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on Lim. 위키피디아 항목
1918년 3월 8일, 중국 하이난 출생[1]
1991년 1월 4일, 미국 브루클린에서 사망 (향년 72세)
푼 림은 뗏목에서의 길고 위험한 항해 동안 직면했던 엄청난 어려움을 극복하는 데 있어 뛰어난 용기, 인내력, 수완을 보여주었다.
-림 푼이 받은 대영 제국 훈장에서
-림 푼이 받은 대영 제국 훈장에서
1. 개요
해상 조난 후 구명 보트에서보통 한국에선 최장 표류기록을 영국인 베일리 부부가 가지고 있다고 잘못 알려져있다. 베일리 부부는 요트를 타고 영국을 출발, 대서양을 건너 파나마 운하를 거쳐 갈라파고스 제도로 향하던 중 1973년 3월 4일 요트가 향유고래와 부딪혀 침몰하자 고무로 된 구명보트에 식량과 물, 가스난로, 빗물받이, 양동이 등 필수 물품을 옮겨 실은 후 무려 118일동안을 표류를 하다 한국국적의 원양어선으로부터 구조를 받았다. 베일리 부부는 그 당시의 경험을 '베일리 표류기'란 제목의 책으로 출간했으며 국내에도 번역 출판되었다.
그런데 림 푼(1918~1991)은 1942년 11월 23일∼1943년 4월 5일까지 베일리 내외보다 보름이나 더 긴 133일을 표류하면서 살아남았다. 게다가 그는 U보트의 어뢰공격으로 격침당하여 살아남은 유일한 생존자로서 생필품을 가득 준비했던 베일리 내외보다 불리한 상황에서도 살아남았다. 1943년 뉴욕타임즈의 기사.
1.1. 조난
림은 영국 해군 상선 SS 벤 로맨드(SS Ben Lomand)호의 2등 항해사였다. 사이드항을 떠나 케이프타운을 경유한 뒤 남아메리카의 네덜란드령 가이아나로 향하던 배가 1942년 11월 23일 브라질 해안에서 북쪽으로 약 250마일 떨어져서 항해하고 있을 때 U-172의 어뢰공격을 받으면서 SS 벤 로맨드는 침몰되었다. 그 당시 선실에 있던 림은 구명조끼를 가지고 구명보트 스테이션으로 갔지만 결국 파도에 휩쓸리고 말았다. 림이 다시 수면으로 올라왔을 땐, 주위엔 나무 판자들만 떠다닐 뿐이였다.당시 림이 발견한 구명 땟목의 사진 |
이것으론 오래 버틸 수 없었기에 그는 뗏목에서 생각 끝에 손전등에 든 스프링을 길게 늘여서 밧줄에 묶었고 뗏목에서 떼어낸 못을 구부려 낚시바늘을 만든 다음 하드택을 조금씩 떼내 이를 미끼로 물고기를 잡았다. 잡은 고기 대부분은 날것으로 먹었지만 햇빛에 말려서 먹기도 했다. 때때로 고기 조각을 미끼로 하여 갈매기를 뗏목에 유인하여 잡은 후 고기를 바닷물에 절여 육포로 만들었다. 먹을 건 어찌 해결되었지만 가장 중요한 건 물이었다. 그나마 구명조끼를 일부분 찢어서 접시같이 만들어 빗물을 받아 저장했으며 체력이 약해지는 걸 막고자 시간을 내서 뗏목을 밀면서 헤엄을 치면서 체력을 꾸준히 단련했다. 하지만 무기라곤 없었기에 상어라도 오면 어쩌나 늘 긴장하며 헤엄쳐야 했다.
가끔 뗏목 주위로 화물선이 지나갈 때면 림은 유창한 영어로 구조를 요청했지만, 화물선 선원들은 그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3] 또한 미해군 순찰기가 그를 발견해 구출을 시도한 적이 있었으나, 그 당시 폭풍이 몰아닥치는 바람에 구출에 실패했다.
1.2. 구조
1943년 4월 5일, 마침내 림 푼은 사고현장으로부터 무려 1,101Km 이상 떨어진 브라질 연안에서 세일리노 폴리스라는 작은 어선에 의해서 발견되었고 어선의 어부 3명에게 구조된다.구조되었을 당시 그는 9kg이 빠진 상태였으며, 제대로 걸어다니질 못했다. 다행히 3일 정도 지나니 얼추 걸어다닐 수 있었으며, 브라질 병원에서 2주간 안정을 취하자 완전히 건강을 되찾았다.
이렇듯 세계적인 특종이 되면서 그는 영국 정부가 수여하는 대영 제국 훈장(British Empire Medal)을 받았고, 스코틀랜드의 해운 회사 벤 라인으로부터 금손목시계를 선물받았으며, 그의 일화가 영국 해군 매뉴얼에 실리게 되었다.
후에 림은 미국의 마이애미를 걸쳐 뉴욕으로 이민을 갔다.[4] 림은 미국의 항공기 제조회사 커티스 라이트에서 일자리를 얻었고 1945년 공장이 문을 닫을 때까지 일했다. 공장이 문을 닫자 림은 미국 해운국 비상 함대 공사의 메스맨[5]이 되었으며 1983년에 수석 스튜어드로 은퇴할 때까지 그곳에서 일했다. 1952년엔 미국 시민권을 얻었고, 그해 말 전 동료 선원의 딸과 결혼하여 딸 셋과 아들 하나를 두었다.[6] 또한 미 해군에 자원입대했는데 림 푼이 기네스북 기록 보유자라는 걸 당연히 미 해군도 알아서 바다에서 잘 적응할테고 문제없으리라 봤으나 발이 평발이라서 군에 적합하지 않다고 입대를 거절당했다.
림은 1991년 1월 4일, 브루클린에서 7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2. 유사 기록
스티브 칼란 (Steven Callahan)은 대서양에서 76일을 살아남았다.루이스 잠페리니(Louis Zamperini)와 러셀 알렌 필립스(Russell A. Phillips)는 태평양에서 47일을 살아남았다.
더갈 로버트슨(Dougal Robertson)은 태평양에서 38일을 살아남았다.
물론 림 푼이 기록한 날짜를 생각하면 이들 날짜는 떨어지긴 해도 저 상황에서 며칠 살아남는 것도 보통 힘든 게 아니다.
로즈 노엘(Rose Noelle)을 포함한 4명은 얼어붙은 배에서 119일을 살아남았다. 그밖에도 남미 어부 5명이 탄 배가 100일 넘게 표류하던 일도 있다. 이는 리더스 다이제스트에 나온 세계 사건 사고에 나온 실화인데 이들은 일본 원양어선에 구조되었다.
[1] 중국명 판롄(潘濂, Pān Lián)[2] 휴대용 봉화 비슷한 물건이다.[3] 이에 대해선 림이 동아시아인이라 아무래도 주축국인 일본의 선원이라고 착각해서 태우지 않았다는 주장과 당시 독일의 U보트가 포로를 표류자로 위장시켜 유인한 뒤, 구출하기 위해 다가오는 선박을 공격한다는 소문이 돌았기 때문에 태우지 않았다는 주장이 있다.[4] 원래라면 당시 미국의 중국 이민자 할당량이 초과된 탓에 림은 이민이 불가능했다. 그러나 미상원의원 워렌 매그너슨의 도움으로 림은 특별 면제를 받아 무사히 이민을 갈 수 있게 되었다.[5] 음식을 배급하고 테이블을 치우는 직종.[6] 아들인 조지 푼은 2020년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