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color=#fff><colbgcolor=#0047a0> 자 | 여주(汝周) |
본관 | 여흥 민씨[1] |
출생 | 1886년 |
황해도 해주목 대진면 숙달리[2] (현 황해남도 태탄군 대진리) | |
사망 | 미상 |
상훈 | 건국훈장 애족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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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2016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2. 생애
민영면은 1886년 황해도 해주목 대진면 숙달리(현 황해남도 태탄군 대진리)에서 아버지 민형호(閔珩鎬, 1862년생)와 어머니 신천 강씨(信川 康氏, 1866년생) 사이의 3남 3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그는 1919년 황해도 해주군에서 독립만세시위에 참여했다가 체포되었다. 이후 해주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고 항소했지만 같은 해 7월 4일 평양복심법원에서 기각되었고, 다시 상고했으나 9월 13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에도 독립운동을 계속하여 1920년 9월 황해도 장연군 속달면 태탄리에서 대한적십자사(大韓赤十字社) 청년회 의용단(義勇團)의 단원이 되어 군자금을 모집하고 친일파와 밀정 처단을 계획했다. 그러나 얼마 후 또다시 체포되어 1921년 6월 28일 해주지방법원에서 소위 제령 제7호 위반 혐의로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그는 이에 불복해 공소했지만 9월 10일 평양복심법원에서 기각되었으며, 이에 상고했으나 10월 15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이후의 행적 및 사망년도, 사망지는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6년 민영면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