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12-26 05:58:28

묵조선

묵조선은 수행자의 모든 것을 -막연하게- 열어버린다. 단지 앉아있음을 통해서, ‘막연함’을 통해서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자’를 지워버린다. 간화선 수행은 깨달음을 겨냥해 화두를 참구하기 때문에 묵조선보다 매우 효율적이지만, 반대로 깨달음을 얻으려하는 ‘생각’이 바탕에 깔려있음을 극복하기가 쉽지 않다. 여기서 묵조선의 ‘막연함’은 깨달음을 얻으려는 ‘생각’을 미끄러트린다.
설지 - <묵조선을 위한 변명>[1]

1. 개요

묵조선은 남송 초 굉지정각이 주창한 선풍이다. 이름은 대혜종고가 폄하하는 의미에서 지은 것이지만, 공식명칭이 되었다. 이에 관한 책으로는 설지의 <묵조선을 위한 변명>이 있다.

2. 사상

이미 모든 것은 깨달은 상태이며, 절대적 현성공안 상태이기에 유위적 수행으로 이를 얻을 수 없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좌선을 여전히 수행방편으로 삼는데, 이는 좌선이 그저 앉아있음을 통해 이 사실을 나타내고, 스스로를 진리에 내맡기는 수단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좌선은 깨달음을 얻는 행위가 아니라, 이를 확인하는 일일 뿐이다. 조사선과 많은 철학을 공유하지만, 묵조선은 '본래면목이 이미 현실로서 드러나있음'에 대한 절대적 확신을 통해 수행의 필요성, 깨달음의 과위[2], 진리의 개념화 및 대상화를 철저히 거부한다는 점에서 다르다.

3. 비판

불교는 의식의 변혁을, 수행의 필요성을 믿는 종교이다. 묵조선은 대승불교의 인간에 대한 믿음, 인간이 스스로를 바꾸고자 하는 선한 의지를 부정할 것을 암시한다.

또한 좌선을 통해 이미 깨달은 상태를 표현하는 것도 수행으로 볼 수 있다. 그저 앉아 있는 것, 지관타자도 어쨋든 현실적 맥락에서 수행의 틀 안에 있는 것이다.

[1] 교보문고 도서 소개[2] 스승과 제자 사이의 깨달음의 차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