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 마르코 발로크 (Марко Валок / Marko Valok) |
출생 | 1927년 3월 5일 |
사망 | 2024년 9월 30일 (향년 97세) |
국적 | 세르비아 |
출신지 | 유고슬라비아 왕국 베오그라드 수르친 |
포지션 | 센터 포워드 |
신체조건 | 176cm | 77kg |
소속팀 | FK 나프레다크 크루셰바츠 (1946-1947) FK 파르티잔 (1947-1959) |
국가대표 | 6경기 3골 (1949-1950) |
감독 | 버마 대표팀 (1959-1963) FK 파르티잔 (1963-1964) FK 파르티잔 (1965) FK 부두치노스트 티토그라드 (1976-1977) 유고슬라비아 대표팀 (1977) 필라델피아 퓨리 (1979) FK 보이보디나 (1979-1980) FK 보라츠 바냐루카 (1981) FK 테테크스 (1981-1982) 아다나 데미르스포르 (1982-1983) FK 라드 (198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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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現 세르비아)의 전 축구 감독.2. 생애[1]
2.1. 선수 생활
2.1.1. 클럽
발로크는 FK 나프레다크 크루셰바츠의 창단 멤버로 축구계에 데뷔했고 첫 공식 경기에서 득점을 올려 팀의 첫 득점자로 역사에 남았다.발로크는 1947년에 FK 파르티잔으로 팀을 옮겼고 1959년에 은퇴할 때까지 그곳에 머물렀다. 발로크는 1회의 유고슬라비아 1부 리그 우승과 3회의 유고슬라비아컵 우승을 이끌었고 통산 411골로 스체판 보베크에 이어 팀 통산 득점 2위에 올라있다. 그리고 그는 베치티 데르비에서 13골을 넣어 데르비 최다 득점자로 남아있다.
2.1.2. 국가대표
발로크는 1949년 6월, 노르웨이전을 통해 유고슬라비아 대표팀에 데뷔했다. 발로크는 이 경기에서 골을 넣지는 못했지만 유고슬라비아는 3:1로 승리를 챙겼다.발로크는 1950년 월드컵 지역 예선 이스라엘과의 2차전에 출전해 2골을 넣어 5:2 승리를 이끌었다. 그리고 그는 프랑스와의 최종 라운드 1차전에 출전했지만 득점은 올리지 못했다.
발로크는 1950년 월드컵이 끝나고 나서야 대표팀에 다시 소집되어 친선 경기 3경기를 더 뛰었다.
2.2. 이후
발로크는 버마 대표팀을 시작으로 1984년까지 여러 축구팀에서 감독을 맡았다.3. 플레이 스타일 & 평가
발로크는 강력하고 정확한 샷과 탁월한 헤딩 능력을 갖춘 터프하고 강한 선수였지만 그의 가장 큰 무기는 위치를 선정하는 본능이었다. 그는 주로 위치 선정 능력을 통해 오픈 찬스에서 슈팅을 시도했지만 수비수를 속여 골을 넣는 것도 가능했다.4. 수상
4.1. 선수
4.1.1. 클럽
- 유고슬라비아 1부 리그 우승 1회: 1948-49(FK 파르티잔)
- 유고슬라비아컵 우승 3회: 1952, 1954, 1956-57(FK 파르티잔)
- 유고슬라비아 1부 리그 준우승 4회: 1953-54, 1955-56, 1957-58, 1958-59(FK 파르티잔)
- 유고슬라비아컵 준우승 2회: 1948, 1958-59(FK 파르티잔)
4.1.2. 개인
- 유고슬라비아 1부 리그 득점왕 1회: 1950(FK 파르티잔)
4.2. 감독
4.2.1. 클럽
- 유고슬라비아컵 준우승 1회: 1976-77(FK 부두치노스트 티토그라드)
[1] 출처: 위키피디아, 11v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