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17 22:28:43

마당

1. 집의 앞뒤, 혹은 한가운데에 있는 평평한 땅2. 의존명사3. 파푸아뉴기니의 도시
3.1. 역사

1. 집의 앞뒤, 혹은 한가운데에 있는 평평한 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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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로 단독주택이나 옛날 전통가옥에 있는 땅이다. 한국식 마당은 일본이나 서양의 정원과 달리 모래나 자갈로 된 맨땅이며 앞마당에는 평상[1]을, 뒷마당에는 장독대나 장작 패는 그루터기 등을 두는 등 매우 실용적으로 활용되는 것이 특징이다. 오히려 잔디 등 식물을 심는 것은 마당 한 켠에 텃밭을 만드는 게 아니면 전통적으로 금기시됐다. 이러한 연유 때문에 마당이란 단어는 '어떤 일이 이루어지고 있는 곳'이란 관용적 의미로도 쓰인다.

한국의 전통가옥은 건물이 마당을 둘러싸는 형태가 많았다. 이는 대청과 함께 현대 대한민국 아파트 평면 구조에도 영향을 끼쳤다는 주장으로도 연결된다. 한국인들이 좁은 복도 공간을 기피하고,[2] 현관에서 거실로 바로 출입하는 구조를 선호하는 것도 마당을 거실로 재해석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2. 의존명사

1. 어떤 일이 이루어지는 판이나 상황.[3]
  • 급한 마당에 주저하고 말고가 없었다.
2. 판소리나 탈춤 따위의 단락을 세는 단위.
  • 판소리 열두 마당.

3. 파푸아뉴기니의 도시

Madang

파푸아뉴기니뉴기니 섬 북동부에 위치한 항구 도시로, 인구는 약 3만 명이다. 옛 독일어 지명은 프리드리히-빌헬름샤우펜(Friedrich-Wilhelmshafen)이다. 시가지는 S 형태의 만의 양안에 형성되어 있고, 반도 내에는 작은 석호도 있다. 동남쪽 200km 지점의 라에와 도로로 연결되어 있으며, 시가지 북부에 마당 공항이 있다. 태평양 전쟁기의 전장 중 하나로, 1942-44년 일본군이 주둔하였다.

3.1. 역사

1871년 러시아인 생태학자 니콜라이 미클루코 마클라이가 방문, 원주민들의 환대를 받으며 15개월 간 머무르다 말라리아에 걸려 떠났다. 그리고 1884년 4월, 독일 탐사대가 프리드리히 빌헬름샤우펜이라 명명하였다. 본격적인 마을은 핀츠하펜을 대신할 주도로 선정된 1891년에야 조성되기 시작하였고, 커피 플랜테이션이 행해졌다. 다만 이곳 역시 말라리아가 창궐하자 독일 당국은 1899년 뉴브리튼 섬의 헤베르트쇠헤 (코코포)로 주도를 재이전하였다. 1910년대 들어 현지 원주민들의 지명인 '마당'이 프리드리히 빌헬름샤우펜을 대체하였다. 태평양 전쟁 중인 1942년 일본군이 무혈 점령하여 기지화하였으나, 1943년 라에를 점령한 호주군이 점차 북상한 끝에 1944년 4월 24일에 수복하였다. 전투 중 파괴된 도시는 전후 복구되었다.


[1] 여름철에는 방이 아닌 마당에 평상을 설치하고 잤으며, 조리도 가마솥을 따로 놓고 했다. 집 안에서 아궁이와 구들을 분리할 수 있는 방법이 없어서이기 때문이다.[2] 일부 서양인들과 일본인들이 좁고 길쭉한 복도나 홀이 존재하며 거실에도 문을 달 수 있는 평면 구조를 선호하는 것과 정반대이다.[3] 주로 관형사, 어미 ‘-은’, ‘-는’ 뒤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