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olbgcolor=#000><colcolor=#fff> 미야가와 후미코 [ruby(宮川, ruby=みやがわ)] [ruby(富, ruby=ふ)][ruby(美, ruby=み)][ruby(子, ruby=こ)]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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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명 | 오쓰키 후미코(大月 富美子) |
| 출생 | 1906년 5월 12일 |
| 사망 | 1990년 5월 6일 (향년 83세) |
| 가족 | 조부 손달성, 조모 양태군 친부 쑨원, 친모 오쓰키 가오루 양부 미야가와 우메요시 이복 오빠 쑨커, 이복 언니 쑨진위안, 쑨진완 |
| 배우자 | 오자와 오시지 |
| 자녀 | 아들 2명 |
1. 개요
쑨원과 오쓰키 가오루의 딸.2. 생애
1906년 5월 12일 일본 가나가와현 요코하마에서 홋날 중화민국 임시 총통이 되는 쑨원과 오쓰키 가오루의 사이에서 태어났다.[1] 그 해에 어머니 가오루와 아버지 쑨원으로부터 퇴출이 되었다. 이후 어머니가 두번의 재혼으로 새아버지가 2명이 있었고, 아버지가 다른 남동생 한명이 있다.후미코는 일본인이었지만 어머니 가오루가 중국어를 할줄 알았는데 아마 그 영향으로 중국어에도 능통할수 밖에 없을 것이다. 후미코는 일본 남성 오자와 요시지라는 남자와 1927년에 결혼했고, 요시지사이에 아들 2명을 낳았다. 두 아들과 함께 잠시 1년간 중화민국 허베이성 톈진 에도 잠시 살았다. 1947년 일본에 귀국한 이후두 아들과 함께 일본 도쿄에서 4년간 거주했고, 1951년에 남편과 두 아들을 비롯한 일가족을 데리고 중화민국 타이완 타이베이로 이주하면서 일본인 개신교도로서 중국국민당을 지지하였다. 그러나 훗날 개신교를 이탈하고 중화민국 타이완 타이베이에서 비구니로 출가하였고 후일 환속하였다.
3. 사망
1989년 8월 26일을 두 아들 일족들과 함께 타이완 타이베이를 떠나 일본에 귀국한 후미코는 일본 홋카이도 삿포로에서 와병으로 요양하였고, 1년 후 1990년 5월 6일에 일본 삿포로에서 향년 84세로 별세하였다.[1] 당시 가오루는 후미코를 출산할때 나이가 18세였다. 충격적인 사실은 가오루는 3년전인 15세 나이에 22살 연상인 쑨원(당시 37세)과 결혼했다. 옛날에는 15세~19세 정도 결혼했지만 현대로 따지면 미성년자와 결혼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