Бартан / 八哩丹(팔리단), 把兒壇(파아단)
1. 개요
'바르탄' [1]은 카마그 몽골를 건설한 카불 칸의 차남이었다. 《원사》 등의 한문 사료에서는 '바르탄'[2] 혹은 '바르탄 바가투르'[3] 등으로 표기되었으며, 《몽골비사》에는 '바르탄 바가투르'라고 표기되었다. 희대의 정복 군주였던 칭기즈 칸의 조부이자 예수게이 바아투르의 부친이었다.바르탄의 부친인 카불 칸은 붕어하기 직전, 6촌 사촌인 암바가이에게 칸위를 물려주었고, 암바가이 칸이 타타르부의 모략에 걸려 금나라의 폭군인 해릉양왕에게 끔찍하게 살해된 이후 카불 칸의 4남이었던 쿠툴라가 칸위를 이었다. 왕족이었던 바르탄은 키얀[4] 부락의 수령인 '바가투르'[5]에 불과했다.
2. 생애
바르탄은 카마그 몽골의 초대 칸으로 즉위한 카불 칸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카불 칸 사후 칸위를 계승한 암바가이 칸[6]과 바르탄의 동생인 쿠툴라 칸이 있었기에, 바르탄의 사적에 관한 기록은 거의 남아있지 않다.《집사》(集史) <바르탄 바가투르기>(紀)에 의하면, 아내인 수치킬 우진[7]과의 사이에서 뭉게투 키얀[8], 네쿤 타이시[9], 예수게이 바아투르, 다리타이 옷치긴[10] 등 네 명의 아들을 낳았다.
뭉게투 키얀의 아들 창시우드[11]가 키야트[]키야트는 '키얀'의 복수형이다.] 창시우드 씨족을 창설했으며, 칭기즈 칸 시대에는 대숙부 쿠툭투 뭉구르와 함께 '칭기즈 칸 13익(翼)'의 제8익(쿠리엔)을 거느렸다.
네쿤 타이시와 그의 아들 쿠차르[13] 베키는 키야트 호인 씨족을 창설했으며, 칭기즈 칸 시대에는 숙부 다리타이 옷치긴과 함께 '칭기즈 칸 13익' 중 제7익을 거느렸다.
다리타이 옷치긴은 바르탄 바아투르의 아들들 중 유일하게 칭기즈 칸 시대에도 생존했으며, 조카였던 쿠차르 베키와 함께 '칭기즈 칸 13익' 중 제7익을 거느렸다
바르탄 바아투르의 자손들은 칭기즈 칸의 치세때, 키야트 씨족 하위 집단의 장으로서 유력했으나, 이윽고 씨족 질서의 해체 및 권력 집중을 꾀한 칭기즈 칸과 대립했다. 제8익의 창시우드만이 칭기즈 칸에게 충실했으며 알탄, 쿠차르 베키, 다리타이 옷치긴은 칭기즈 칸을 배신했기에 이후 처형되었다.
3. 가계
- 조부 : 툼비나이 세첸(Tumbinai Setsen)
- 부친 : 카마그 몽골의 제1대 군주 카불 칸(Khabul Khan)
- 형 : 오킨 바르칵(Ökin Barqaq)
- 부인 : 수치킬 우진
- 장남 : 뭉게투 키얀(Mönggetü Kiyan)
- 차남 : 네쿤 타이시(Nekün Taiši)
- 3남 : 예수게이(Yesugei)
- 손자 : 테무진(칭기즈 칸)
- 4남 : 다리타이 옷치긴(Da'aridai Otčigin)
[1] 혹은 '바르탄 칸' 또는 '바르탄 바가투르'[2] 八哩丹/八里丹/巴勒丹[3] 把兒坦把阿秃兒, 把兒壇把阿秃兒[4] Kiyan, 乞顔, 복수형은 키야트(Qiyad)[5] 바아투르, 把阿秃兒, baghatur[6] 카불 칸의 6촌 사촌이자, 바르탄 바아투르의 족부(族父)였으며, 훗날 키야트 씨족과 충돌한 타이치우드 씨족의 선조였다.[7] '부인', 타르쿠트 씨족[8] Mönggetü Kiyan, 蒙格禿乞顔[9] Nekün Taiši, 捏坤太子, 聶昆大司[10] Da'aridai Otčigin, 答里台斡赤斤[11] Čangši'ud, 撏薛赤列[] [13] Qučar, 火察兒