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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 마물라 Mike Mamula | |
본명 | 마이클 브라이언 마물라 Michael Brian Mamula |
출생 | 1973년 8월 14일 ([age(1973-08-14)]세) |
뉴욕 주 래커워너 | |
국적 | [[미국| ]][[틀:국기| ]][[틀:국기| ]] |
대학교 | 보스턴 칼리지 |
신체 | 196cm / 114kg |
포지션 | 디펜시브 엔드 |
프로 입단 | 1995년 NFL 드래프트 1라운드 7순위 필라델피아 이글스 지명 |
소속팀 | 필라델피아 이글스 (1995~20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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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의 前 미식축구 선수. 포지션은 디펜시브 엔드. 현역 시절 소속팀은 필라델피아 이글스.2. 대학 시절
고등학생 시절, 대학 오퍼를 단 하나밖에 받지 못할 정도로 무명 선수였던 마물라는 자신에게 손을 내밀어준 보스턴 칼리지로 진학하며 자신에게 온 기회를 잡기로 했다. 1학년은 레드 셔츠를 했고 2학년 시즌 어깨 부상으로 시즌 초반 어려움을 겪었지만 서서히 자리를 잡아가기 시작했다. 그 다음해부턴 기량이 급상승해 84개의 태클과 11개의 색을 기록했고 대학 마지막 시즌 73개의 태클과 17개의 색을 기록하며 올 빅 이스트 팀에 선정됐다. 이때까지는 나름 괜찮지만 사이즈가 작은 편이라 3라운드 이상에서 뽑을 정도는 아니라는 평을 받는 선수였다.마물라 역시 그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의 몸값을 높이기 위한 선택을 하는데 그것은 바로 컴바인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기 위해 미리 연습을 하는 것. 미국 프로스포츠는 드래프트를 앞두고 드래프트 대상자들을 최대한 모아서 신체 조건 측정과 건강 검진을 하는 동시에 선수 전용 체력장을 통해 기초적인 운동능력을 측정하여 이를 구단들에게 배포해 이들을 체크하고 테스트하게 하는데 마물라는 그 중에서도 특히 운동능력이 성공을 좌우하는 NFL의 특성을 공략하기로 한 것이다. 현재는 컴바인을 앞두고 연습을 하는 게 당연시되고 있지만 당시에는 대부분 선수들이 풋볼 드릴을 연습했지 컴바인 드릴은 따로 연습하지 않았기 때문에 파격적인 시도였다. 이 당시 마물라는 모든 테스트를 수백 번이나 반복해본 후 컴바인에 임했다.[1]
그리고 이게 대박을 쳤다. 마물라의 벤치 프레스 기록은 당해 2번 픽이자 훗날 명예의 전당에 가는 오라인 최대어 토니 보셀리의 26개보다 2개 많은 28개였고 40야드 기록인 4.58초는 엣지 중에선 당연히 최고로 빨랐고 당해 10번 픽으로 뽑힌 UCLA의 와이드 리시버 J.J. 스톡스의 4.6초보다도 빠른 것이였다. 수직 점프도 38.5인치를 기록했는데 당해 코너백 중 컴바인에서 가장 높이 기록한 것이 38인치를 기록한 지미 히치콕이라는 걸 생각하면 196cm, 114kg의 덩치로는 보여주는 게 말이 안되는 운동 능력을 보여준 것이다. 거기다 인지 능력과 문제 해결 적성을 측정하는 원더릭 테스트까지 50점 만점 중 49점을 맞았다.
이런 퍼포먼스를 보여주자 모든 팀의 스카우터들이 마물라를 주목했고 보스턴 언론들은 그의 1라운드 지명 가능성에 대한 기사를 쓰기 시작했다. 당시 디라인 최대어였던 워렌 샙이 마리화나 양성 반응으로 이슈를 일으켜 픽이 떨어진 것 역시 마물라에게 호재로 작용했다.
3. 필라델피아 이글스
레지 화이트의 이적 이후, 두 시즌 간 수비의 공백과 스타 선수의 부재에 목말라하던 필라델피아 이글스는 디라인이 필요했던 탬파베이 버커니어스가 7번 픽으로 마물라를 지명할까봐 벅스에게 12번 픽과 2라운드 2장을 제시해 픽을 올려 마물라를 지명했다.마물라가 지명된 7번 픽이라는 순위는 이글스가 1971년 리차드 해리스를 5번 픽으로 지명한 이후로 24년 만에 가장 높은 순위로 수비수를 지명한 것이라 그때나 지금이나 극성으로 유명한 필리건들은 마물라가 차세대 레지 화이트가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마물라는 그러한 기대치를 충족하지 못하고 고작 6년간 뛴 후 누적된 부상으로 은퇴했다. 최종 기록은 부상으로 날린 1998년을 제외한 5년간 77경기 31.5색. 그가 원래 예상대로 2라운드, 3라운드에 지명되었다면 부상으로 은퇴한게 안타까운 예상보다 꽤 훌륭한 성적을 기록한 든든했던 선수로 기억됐겠지만 그는 1라운드 최상위권에 지명된 선수였고 커리어 통산 198색을 기록한 레지 화이트의 후계자였다. 그렇게 그는 워크아웃 워리어라는[2][3] 멸칭을 별명으로 남긴 채 역대 최악의 컴바인 버스트라는 평가를 받게 되었다.
그냥 이렇게만 끝났다면 워크아웃 워리어들의 시초로 컴바인을 앞뒀을 때나 언급되는 컬트적인 선수 정도로 남을수도 있었으나 더 문제가 되는 점은 마물라를 뽑기 위해 준 12번 픽과 2라운드 픽들로 벅스가 드래프트 초대박을 쳐버렸다는 점이다. 벅스는 12번 픽으로 디펜시브 태클 워렌 샙을 뽑았고 2라운드 픽 2장은 댈러스 카우보이스의 1라운드 28번 픽과 재트레이드해 미들 라인배커 데릭 브룩스를 뽑았는데 두 선수는 각각 1999년과 2002년 NFL 올해의 수비수 상을 수상했고 팀의 첫 슈퍼볼 우승의 주역이 되며 NFL 명예의 전당은 물론 벅스의 셋 뿐인 영구결번에까지 이름을 올렸다. 그리고 이글스는 벅스의 우승으로부터 15년 후에나 첫 슈퍼볼 우승을 하게 된다.
당시 벅스의 단장이였던 리치 맥케이가 훗날 밝히길 그때 이미 그의 컴바인 워크아웃이 대학 시절 경기 테이프 속 모습과 똑같지 않다고 생각했고 여러 자리의 보강이 필요했던지라 마물라를 원하는게 명확했던 이글스를 자극하기 위해 보스턴 칼리지에 프런트 오피스와 코치진을 대거 파견하고 이를 본 탬파 언론들이 벅스가 마물라를 원한다고 보도를 하자 반박하지 않는 등 연막을 열심히 쳤었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마물라가 결코 나쁜 풋볼 선수는 아니었다며 문제가 된 건 운동 능력에만 얽매인 스카우팅 과정임을 꼬집었다.
[1] 당시 다른 선수들은 한 번도 안해보고 하는 경우도 흔했다고 한다.[2] 인생으로 치면, 우연히 수능이나 시험 한번을 잘 쳐서 합격했지만 그만큼 올라간 수준을 따라가지 못하고 대학 생활이나 직장 생활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는 케이스다.[3] 컴바인때 기대이상 수치를 뽑아내 높은 순위를 따내는 워크아웃 반짝스타도 있지만, 대학 경기중 보여준 몇번의 행운이 섞인 영상덕에 높은 순위를 따낸 필름 워리어같은 신인도 있다. 공통적으로 운동능력에만 주목하거나, 우연히 그 선수의 퍼포먼스 크리를 찍는 걸 보고 혹해서 지명했다가 실패한 케이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