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5-10-13 19:11:15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기원전 174년 법무관)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
라틴어: Lucius Cornelius Scipio
생몰년도 미상 ~ 미상
출생지 로마 공화국 로마
사망지 로마 공화국 로마
지위 파트리키
국가 로마 공화국
가족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조부)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아버지)
아이밀리아 테르티아(어머니)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형)
코르넬리아 아프리카나(누이)
코르넬리아 스키피오니스 아프리키나(누이)
참전 로마-셀레우코스 전쟁
직업 로마 공화국 법무관

1. 개요2. 생애

1. 개요

로마 공화국법무관.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의 차남이다.

2. 생애

로마 공화국의 대표적인 파트리키 집안인 코르넬리우스 씨족의 지파인 스키피오 가문의 일원으로,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루키우스 아이밀리우스 파울루스의 딸 아이밀리아 테르티아의 둘째 아들이다. 형으로 스키피오 아이밀리아누스의 양아버지인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가 있었고, 누이로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 나시카 코르쿨룸의 아내인 코르넬리아 아프리카나, 대 그라쿠스의 아내이자 그라쿠스 형제의 어머니인 코르넬리아 스키피오니스 아프리카나가 있었다.

기원전 190년 아버지와 삼촌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 아시아티쿠스안티오코스 3세와의 전쟁을 위해 원정군을 이끌었을 때, 루키우스는 그들과 함께 동방으로 향했다. 그러나 군사 작전을 수행하던 중 안티오코스 3세의 군대에 붙잡혔다. 티투스 리비우스 파타비누스는 그가 어떻게 붙잡혔는지에 관해 여러 설이 있다고 밝혔다. 한 기록에 따르면, 루키우스는 에우보이아 해안에서 배를 타고 가던 중 생포되었다고 한다. 다른 기록에 따르면, 프레겔라 기병대를 이끌고 안티오코스 3세의 진영 근처에서 정찰을 하던 중 체포되었다고 한다.

안티오코스 3세는 루키우스를 정중하게 대우했고,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에게 몸값 없이 석방하고, 최대한 많은 돈을 주겠다고 제안했다. 스키피오는 아들을 석방한 것에 대해 감사를 표하면서도 돈을 받기를 거절하고, 대신 아래의 조언을 해주겠다고 답했다.
"모든 조건에 동의하고 어떤 상황에서도 로마인과 싸우지 마시오. 왕이 우리 군대의 아시아 진출을 막지 못했고, 속박될 뿐만 아니라 안장에 얹혀진 지금, 동등한 조건으로 평화 제안을 하는 것은 실패로 끝날 것이며, 스스로에게 속는 짓이오."

발레리우스 막시무스는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의 아들인 그나이우스가 법무관에 출마하자, 더 인기있는 후보였던 가이우스 키케로가 그의 아버지의 클리엔테스였기 때문에 출마를 철회한 덕분에 선출되었다고 밝혔다. 현대 학자들은 이 '그나이우스'라는 인물은 실제로 기원전 174년에 법무관이 되어 로마 시민과 외국인 간의 분쟁을 해결하는 책임을 맡은 루키우스를 가리킨다고 봤다. 독일의 고전학자 프리드리히 뮌처는 루키우스의 포로 생활이 그의 명성을 심각하게 손상 입혔기 때문에 가이우스 키케로의 도움이 필요했을 거라고 추정했다.

루키우스는 법무관 재임 기간 동안 감찰관 퀸투스 풀비우스 플라쿠스아울루스 포스투미우스 알비누스 루스쿠스로부터 불량한 행실을 비난받고 원로원에서 재명당했다. 이후의 행적은 전해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