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 로버트 2세 키스 Robert II Keith |
출생 | 미상 |
스코틀랜드 왕국 이스트로디언 키스 영지 | |
사망 | 1332년 8월 11일 (향년 미상) |
스코틀랜드 왕국 더플린 무어 | |
아버지 | 윌리엄 키스 |
아들 | 존 키스 |
직위 | 마리샬 백작 |
1. 개요
스코틀랜드 왕국의 귀족, 군인. 제1차 스코틀랜드 독립 전쟁과 제2차 스코틀랜드 독립 전쟁에서 잉글랜드 왕국에 맞섰지만, 더플린 무어 전투에서 전사했다.2. 생애
키스 클랜은 노르만족 출신으로 스코틀랜드로 건너와 말 콜룸 4세와 일리암 1세 치세에 스코틀랜드 왕실 마리샬을 역임한 허비 드 키스를 시작으로, 대대로 마리샬 작위를 물려받으며 왕실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로버트 2세는 허비 드 키스의 5대손이며, 아버지 윌리엄 키스도 마리샬을 역임했다. 그는 청년기 부터 군 경력을 쌓았으며, 포스 강 너머 땅의 재판관을 맡았다. 제1차 스코틀랜드 독립 전쟁에 가담해 잉글랜드군과 맞서다가 1300년 크리 강 인근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생포된 뒤 잉글랜드에 억류되었다.1308년 스코틀랜드로 돌아온 그는 1309년 3월 세인트앤드루스에서 열린 로버트 1세의 첫번째 스코틀랜드 의회에 참석했다. 그 후 로버트 1세의 군대에서 고위급 장성으로 복무했으며, 1314년 배넉번 전투 직전에 잉글랜드 국왕 에드워드 2세의 군대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파견된 정찰대의 공동 지휘관을 맡았다. 배넉번 전투 중에는 기병 500명을 이끌고 잉글랜드 궁수대를 격파해 적군에 맞서 대승에 일조했다. 1320년 다른 영주들과 함께 교황 요한 22세에게 스코틀랜드의 독립을 인정해달라고 청원한 아브로스 선언에 서명했다. 1323년 여름, 스코틀랜드 사절단의 일원으로서 잉글랜드 사절단과 협의한 끝에 13년간의 휴전 협정을 체결했다.
1326년, 프랑스로 파견된 스코틀랜드 사절단의 일원이었고, 그 해 4월 코르베일 조약에서 샤를 4세와 스코틀랜드-프랑스 동맹의 조건을 재협상했다. 1329년 로버트 1세가 사망한 뒤 후계자인 데이비드 2세에게 충성을 맹세했다. 1332년 에드워드 발리올을 앞세운 잉글랜드 귀족들이 쳐들어오자, 그는 섭정 돔날 2세가 이들을 물리치기 위해 급히 모집한 군대에 참여했다. 그 해 8월 11일 더플린 무어 전투에 참전했지만 패배를 면치 못하고 전사했다. 그에게는 아들 존 키스가 있었지만 오래 살지 못했고, 손자 로버트 3세 키스가 직위를 계승했다. 그러나 그 역시 1346년 네빌스 크로스 전투에서 전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