 안산 시온성교회 담임목사
가족 아버지 박장원(전 인천방주교회 담임)
할아버지 박용익(전 종교교회 담임)
좌우명 사랑할 수 없는 것을 사랑하라
용서할 수 없는 것을 용서하라
변명하지 마라
가장 낮은 곳에서 섬기라
별명 고아들의 아버지
깡패들의 아버지
두목님
대장님
멘토 목사님

1. 개요2. 생애
2.1. 어린 시절2.2. 회심2.3. 안성 시온성교회2.4. 인천 방주교회
3. 설교 정리
3.1. 개요3.2. 2015.09.28 마가의다락방교회 (추석집회)3.3. 2015.10.18 만모스은혜교회3.4. 2021.12.15 마가의다락방교회 성탄예배3.5. 2022.11.20 필그림선교교회 주일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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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개신교 목회자이다. 인천광역시 마가의다락방교회와 인천방주교회 원로목사이다. 잘나가던 피부과 의사로 살다가, 39세의 나이에 극적으로 예수님을 만나 회심하여 가난하고 병든 자들을 위해 살아가고 있는 간증으로 유명하다. 이러한 내용을 담은 <내가 만난 하나님>이라는 설교 시리즈는 수많은 개신교인들이 반드시 들어야 할 고전 설교로 널리 알려져 있다.

평소 회개, 복음, 십자가, 순종을 주제로 예수님을 따라 좁은 길을 걷는 성도의 삶을 강조한다.

2. 생애

2.1. 어린 시절

박보영 목사는 목회자의 집안에서 태어났다. 할아버지 박용익 목사는 일제강점기 감리교의 성자로 불리며, 방배동 등지에서 조용하게 길거리 전도를 하는 인생을 살았다. 특히 분쟁이 있는 교회의 담임목사로 자주 부임했는데, 그 때마다 가마니를 들여놓고 생명을 건 금식을 해서 성도들이 결국 화해를 하도록 만들었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아버지 박장원 목사는 인천에서 목회를 했는데 그 교회도 분쟁이 있는 교회였다. 박보영 목사는 어린 나이에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면, 성도들이 저렇게 싸울 수 없을 것이다"라는 결론을 내리고, 교회를 떠나게 되었다.

2.2. 회심

박 목사는 잘나가는 피부과 의사로 세속의 달콤함에 살면서 많은 부와 명예를 누리게 되었다. 하지만, 부인과 헤어졌고, 각종 스트레스에 시달리던 그는 끝내 심장마비 증세를 일으켜 입원했다. 1년 여의 투병생활을 하던 1990년 어느 겨울날 마가의 다락방에 방문한 그는 놀라운 체험을 한다.

자신에게서 일어난 놀라운 체험으로 완전히 다른 인생을 살게 됐다. 아픈 가슴을 움켜쥐고 눈물로 기도를 드리고 있을 때, "너는 내 종이라. 내가 너를 치료했다"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된다. 이후 심장은 멀쩡해졌고, 그는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경험한 후 잘못했다고 빌고 또 빌었다.

1991년, 곧바로 협성대학교 신학대학원에 입학했고, 그의 전재산은 교회신학교에 기증했다. 그리고 용산역 앞 작은 쪽방에서 신학생으로 다시 공부를 시작한다.

신학교 졸업 후 아무도 불러주는 곳이 없자, 조치원 산 속에 상여 보관소 옆 작은 판잣집에 들어가 2년 동안 기도와 성경을 읽게 된다. 그때 죄인 중의 괴수인 자신을 구원해주신 하나님께 날마다 회개하는 날들을 보냈다.

2.3. 안성 시온성교회

그리고 안성의 우범지역에 시온성 교회를 개척했다. 교회를 개척했지만 1년여 동안 교인 없이 목회를 하던 중, 어느 전도사님의 배려로 11평짜리 작은 아파트를 빌려 쓰게 된다. 그럼에도 교회에서 자는 날이 많았지 별로 아파트에 들어가 지내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날 아파트를 우연히 방문했다.

빈집에 들어 온 10대 후반의 3명의 강도를 만나게 된다. 그런데 이상하게 저 아이들과 예배드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아이들이 도망가지 못하게 아파트 문을 잠그고 아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려 하자, 당시 아이들은 본드환각제로 취해 있었던 상태였기 때문에 칼을 꺼내 박 목사를 찌르려 했다고 한다. 이러한 긴박한 상황에서 박 목사는 자신을 위협하는 아이들에게 “나는 용서받은 죄인이고 너희는 용서 받을 죄인인데 예수 믿고 용서받자”며 복음을 전했다. 아이들을 밤새 붙들고 예수님이 이 땅에 왜 오셨는지를 말해주었다.

다음날 박 목사는 아이들과 헤어져 교회로 돌아왔는데 수요예배 시간에 교회 문이 열리더니 바로 그 강도였던 3명의 아이들이 친구들 15명을 데리고 왔다. 그 일을 계기로 박 목사는 그때부터 길에 버려진 아이들, 구걸하는 아이들, 강도였던 아이들, 노숙자들과 교회에서 살기 시작했다. 그런데 문제는 아이들에게 아무리 말씀을 가르치고 성경을 암기시키고 새벽기도를 드리도록 해도 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박 목사는 “그 때 아이들 붙들고 울기도 참 많이 울었다”고 고백했다. 박 목사의 헌신에도 아이들은 여전히 도둑질을 계속했고 도둑질 한 돈으로 창녀촌과 지방을 전전하며 살다가 돈이 떨어지면 교회로 오기를 반복했다. 그러면 박 목사는 도둑질 한 아이들을 앞세워 일일이 피해를 입힌 집을 찾아가 용서를 빌었고 때로는 술에 취한 주인에게 매를 맞기 일쑤였다.

그런데 사과를 하고 나오는데 아이들은 심각하지 않은 듯 자기들 끼리 웃고 농담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날도 여전히 아이들의 도둑질에 대해 사과하고 돌아오던 박 목사는 교회에서 한 아이를 세워놓고 파이프 막대기로 힘껏 때렸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막대기를 들려주며 “너희들이 나를 10대씩 때려라. 대신 9대 때렸다가 마지막 1대라도 살살 때리면 다시 때리게 할 테니 힘껏 때려라” 고 말했다. 두 아이에게 20대를 맞았는데 박 목사는 너무 아파서 마음속으로 주님께 이렇게 기도했다. “주님 너무 아파요 더 못 맞겠어요.”

박 목사는 세 번째 아이가 죄송하다며 때린 매에 허리 밑 꼬리뼈를 맞고 소리를 지르며 쓰러져 정신을 잃게 됐다. 그래도 다시 정신을 차리고 매를 맞았고 그렇게 80대를 맞았다. 그런데 주님께서 기도를 들어주셔서인지 나중에는 하나도 아프지 않았다. 박 목사는 그 일 때무에 거의 한달 동안을 누워서만 지내야했다. 지금도 그 후유증으로 허리가 안 좋아 박 목사의 의자에는 항상 뜨거운 팩이 놓여있다.

그런데 파이프 사건 이후로 아이들이 변화되기 시작했다. 더 이상 도둑질도 하지 않았다. 아이들에게 “왜 나를 때리고 나서 너희들이 변화되었냐”고 물으니 “세상이 다 가짜인 줄 알았는데 매를 맞고 뒹구는 목사님 모습을 보고 깨닫게 됐다”는 답이 돌아왔다.

박 목사는 항상 적게는 서너명, 많게는 열다섯명 정도의 ‘버림받은 이들’과 살았다. 라면 하나에 한솥가득 물을 끓여 국물만 먹기 일쑤였다. 가난하고 추운 생활을 견디지 못한 이들은 다시 도둑질하고 교도소로 갔다. 박 목사는 새벽에 아이들을 끌어안고 기도하고 면회가는 게 하루 일과였다.


교회는 간혹 피투성이가 됐다. 형사들이 들이닥쳐 때로는 난투극까지 벌어졌기 때문이다. 어떤 친구는 설교할 때 바로 코앞까지 얼굴을 들이대고 "힙합 바지 언제 사줄거야?" 하며 예배 시간을 공포로 몰아넣기도 했고, 또 다른 아이가 박 목사의 와이셔츠와 신발을 훔쳐가는 통에 속옷만 입고 예배를 인도한 적도 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 목사는 하나님의 뜻대로 살았다.

박보영 목사님의 설교를 들으면 목사님의 관점에서 아이들과 지낸 시각으로 들을 수 있지만 유튜브에 정택윤 선교사님 간증을 듣게 되면 아이들의 관점에서 목사님의 모습을 들을 수 있다.

2.4. 인천 방주교회

박보영 목사는 경기도 성남시에 위치한 선한목자교회 담임목사로 알려진 유기성 목사의 사모와 사촌지간이다. 유 목사는 안성에서 목회하고 있는 박 목사를 목사들만 모인 집회의 강사로 초청했고, 그 자리에서 박 목사는 고아와 깡패들과 함께 살아온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그 자리에서 박 목사의 간증을 듣고 많은 목사들이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회개하는 놀라운 일이 일어난다.

박 목사는 선교노숙자 구제에 힘쓰며 성도들이 말씀에 순종하도록 권면하고 훈련하고 있다. 그의 제자 목사들은 인천방주교회, 필그림교회, 필그림선교교회, 길튼교회, 인천기쁨의교회 등 형제교회에서 박 목사의 가르침을 따라 회개복음을 강조하는 목회를 하고 있다.

3. 설교 정리

3.1. 개요

박보영 목사의 설교는 성경 본문 말씀을 강해하는 설교보다는 자신이 성경말씀을 삶으로 살아내는 것을 이야기로 풀어주는 설교를 한다. 그래서 듣다 보면 부담 없이 교회 다니는 할아버지가 옛날 이야기를 해주는 느낌으로 들을 수 있다. 삶으로 살아낸 모습을 이야기 해주기 때문에 설교 말씀을 들으면 도전이 많이 된다.

목사님의 설교 내용에서는 산상수훈(마태복음5,6,7장)을 매우 중요시 여기는 것을 알 수 있다.

3.2. 2015.09.28 마가의다락방교회 (추석집회)


박목사는 자신의 인생에 큰 영향을 준 두 사람인 자신의 할아버지[1]와 자신의 멘토를 소개했다.
그는 할아버지의 유언을 소개하며 이것이 자신의 목회에 큰 영향을 미쳤다 언급했다.

1) 사랑할 수 없는 것을 사랑해라
2) 용서할 수 없는 것들을 용서해라
3) 변명하지 말고 주님을 의지하라
4) 버려진 사람들과 함께 살아야 한다.

두 번째, 자신이 멘토라고 부르는 사람이며 그도 박목사에게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했다.

1) 성자의 길을 걸어가야 한다.
2) 겸손하게 낮아진 길을 걸어가야 한다.
3) 다 나눠주며 살아가야 한다.

박보영 목사는 그에게 진짜로 사는 삶을 배웠다 말했다.

3.3. 2015.10.18 만모스은혜교회

박목사는 자신이 안성에 있을 때 자신의 생일 때 노숙자,깡패,함께 사는 아이들이 목사님의 깜짝 생일파티를 했다며 밝혔다. 이 때 그들이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찬양인 내영혼이 은총 입어를 불러 주고 가장 좋아하는 말씀 요한복음 3장 16절을 읽어주었다고 하며 좋아했다.

3.4. 2021.12.15 마가의다락방교회 성탄예배


성탄절의 의미에 대해 이야기하며 성탄절은 우리가 기뻐하고 선물을 주고 받고 트리를 만들고 술먹고 타락하는 시간이 아니라고 설교한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는 성탄절은 주님 앞에 내 더러운 죄들을 다 토해내고,내 삶을 바꾸는 결단을 하고. 내가 당연히 가지 못했던 그 길을 걸어가는 것임을 밝혔다.

3.5. 2022.11.20 필그림선교교회 주일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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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 언급한 박목사의 멘토가 이야기해준 어려운 일을 해결하는 방법이 나온다.[2]
그것은 어려운일이 생길 때 감사와 기도로 새끼줄을 꼬아 하늘로 닿게 하라는 것이다. 그러면 모든 어려운 일이 감사의 조건으로 바뀌게 된다며 언급했다.


[1] 박용익 목사[2] 멘토님은 이것을 비단주머니라고 부른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