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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워도 다시 한번 시리즈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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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워도 다시 한번 (1968) Love Me Once Again | |
<colcolor=#000> 감독 | 정소영 |
각본 | 이성재 |
원작 | 이성재 |
제작사 | 한진흥업주식회사 |
기획 | 정소영 |
촬영 | 안창복 |
조명 | 이기섭 |
편집 | 현동춘 |
음악 | 김용환 |
출연 | 신영균, 문희, 전계현, 김정훈 |
상영일자 | 1968.07.16 |
개봉극장 | 국도극장 |
관람인원 | 370,005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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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신영균, 문희, 전계현, 김정훈 주연의 영화. 1961년 흥행에 성공한 최은희 주연의 성춘향의 기록을 깨 버린 영화로 유명하다.[1] 이 영화를 계기로 문희는 기존의 트로이카 멤버였던 윤정희와 남정임을 압도하며 1세대 트로이카 중 가장 많은 인기를 누리게 되었다.[2]2. 상세
정소영 감독이 메가폰을 잡아 1968년 개봉된 1편은 관객 동원 37만[3]이라는 1960년대 최고의 기록을 남겼고, 이에 힘입어 1971년까지 해마다 한 편씩 모두 4편이 제작되었다. 거의 같은 출연진으로 매년 한 편씩 제작되다 보니 조금씩 인기가 떨어졌고, 4편에 와서는 동원 관객수가 14만으로 줄어든다. 물론, 14만도 만만찮은 성과였다. 1971년작으로 완결편인 4편은 시리즈의 간판이던 주인공 아역 배우인 김정훈의 성인 역으로 노주현이 출연한다. 이복 형제 역할은 아역 배우 홍종현, 그 성인 역을 노주현과 함께 TBC 탤런트 김종결이 맡았다.1980년에는 변장호 감독으로 미워도 다시 한번 '80 개봉되었는데, 36만 관객 동원에 성공한다. 하지만, 미워도 다시 한번 '80 제2부는 3만 7천여 관객으로 흥행 실패. 한편, 2002년 시리즈의 처음을 장식했던 정소영 감독으로 미워도 다시 한번 2002가 개봉되었으나... 1만 관객으로 잊혀지고 만다.
1968년 ~ 1971년 영화의 줄거리는 유부남과 본처, 그리고 내연녀의 삼각 관계로, 시리즈 내용이 독립적이지 않고 계속 이어진다. 주된 흥행 포인트는 불륜의 결과로 나온 죄 없는 아이들과 부모가 이루는 미워할 수 없는 혈육의 정이며, 최루물의 대표적인 영화이다. 1960년대 말 ~ 70년대까지 천재 아역 배우로 평가받던 꼬마신랑의 김정훈이 시리즈의 진짜 주연이라고 보아도 된다.
사실 이렇게 말해도 온갖 악인들과 황당무계한 설정 및 연출이 판치는 요즘의 막장 드라마와 같이 취급할 수는 없는 작품이다. 기본적으로 등장인물들은 선량하며, 작중의 고난은 악의가 없는 감정과 흐름에 의하여 일어난 것들이다.[4] 또한 눈물을 자아내는 장면이 많지만 시리즈의 결말은 주로 해피엔딩이다.
그러나 2002년의 리메이크작은 원작의 선량함과 따뜻함이 없는 작품이고 흥행 역시 전술한 대로 실패했다.[5]
올드독은 자신이 한국영상자료원에 연재하는 영화 다이어리에서 "<미워도 다시 한번>에 이어질 말은 '사랑해주오'인데, 극중 누구도 그런 구애나 사랑을 기대하지 않는다는 것이 쓸쓸하게 느껴진다" 라고 평했다.영화천국,2010.12.27 Vol.17
3. 등장 인물
- 신호(신영균): 시골에 처를 두고 서울에서 사업을 하는 남자. 그 와중에 혜영을 사귀고, 그녀를 임신시켜 혜영과 정숙의 갈등을 유발한다.
- 혜영(문희): 유치원 교사로서 신호랑 사귀는 여자. 신호의 아이를 배지만, 신호가 전처가 있다는 것을 알고 신호와 헤어져 남도로 내려가 영신을 기르고 있다.
- 신호의 아내[6](전계현): 신호의 처로, 신호가 서울에서 성공했다는 얘기를 듣고 서울까지 올라오지만, 그녀를 기다리는 충격적인 소식을 듣게 된다. 으레 이런 역은 성격이 까탈스러워야 하는데, 바람을 피운 남편을 용서하고, 영신을 열심히 키우려고 하는 등 이해심이 넓은 성격을 가지고 있다.
- 영신(김정훈): 혜영의 아들. 혜영의 뜻으로 혜영과 헤어져 신호의 집에 살지만 이복형제들의 구박과 어머니를 향한 그리움으로 결국 혜영에게 돌아간다.
4. 줄거리
신호는 시골에 처자를 남겨두고 서울에서 사업을 하여 성공하게 된다. 신호는 서울에 있는 동안 혜영을 사귀고 있었다. 처자가 있는 줄 모르는 혜영은 신호와 동거, 나아가 결혼까지 생각하고 있다.한편 시골에서 올라온 신호의 처는 이 사실을 보고 충격을 먹는다. 신호는 이 사실을 필사적으로 숨기려 자기의 하숙집에 아내를 못오게 하지만 결국 부인은 밥을 차려주려 온 혜영과 마주치게 되어 실상을 알게 되었다. 신호의 부인은 이혼하겠다며 길길이 뛰고, 이를 본 혜영은 신호의 가정을 위해 시골로 내려가[7] 그 곳에서 영신을 낳는다. 그러나 영신의 미래를 위해 영신을 신호에게 맡긴다.
하지만 영신은 신호의 집에서 제대로 적응을 못한다. 신호는 이런 영신을 놓지 않으려 영신을 편애하자 역으로 영신의 이복형제가 영신에게 괴롭힘에 가까운 장난을 친다.[8] 혜영 또한 영신을 보고 싶어하여 결국 가난한 환경이지만 둘이서 살기로 결심한다.
5. 그밖에
문희의 눈물 연기가 이 영화의 꽃이었지만, 아역 배우인 김정훈의 눈물을 자아내는 연기 덕에 인기도 상당했다.[9] 처첩과 남편 사이의 갈등이라는 소재가 인기를 끌게 된 이유는 당시에는 법적으로는 금지였지만 일부다처제가 많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10] 내용도 막장드라마의 요건에 충분히 부합한다.30만명 이상 보는 인기에 힘입어 4편까지 제작이 되었다. 3편까지 매년 그 해 최다 관객을 모은, 지금 생각하면 무시무시한 흥행 기록을 가진 시리즈이다. 4편까지의 오리지널 시리즈의 총 관객은 100만이 넘는다. 당시는 단관 개관이었기에 현재로 따지면 매 편이 천만, 누적 1억명에 가까운 흥행 실적이 될 것이다.[11]
속편에서는 아이들이 자란 이후를 다루었는데, 김정훈의 성인 역을 싱크로율이 매우 높았던 노주현이 맡기도 했다. 80년대에 한 번, 2000년도에도 한 번 리메이크 (또는 이야기가 이어지지 않는 속편)이 만들어졌다.
엄청난 흥행세에 뒤이어 비슷한 이야기 구조를 가진 아류작이 나오기도 했는데, 그 중 꽤 흥행한 것에는 정윤희 주연의 사랑하는 사람아도 있다.
강원도 동해시 묵호등대공원에 1968년작의 촬영장소임을 기념하는 영화의 고향 기념비가 있다.(2003년 5월 건립)[12]
[1] 조금 의문이 드는게, 성춘향의 기록은 미워도 다시 한번의 37만 기록을 넘는 38만명으로 집계되지만 미워도 다시 한번이 성춘향의 기록을 갱신했다고 알려져 있다. 이러는 이유는 성춘향은 집계사에 따라 36만명을 동원했다는 말도 있고, 미워도 다시 한번이 37만명을 훌쩍 넘을 가능성이 비쳐지기 때문. 당시에는 세금 문제 등으로 관객수를 축소해서 보고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2] 윤정희도 인기가 많았지만, 문희는 이 미워도 다시 한번 시리즈로 1968년부터 1970년까지 흥행 1위 영화의 주연을 차지하는 여배우가 되었다.[3] 국도 극장 단관만의 기록이이며, 전산 집계 같은 거 없던 때라 이 또한 정확하지는 않다. 전국적으로는 100만 이상이었을 수 있다.[4] 문제의 원인을 제공한 남주인공의 경우 3편에서 그 업보를 받는다.[5] 2002년 리메이크를 현실적이라고 평한 사람도 있지만 이것은 인간의 한계를 규정짓는 식의 평가고 원작은 죄없는 자를 자신의 입장때문에 미워하지 않는것을 보여준다. 말이 거창해지지만 인간은 더 나아질수 있고 영화는 그런 모습을 보여준다.[6] 구체적인 이름이 나와 있지 않다.[7] 강원도 강릉 묵호(현재의 동해시)에서 낳았다.[8] 영신이 세수를 하려 얼굴에 비누를 묻히자 이복형은 몰래 세숫대야를 치워 영신의 눈에 비누액이 들어가게 하여 영신을 울린다.[9] 그런데 연기만 하고, 더빙은 여성 성우가 했었다. 당시는 후시 녹음 시대긴 하지만 스스로 녹음하는 배우도 적지 않았다.[10] 돈 좀 있다는 집이면 첩을 들이는 것이 일반화 되었을 정도. 손이 귀한 집이면 후처나 씨받이를 들이는 것이 100%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11] 이 당시는 영사기를 들고 마을 마을 돌며 영화를 상영하는 천막 임시 극장을 운영한데다, 이런 신파극이 세대 구분 없이 큰 인기를 누렸기 때문에, 어마어마한 인구가 봤으리라 예상된다.[12] 묵호등대공원에 있으나 기념비에는 강원도 동해시 묵호항으로 표기되어 있다. 기념비 내용은 다음과 같다. 여기는 영화 <미워도 다시 한 번>(1968)을 촬영한 곳입니다. 정소영이 감독하고 문희, 신영균, 전계현, 김정훈이 출연한 이 영화는 1968년 당시 한국영화 흥행 신기록을 수립하면서 많은 화제를 불러 모았던 작품입니다. <미워도 다시 한 번>의 영향력은 1970년대 이후 한국 멜로드라마의 지형을 바꿀 만큼 대단한 것이었으며 최근까지도 영화 역사가들에게는 한국영화사상 가장 중요한 작품의 하나로 손꼽히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