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창세기전 시리즈의 등장인물. 비프로스트 공국의 공왕(생몰년 에스겔력 1197~ ).창세기전 2에서는 모젤 공왕의 아들이라는 대사로만 언급되고 창세기전 외전 서풍의 광시곡과 창세기전 3에서는 본격적으로 등장한다.
대사로만 등장한 2와 다르게 회색의 잔영에선 몇 컷이지만 등장하며, 담당 성우는 방시우.[1]
2. 창세기전 2/창세기전: 회색의 잔영
아버지 모젤 공왕이 원로원과의 대립 도중 제국의 개입에 의해 살해된 후, 비프로스트는 공왕파와 원로원파로 분열되어 내전 상태에 돌입한다. 이때 정치적 구심점이 필요했던 모젤 지지 세력은 아직 어린 그를 공왕으로 내세웠다. 게이시르 제국이 흑태자가 복귀한 후 비프로스트를 침공하자 공왕파의 핵심 인물인 사라 란드그리드와 스트라이더 녹스는 그를 팬드래건으로 도피시킨다.3. 창세기전 외전 서풍의 광시곡
흑태자 사후 게이시르 제국이 분열되면서 비프로스트 공국도 자연스레 해방되어 복귀한다.어린 시절의 암울한 기억 탓인지 제국에 복수하고자 했던 것으로 보이며, 그에 따라 카타리나를 중용하여 군대를 양성하고 아스카론을 발굴하는 등 사전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체사레 보르자가 보낸 2중 첩자 죠세핀이란 존재 때문에 원로원은 물론 다른 많은 이들로부터 눈총을 산 모양이다. 결국 체사레가 보낸 암흑살수들을 동원해 원로원 세력들을 숙청하기에 이른다. 일단 표면적으론 이전의 중립국 노선을 고수하고 있어 침략의 명분을 잡지 못하고 있었지만, 제피르 팰컨의 제거를 위해 체사레가 비프로스트에 제국령 내부로의 파병을 요청하자 이를 계기로 약화된 구 제국령을 병합하고자 했다.
그리하여 두 차례에 걸쳐 대대적인 침공에 나서지만, 이 침공은 게이시르 국민들이 결속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에 알프레드 프레데릭의 로우엔군과 제피르 팰컨의 연합이 성사되었고, 첫 번째 침공에서 이들에게 패배한 것으로 모자라, 두 번째 침공에는 마장기 아스카론까지 동원했음에도 팬드래건 왕국이 투르 제국과의 휴전협정을 체결함과 동시에 아론다이트를 급파하여 아스카론을 격파하고, 체사레도 제피르 팰컨에 척살되어 실패로 돌아간다. 자신의 아버지 모젤 공왕에게 큰 신세를 진 라시드 팬드래건이 국왕의 상징인 아론다이트까지 동원해 비프로스트를 가로막았다는 건 비프로스트의 생존전략이었던 원교근공 정책에 균열이 갔다는 신호였지만 대왕병 걸린 모젤 2세는 이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패전을 한 1265년 이후로 모젤 2세의 왕권은 조금 약화되었지만 그 때까지만 해도 여력이 있어서, 1267년에 조카 올리비아[2]의 아들인 팬드래건의 버몬트파 왕자인 윌리엄과 리처드가 형인 조지의 반란이 실패하고 도피하자 공국군을 지원하여 버몬트파를 1차 장미전쟁의 승리자로 만들었다.[3]
대외적으로 건재함을 과시한 모젤 2세는 1269년, 황제의 자리에 올라 제국을 선포하지만 이에 반발한 사람들은 황제를 몰아내려는 움직임이 일어난다. 이것은 비프로스트 내전으로 이어지게 되고, 모젤 2세를 필두로 한 제정파와 원로원을 필두로 한 공화파로 나라가 크게 나뉘게 된다. 당시 국왕이었던 리처드는 십인중중 1인이었던 아나스타샤 버킹엄을 파견해 모젤 2세를 지원하였다. 그 결과 공화파 소속 유력 인사들이 대부분 사망함은 물론, 역시나 공화파에 가담한 발키리 대원 상당수가 쓸려 나가며 국력이 급격하게 약해진다. 결국 게이시르 제국을 재통일한 크리스티나 황제의 비프로스트 침공과 병합으로 이어져, 에스겔력 1276년에 멸망하게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창세기전 2 시점에서는 공왕파가 친 실버애로우, 원로원파가 친제국이었다. 당시 제국은 베라딘이 집권하고 있었지만, 흑태자가 복귀한 뒤에도 원로원파를 지원하는 게 제국에 좋다 여겨 원로원파의 친제국 성향은 모시는 인물만 바뀐 셈이다. 하지만 50년 후, 서풍의 광시곡 시점에서는 오히려 공왕파(제정파)가 체사레의 제국과 결탁하고, 원로원파가 반 체사레가 된다. 크리스티나 프레데릭이 황제 자리에 오른 템페스트-창세기전 3 시점에서는 제정파는 다시 반제국으로 턴하고 발키리는 반으로 갈라져서 반은 반제정 반제국, 반은 친제국으로 갈라지나 워낙 모젤 2세가 폭군이다보니 결국 대부분의 발키리들은 제국에 귀순하고, 제국은 '임페리얼 발키리'라는 조직을 만들어 전향자들을 제국군에 흡수시켰다.
4. 창세기전 3
죠안 카트라이트가 디안 드 푸와티에를 설득할 때, 자신의 부모님을 비롯한 수많은 공화파[4]가 악랄하게 희생당했으며 공왕이 죠세핀이란 여자에게 빠져 나라를 망쳐버렸다고 직접 언급된다. 모젤 2세가 죠세핀에게 심하게 휘둘려 인망을 잃고 포악해져 나라를 파탄에 빠뜨린 것을 암시한 것으로, 이러한 비프로스트의 대립은 창세기전 외전 템페스트 시절에도 샤른호스트와 리처드 사이에서 그들의 힘겨루기와 관련해 중요한 요소로 꼽혔다.
나라 멸망 이후 모젤 2세는 휘하의 세력들과 함께 산지를 숨어다니며 구 비프로스트 발키리 대장이었던 카트린느 메디시스와 함께 독립 운동을 하게 되고, 인페르노에서의 크리스티나 황제 암살 미수 사건과 흑태자교의 봉기 등으로 제국이 혼란에 빠진 것을 틈타 크리스티나 황제에게 불만이 많았던 게이시르의 대귀족 기즈 공작과 흑태자교와 힘을 합쳐 제국 중앙 정부와의 준 내전 상태에 들어간다.
하지만 흑태자교의 너무 이른 봉기로 인해 계획이 엉망이 되어버렸고, 이 때문에 제국 중앙정부의 압박이 거세지자 결국 이 두 세력은 준비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상태임에도 버티다 못해 반란을 일으키게 된다. 이와 함께 제국을 연합국으로 만들자는 기치를 내거는데, 이는 모젤 2세를 비프로스트의 영주령 혹은 제국의 새로운 황제로 내걸기 위한 것이었다. 덕분에 자유주의 과격파들로부터 지지를 얻지만, 이미 세력차가 압도적인 데다 제국군의 조치가 발빠른 관계로 결국 농성전에 그치게 되었다. 결국 죠안이 디안과 카트린느를 설득해 발키리 세력을 온전히 제국으로 돌려놓고, 죠세핀을 색출해 처단한 뒤 비프로스트의 자치를 약속한 제국의 공세가 이어지자 마지막 전투에서 아스카론을 타고 발악하다가 초라한 최후를 맞게 된다.[5]
5. 정리
능력이 없었던 인물은 아니다. 오히려 능력 자체는 제법 뛰어나 모젤 2세의 통치 기간 동안 비프로스트 공국은 수십 년 동안 비약적인 발전을 이뤄내는데 성공했다. 처음에는 원로원과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조언자들의 말도 잘 경청해서 안팎으로 지지자들이 많았고, 제국에 대한 증오심까지 더해 엄청난 군사력 발전을 이뤄내는 데 성공했다.그러나 죠세핀이라는 경국지색에게 홀려 자신이 쌓은 모든 기반을 자신의 손으로 다 날려보냈고, 발키리를 제국에 헌납해 버림은 물론 나라의 상징이나 다름없었던 아스카론마저 허망하게 잃고 초라한 최후를 맞이해 버렸다.
죠세핀을 2중 스파이로 사용할 정도였으면 죠세핀이 얼마나 위험한 여자인지를 충분히 인식하고 살려둔 것이었을테니, 자기가 컨트롤할 수 있다고 자만했다가 오히려 잡아먹힌 전형적인 방심형 몰락 클리셰였다고 볼 수 있겠다. 게다가 그가 지원한 세력이 모두 최종적인 패배자가 된 것도 그의 몰락에 큰 지분을 차지했다.
[1] 본작에서 스포일러 역을 맡기도 했다.[2] 버몬트가와 비프로스트 공왕가의 혼인관계에서 낳은 딸이다.[3] 이런 직접개입은 라시드의 제국개입과 많이 비교되는데, 라시드가 제피르 팰컨을 운영할 때 본인의 정체는 최후까지 숨기면서 자금과 무기만 대주고 최대한 제국민의 손으로 통일을 이루게 한 것은 자칫 잘못하면 내정간섭으로 여겨져서 문제가 발생할 여지를 차단하려고 했던것이다. 이는 제국과 비프로스트 두 국가의 미래를 결정하는데 비프로스트의 팬드래건 내정개입은 2차 장미전쟁에서 제국이 클라우제비츠를 지원하는 명분을 만들어버렸고, 팬드래건은 게이시르의 비프로스트 정벌을 방관한다.[4] 공왕파냐 공화파냐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심지어는 같은 매뉴얼의 같은 페이지의 같은 문장 안에서도 공왕파라고 했다가 공화파라고 했다가 말을 바꾼다. 대립하는 개념은 황제파 또는 왕당파라고 불리는 세력이다.[5] 이 때 비프로스트는 자신의 왕국이니 제국 녀석들에게 뺏길 수 없다는 말을 하고, 과거의 학살에 대한 책임을 묻는 죠안 앞에서 그들은 반역자니 합당한 처분이었다고 말하는데, 죠세핀에게 잔뜩 휘둘린 결과 독립 전쟁을 벌이기 한참 이전 시점부터 이미 암군 레벨에 다다랐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