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1980년대 후반에 한국의 MSX 시장에서 유통되었던 주변 기기. '메가램팩' 또는 '램카드'라고도 한다.플로피 디스크와 같은 매체로 불법복제한 게임을 구동하기 위한 장비로 쉽게 말해서 닥터의 원조. 슈퍼패미컴 시절에도 UFO같은 유사한 기기가 나왔으나 이들은 국산은 아니다. 그리고 '메가롬'과는 관계가 아주 없지는 않지만 당연히 다르다. 메가롬 게임을 불법복제(...)하기 위해서 메가롬의 구조를 램으로 옮겨온 것이 메가램팩.
2. 탄생 배경
1980년대 한국의 게임 시장은 불법 복제품이 대부분(사실상 100%라고 해도 좋을 정도)을 차지하고 있었다. 소프트웨어의 정식 유통망도 없었고 저작권에 대한 인식도 희미한 상황이었으며 거기에 미국 게임이 주류였던 애플 II를 제외한 나머지 기종은 주로 일본 게임이 주류였는데 일본 문화 개방은 한참 나중인 김대중 정부에 이르러서야 시행되었기 때문에 정식 수입이란 생각할 수 없었다[1]. 해외여행도 자유화되기 전이었기 때문에 개인이 대부분의 게임은 보따리 장수가 아키하바라에서 신작 게임을 밀수해오면 세운상가 등지에 소재한 복제업체[2]가 이를 롬라이터로 구워서 복제팩을 만들거나 롬의 내용을 덤프해서 카세트테이프나 플로피 디스크, 퀵 디스크 등의 비교적 저렴한 매체에 복제하여 판매하는 구조였다.기존 테이프나 디스크로 덤프된 128~256킬로비트급 롬팩 게임은 MSX의 메인 메모리에 충분히 적재할 수 있는 용량이었기 때문에 메가램팩과 같은 장비는 별도로 필요하지 않았다. 그러나 1986년 그라디우스의 발매로 촉발된 메가롬의 시대가 열리면서 이야기가 달라졌다. 일본에서는 그라디우스 발매 이후 1메가 비트[3] 이상의 대용량 게임에 '메가롬'(MEGA ROM)이라는 브랜딩까지 하며 대용량 게임들이 시장을 선도하는 방향으로 급속히 흘러가고 있었고, 가격 역시 이전의 게임들과 비교했을 때 큰 차이가 나지 않았다.[4] 그러나 국내에서는 메가롬(복제품)의 가격이 너무나 비쌌다. 1980년대 후반 당시 256킬로비트급 롬팩의 가격은 8천원선이었던 데 비해 1메가 롬팩의 가격은 대략 25000~30000원선. 짜장면 한 그릇이 500~700원선, MSX 본체도 30만원대 후반이었다는걸 생각하면 어마어마한 가격이다. 이러한 가격차는 일본과 달리 불법복제품이므로 원가에 개발비 개념이 들어가 있지 않고 팩 실물 제조비만이 원가에 반영되는 상황인데, 당시에는 메모리 소자, 즉 롬의 단가가 일본에 비해 상당히 비쌌고 메가롬팩에는 기존의 4~8배의 롬이 들어가므로 그만큼 원가도 비싸졌던 것. 후기에 가면 1메가비트 롬을 1개를 사용한 롬팩도 나왔지만 초창기엔 그냥 256킬로비트 롬을 4개를 박아놔서 복제 메가롬팩은 무게부터 묵직했다.
이러한 높은 단가를 해결하기 위해 나온 방법이 바로 메가램팩이다. 구조적으로는 기존의 메가 롬팩과 비슷하나 내용물이 롬이 아니라 DRAM으로 되어있는 것이다. 그리고 롬팩의 데이터를 매퍼[5]에 맞추어 각각의 파일로 분할하여 플로피 디스크나 카세트테이프에 덤프한 뒤 그 데이터를 MSX 컴퓨터에서 램팩으로 읽어들여 램팩을 롬팩처럼 사용하는 것이었다. 물론 램이니 만큼 한계는 있는데 일단은 적재하는데 긴 로딩시간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며[6] 전원을 끄면 팩에 적재된 내용은 지워진다.
그밖에도 하드웨어적인 한계로 원본 게임을 완전히 재현할 수없는 경우도 있었다. 일부 롬팩에 내장된 SCC음원칩이나 SRAM과 같은 특수 부품은 구현할 방법이 없으니 음악이 허전해진다거나[7] 게임 중 세이브 기능을 사용할 수 없게 된다거나[8] 하는 문제가 종종 생기기도 했었다.
게임이 잘려서 들어오는 경우도 드물게나마 있었다. MSX판 R-TYPE이 대표적인 경우인데, 원래 R-TYPE은 3메가 비트 용량으로 발매되었지만 국내에 유통중인 2메가 램팩 용량에 맞추려고 하다 보니 2메가 안쪽으로 내용을 자르다보니 이 2메가 버전은 총 8스테이지인 게임이 5스테이지부터는 진행 불가가 되었다. 4메가 램카드에 적재할 수 있도록 3메가 버전도 함께 유통되긴 했으나 3, 4메가급 게임의 수가 꽤 희소한데[9] 비해 램값이 비싸 확장비용이 비싸다보니 가격대 성능비가 채산이 안맞아 4메가까지 확장을 안하는 사람이 많다보니 램카드로 R-Type을 해본 사람들은 대개 뒷부분이 잘린 2메가 버전을 해본 사람들이 많다.
해외에서도 불법복제가 없었던 것은 아니고, 디스크 같은 매체로 롬팩을 덤프하는 것은 해외에서도 있었던 일이지만 국내와는 양상이 달랐는데 해외의 경우에는 본체의 메모리 확장으로 인식하는 램카드를 이용하거나 직접 본체의 메모리를 확장하는 방식을 많이 사용하였다. 그러나 전술했듯 국내에서 사용된 램카드는 롬팩의 구조를 그대로 인용해오고 롬 대신에 D램을 박아놓은 구조이다. 따라서 본체의 메모리 확장으로는 이용할수 없었고 별도로 제작한 로더 프로그램을 이용하여 롬팩과 동일한 매퍼로 분할된 파일을 적재하는 방식을 사용하였다. 램이 비쌌던 시절이라 램카드의 가격은 롬팩보다 훨씬 비싸서 가장 많이 사용된 재미나의 골든박스(1Mbit DRAM)기준으로 5만원 선. 메가 롬팩 두개 값이다. 하지만 한 번 사두면 이후에는 롬팩 대신 카세트나 디스켓에 복사를 하면 되기 때문에 게임 유지비는 적게 들어서 제법 인기가 좋았다. 보통 소프트웨어 가게에서 메가롬급 게임 하나를 복제해주는 가격은 2~3천원 수준이었고 MSX를 사용하는 친구가 있다면 돈을 나눠서 부담한 뒤 집에서 다시 복제해서 나눠가지면 되었으니 더더욱 돈을 아낄 수 있었다. 소프트웨어를 이런 식으로 공유할 목적으로 운영되는 동호회도 당시엔 꽤 있었으며[10] 컴퓨터 잡지에서도 이런 동호회의 알림 광고를 실어주는 지면을 따로 두고 있을 정도였다.
3. 제품
당시 유통되었던 램카드의 종류를 기술한다.- 재미나 : 가장 많이 사용되었으며 메가램팩의 표준이라고 할 수 있었다.
- 골든박스 : 1메가 비트, 4메가 비트까지 확장 가능. 일반 롬팩보다 큰 사이즈의 카트리지를 사용했다. 가장 대중적으로 사용되었던 메가 램팩이다.
- 블랙박스 : 1메가 비트, 확장불가. 골든박스의 저가형 버전. 사이즈는 일반 롬팩과 동일.
- 딜럭스박스 : 2메가 비트, 4메가 비트까지 확장 가능. 골든박스와 같은 외장, 같은 기판에 램만 2메가를 박아서 나온 물건이다. 이 정도만 가지고 있으면 유통 중인 어지간한 게임은 다 할 수가 있어서 인기가 좋았다.
- 딜럭스IV : 4메가 비트. 풀버전이다. 돈은 딜럭스박스의 2배인데 비해 이걸 산다고 해서 추가로 할 수 있는 게임의 수가 많지는 않아서 일부 돈많은 유저들이나 구입했던 물건.
- 바이오카드 : 2메가 비트, 확장불가[11]. DRAM이 아닌 SRAM을 사용하였기 때문에 한번 로드한 게임은 전원을 꺼도 지워지지 않았다. 그야말로 MSX 게이머들에게는 꿈의 장비였으나 다만 가격이 용량이 2배인 딜럭스IV와 비슷할 정도로 비쌌고 나온지 1년 남짓한 시점에 문교부의 16비트 교육용 컴퓨터 지정 크리를 맞아버리는 바람에 보급률은 매우 저조했다.
- FA소프트
- 슈퍼 램카드 II : 1메가비트, 4메가 비트까지 확장 가능
- 미스터 램 : 256킬로비트 SRAM. 메가롬 확장용이 아닌 킬로비트급 게임을 SRAM에 저장해 쓰기 위한 제품이었다. 바이오카드의 축소판 같은 제품.
- 스크린소프트
- 확장램팩 : 1메가비트, 4메가 비트까지 확장 가능
- 메아리소프트
- 메아리램 2 : 2메가비트, 4메가 비트까지 확장 가능
[1] MSX 끝물이었던 1990년대 초에 몇몇 게임을 대우전자가 정식 라이선스해서 발매한 적은 있다. 다만 가격이 비싸고 유통량 자체가 매우 적어 실제로 구매한 사람의 수는 드물었다.[2] 당시에 재미나, 프로소프트, 크로바소프트, 아프로만, 토피아, 으뜸소프트, FA소프트 등등이 영업을 하고 있었다.[3] 바이트로 환산하면 128KB. 적어보이지만 Z80, 6502와 같은 8비트 프로세서가 매퍼 없이 한번에 액세스 할수 있는 용량이 64KB였다는 걸 생각하면 당시에는 제법 큰 용량이었다. 1986년에 삼성전자가 국내 최초로 1메가 D램을 개발했다는 뉴스로 온 나라가 떠들석했던 것을 기억하는 이도 있을 텐데 저 D램 소자의 용량도 비트 단위로 계산하기 때문에 바이트로 계산하면 128KB.[4] 예를 들면 1984년에 나온 갤러그 MSX판 롬팩은 4500엔, 상기한 그라디우스 롬팩은 4980엔이었다.[5] 메모리 주소 영역이 64KB에 불과한 Z80 CPU가 한번에 128KB나 256KB에 접근할 수 없으므로 롬의 영역을 8KB나 16KB씩 쪼개어 페이지를 만들고 이 페이지를 전환하면서 접근하는 방식을 매퍼라고 불렀다. PC에 비교하자면 EMS나 XMS 비슷한 방식이라고 생각하면 되겠다.[6] 플로피 디스크나 퀵 디스크의 경우는 그나마 참을 만한데 테이프의 경우는 정말로 대단한 인내심이 필요했다. 일단 로딩 시간이 기존 256킬로비트 급의 4배가 들어가니...[7] 코나미의 그라디우스 2, 사라만다(MSX), 스페이스 맨보우 등.[8] 제나두, 엘스리드, 코에이 시뮬레이션 게임 등. 다만 코에이 게임들은 다행히 롬팩과 디스크 양쪽으로 나와서 대부분의 플레이어는 디스크판을 플레이했다.[9] 네임드 작품이라고 할만한게 4메가에 하이드라이드 3, 3메가에 R-TYPE 뿐이었다! 이거 두개 하자고 당시로서는 꽤 큰돈인 수만원을 추가로 지불하기는 웬만큼 경제적으로 여유있지 않고는 어려웠다. 코에이 게임 중에 4메가 롬으로 나온게 몇 있었지만 카트리지 내에 SRAM에 세이브를 해야하는 점이 걸림돌이었고 결정적으로 코에이는 같은 타이틀을 친절하게도 롬과 디스크로 모두 발매했다보니 메가램팩의 의미가 없었다. 꽤 나중에 메탈기어 2 솔리드 스네이크가 나오긴 했지만 이쪽은 SCC 크리...[10] 당연 지금과는 달리 온라인이라는게 있을 리 없었던 시대니 오프라인 모임에서 소프트웨어 공유가 이루어졌다. 대개 종로(세운상가) 등 도심지의 대형 서점 및 대형 컴퓨터 전시장에 토요일 오후 등 특정 시간에 맞춰 나와 서로의 소프트웨어를 복제, 공유하는 방식이며, 동호회가 달라도 서로 자신에게 없는 소프트웨어가 있다면 복제, 공유했다. 이는 MSX뿐만 아니라 애플 II 등 타 기종도 마찬가지인데 애플 기종은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가 저렴하여 보급률이 높은 관계로 주로 디스켓으로 공유했고 당연 빠른 속도이다 보니 카세트 테이프가 주류인 MSX, SPC-1000보다 더 공유 사례가 많았다. 세운상가 등지에서는 공 플로피 디스크를 구매할 시 서비스로 소프트웨어 복제도 같이 해 줬고, 당연 소프트웨어를 많이 가진 샵이 공미디어 판매에 유리했다. (반대로 공미디어 구매자가 샵에 없는 소프트웨어를 복사해 주기도 하는데 이럴 경우 디스켓 가격을 할인해주기도 했다. 그러니 플레이 하지도 않을 게임이라도 일단 많이 가지고 있는 것이 여러모로 유리했다.)[11] 지금도 그렇지만 SRAM은 DRAM에 비해서 훨씬 고속이고 리플레쉬 회로가 필요없이 전원만 공급하면 기억 내용이 유지되지만 집적도가 낮고 가격이 비싸다. 바이오카드가 2메가 비트에서 확장이 불가능했던 이유도 집적도가 발목을 잡아서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