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1-12-20 16:30:00

리스토마니아

1. 개요2. 리스토마니아의 기행일화3. 사회적 배경4. 기타

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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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2년 베를린에서 열린 리스트의 연주회 풍경을 묘사한 풍자화. 우측 하단에 연주를 듣다 기절한 여성의 모습이 보인다.

리스토마니아(Lisztomania)는 역사상 최고의 피아니스트라 여겨지는 프란츠 리스트의 광적인 팬들을 의미하는 용어로, 이 단어를 처음 만들어낸 사람은 리스트의 지인이기도 했던 독일의 시인 하인리히 하이네이다. 약 9년동안 교제하고 있었던 마리 다구 백작부인과의 관계를 정리한 후 본격적으로 전 유럽을 돌며 연주여행을 했던 리스트는 비인간적인 현란한 피아노 기교와 잘생긴 외모, 화려한 퍼포먼스로 당대 음악가로서는 최초의 아이돌 팬덤을 형성했으며 그의 연주를 듣고 기절한 여성들도 있을 정도다. 동시대의 비르투오소 바이올리니스트이자 리스트의 롤모델이기도 했던 니콜로 파가니니도 연주로 나폴레옹의 여동생을 기절시키거나 전유럽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긴 했지만, 음악과 연주를 넘어 음악가 본인의 초상화를 사서 간직하거나 스토킹을 하는 등 음악가 자체에 광적으로 집착하는 팬덤이 생겨났던 사람은 리스트가 처음이다.

아래 문단을 보면 알겠지만 심각한 팬들은 현대의 아이돌 사생팬들을 방불케 한다.

2. 리스토마니아의 기행일화

  • 리스트의 연주를 듣다가 기절하는 여성이 속출했다.
  • 리스트가 연주를 끝내면 청중들이 일제히 꽃이나 보석등을 무대로 던졌다.
  • 한 여성은 그의 앞에 무릎을 꿇고 손끝에 키스를 해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 리스트가 마시고 남긴 홍차 찌꺼기를 자신의 향수병에 담거나, 그가 피웠던 시가꽁초를 F.L이라는 이니셜이 새겨진 자신의 로켓에 장식했다.
  • 하이네는 두명의 헝가리의 백작부인이 리스트의 손수건을 잽싸게 붙잡기 위해 땅바닥으로 몸을 내던져 피터지게 싸우는 모습을 목격했다고 한다.
  • 리스트가 묵었던 호텔에 침입해 욕실에 남은 목욕물을 훔쳐간 사람도 있다.
  • 러시아의 숙녀들은 오직 배를 타고 떠나는 리스트를 배웅하기 위해 악단이 딸린 대형증기선을 빌렸다.
  • 한 마을에서 연주회를 열었을 때, 리스트가 연주회 수익을 마을에 기부하자 감격한 마을 남성들이 리스트가 탄 마차를 끌던 말들을 풀어주고 자기들이 대신 마차를 끌려고 했다.
  •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은 독일 함부르크에서 넉넉지 않은 주머니 사정에도 불구하고 리스트의 연주회를 보러 갔는데, 이 연주회에 대해 "리스트는 (연주회를) 시작하기도 전에 청중을 흥분시켰다", "리스트가 연주를 마치자 사방에서 비오듯 꽃다발이 날아들었다. 예쁘고 젊은 여자들과, 한때 예쁘고 젊었을 노부인들이 저마다 부케를 던졌다"와 같은 기록을 남겼다. 또, 같은 살롱에 있었을 때 "그가 살롱에 들어오자 한 줄기 전류가 관통하는 느낌이었고, 자리에 있던 여성들이 일제히 일어났다", "모든 이의 얼굴에 햇빛이 비추는 것 같았다"는 일기도 남겼다.
  • 러시아의 비평가 유리 아놀드는 1842년 4월 8일 그의 연주회에 갔다온 후 자신의 친구들과 이 날을 평생 잊지 않겠다고 맹세했다고.
  • 리스트가 연주회를 마친 후 마차를 타고 도시를 떠날 때면 수십대의 마차가 그 뒤를 쫓았다고 한다. 19세기판 사생택시.
  • 군중을 헤치며 지나가는 리스트의 머리채를 잡아서 머리카락을 뽑아 간직하거나 리스트의 옷을 잡아당겨 찢었다.

3. 사회적 배경

리스트가 아직까지도 그를 능가하는 피아니스트가 없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넘사벽 실력의 천재 피아니스트이긴 하지만, 이러한 현상이 리스트의 출중한 재능만으로 발생한 것은 아니다. 리스트가 피아니스트로서 활동했던 19세기 초~중반은 혁명 이후 부르주아 계급이 예술의 주된 향유층으로 대두되는 시기였는데, 이들은 엘레강스, 즉 품위 있으며 정신적인 미의식 보다는 물질적인 것을 추구하는 경향이 컸다. 이들이 음악의 주 소비계층이 되면서 음악이라는 예술의 정신적인 요소보다는 외형적인 기교편중주의가 강해졌고, 이런 배경으로 인해 니콜로 파가니니, 프란츠 리스트, 지기스문트 탈베르크 같은 비르투오소들이 탄생하게 된다. 이렇게 음악에 있어 기교와 볼거리를 중시하는 경향이었던 시대에 리스트의 초절기교와 빼어난 외모, 연주할 때의 과장된 제스처 등은 대중이 원했던 스타상에 완벽하게 부합했다. 거기다 살롱에서 주로 연주했던 쇼팽과는 달리 리스트는 극장에서 연주회를 열었는데, 극장은 살롱과 달리 연주자와 다수의 청중이 완전히 분리된 공간으로, 청중은 집단화 되어 집단 히스테리에 가까운 열광에 빠지기 쉬워졌던 것.

또, 하이네는 리스트의 연주를 듣고 여성들이 기절하는 현상에 대해 여성 전문의사에게 자문을 구했는데, 그에 의견에 따르면 셀 수 없이 많은 촛불과 수백가지의 향수냄새, 땀냄새로 범벅된 음악회장에서 그의 연주와 몸짓을 보고 극도로 흥분한 여성관객들이 과호흡을 일으키거나, 당시 상류계급의 여성들이 착용했던 코르셋으로 인해 호흡량이 부족해 빈혈증상이 일어나 기절했다는 것이다.

이처럼 리스토마니아라는 광적인 팬덤현상은 리스트 한사람의 재능과 매력만으로 일어난 것이 아니고, 리스트가 기교와 외형적인 것을 선호하던 당시의 예술 소비층의 니즈를 완벽하게 충족시키는 시대에 부합하는 연주자였으며 리스트 본인도 그 점에 대해 잘 파악하고 있었던 덕분이라고 보는 것이 정확하다.

하지만 이렇게 리스트가 화려한 기교로 인기를 얻었고, 기교를 과시하기 위한 곡들을 남겼다고 해서 그를 기교에만 편중됐고 예술성은 부족한 작곡가라고 생각하는 것은 옳지 않다. 확실히 비르투오소로서 온 유럽을 여행하며 순회연주를 하던 시절에 리스트가 남긴 곡은 어렵긴 더럽게어렵지만 작품성은 아쉬운 작품이 많긴 했으나, 카롤린 자인 비트겐슈타인과 만나 그녀의 조언에 따라 바이마르에 정착해서 작곡활동에 집중한 이후로는 기교는 물론이고 예술적으로도 훌륭하며, 후대의 인상파, 후기 낭만파 작곡가들에게 영향을 끼친 곡들을 다수 남겼다. 또한 리스트는 오케스트라에 교향시(Symphonic Poem)라는 새로운 음악 장르를 만들었는데, 이는 후대의 드보르작이나 시벨리우스 같은 많은 후기 낭만주의 작곡가들에게 엄청난 영향을 주었다.

4. 기타

SCP 재단의 SCP-1841-EX의 소재가 바로 리스토마니아이다. 링크 한글번역은 없지만 요약하자면 리스트의 연주회를 들은 청중들이 비이성적인 행동을 하는 원인불명의 현상, 일명 SCP-1841 "리스토마니아"가 유럽에 확산됐으나 리스트는 독일과 교회의 보호를 받는 몸이라 재단이 그를 확보하는데는 실패했고, SCP-1841의 감염원인 리스트가 사망함으로서 SCP-1841도 소멸했나 싶었더니만 20세기에 들어 엘비스 프레슬리, 존 레논 등 리스트 처럼 다수의 열광적인 팬을 거느린 아티스트들이 등장했고, 재단이 이 이상의 밈 오염을 막기 위해 아티스트들을 암살하는 일까지 저질렀으나 사실은 SCP가 아니라 그냥 팬덤현상이었다는 내용. 한마디로 재단의 대형 삽질.

클래시컬로이드 2기 10화 리스트 vs. 리스트 편에서도 리스트에 열광하는 팬 군단이 등장하는데 이 쪽은 리스트가 여체화 당하기도 했고 리스트의 경쟁상대인 아오이 리스트가 생전의 리스트 마냥 소녀팬을 양산한 게 불만이었어서 그런지 전부 남팬들이다.

피닉스의 Lisztomania라는 곡의 제재가 제재다 보니 뮤비에 리스트 박물관도 등장한다.

1975년에 나온 켄 러셀이 감독한 리스토마니아라는 리스트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가 있는데, 조르주 상드쇼팽이 SM커플로 등장하질 않나 리스트의 거시기가 크고 아름답질 않나 리하르트 바그너가 사실은 흡혈귀였고 그가 아돌프 히틀러로 환생하질 않나[1] 리스트가 우주선을 타고 바그너를 무찌르질 않나 켄 러셀 답게 정신이 안드로메다로 가는 영화다. 리스트 역은 로저 달트리가 연기했다.


[1] 참고로 히틀러는 바그너의 열렬한 팬, 즉 바그네리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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