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renz Rifle Lorenz-Gewehr 로렌츠 소총 | |||
로렌츠 M1854 | |||
<colbgcolor=#c7c7c7,#353535><colcolor=#000,#fff> 종류 | <colbgcolor=#ffffff,#121212><colcolor=#000,#fff>강선 머스킷 | ||
원산지 | [[오스트리아 제국| ]][[틀:국기| ]][[틀:국기|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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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c7c7c7,#353535><colcolor=#000,#fff> 역사 | <colbgcolor=#ffffff,#121212><colcolor=#000,#fff>1855년~1867년 | ||
개발 | 요제프 로렌츠 | ||
개발년도 | 1852년~1854년 | ||
생산년도 | 1854년~1867년 | ||
생산수 | 688,800정 | ||
단가 | $14~18 (1861년) | ||
사용국 | [[오스트리아 제국| ]][[틀:국기| ]][[틀:국기| ]] [[미국| ]][[틀:국기| ]][[틀:국기| ]] [[멕시코 제2제국| ]][[틀:국기| ]][[틀:국기| ]] [[사르데냐 왕국| ]][[틀:국기| ]][[틀:국기| ]] [[작센 왕국| ]][[틀:국기| ]][[틀:국기| ]] [[몬테네그로 공국| ]][[틀:국기| ]][[틀:국기| ]] | ||
사용된 전쟁 | 제2차 이탈리아 독립 전쟁 남북 전쟁 1월 봉기 제2차 슐레스비히 전쟁 제2차 프랑스-멕시코 전쟁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 제3차 이탈리아 독립 전쟁 프랑스-프로이센 전쟁 태평양 전쟁(남아메리카) | ||
기종 | |||
파생형 | M1854 M1862 Zündnadelgewehr Ö/M 벤츨 소총 M1867 그린 소총 피보디 M1870 | ||
세부사항 | |||
탄약 | .547 로렌츠 탄 | ||
급탄 | 전장식 단발 | ||
작동방식 | 퍼커션 캡 | ||
총열길이 | 952.5mm | ||
전장 | 1,337mm | ||
중량 | 4.28kg | ||
탄속 | 373m/s | ||
유효사거리 | 225m | ||
최대사거리 | 675m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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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오스트리아 제국군의 제식 소총/강선 머스킷.
2. 역사
오스트리아 제국의 장교였던 요제프 로렌츠(Joseph Lorenz)가 개발했으며, 1854년 기존의 제식 총기였던 아우구스틴 M1842 머스킷을 대체하는 오스트리아군의 새로운 제식 소총으로 채택되면서 1855년부터 오스트리아군에 보급되기 시작한다. 당시 오스트리아 국영 조병창이 생산할 수 있는 데에 한계가 있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생산 물량은 민간 업체에 위탁되었다. 이러한 민간 업체들 중에는 빈 조병창 등 정밀한 총기 제조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업체도 있는 반면 총기를 제작하기 위한 정밀 기술이 부족한 업체도 있었기 때문에 군에 지급된 로렌츠 소총의 품질은 그 편차가 심했다고 알려져 있다. 또한 생산 능력이 부족해서 1859년까지도 전군에 로렌츠 소총을 보급하지 못하고 있었다.로렌츠 소총의 첫 실전 투입은 1859년 발발한 제2차 이탈리아 독립 전쟁으로, 비록 오스트리아가 전쟁에서 졌으나 총의 성능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그 외에도 제2차 프랑스-멕시코 전쟁에서 오스트리아 지원군이 사용했으며, 발칸반도에서도 일부 사용되었다.
로렌츠 소총은 특히 남북 전쟁에서 남군 북군 가리지 않고 광범위하게 사용되었는데, 미국에서 226,000정 이상을, 아메리카 연합국에서 100,000정을 수입하면서 스프링필드 M1861, 패턴 1853 엔필드 다음으로 많이 사용된 총기로 이름을 올렸다. 그러나 총의 선호도는 스프링필드나 엔필드에 비해서 떨어졌는데, 일정하지 못한 품질 문제도 있고 중고품을 들여오다보니 총도 낡은 상태였으며 후술할 탄약 호환 문제로 인해 제 성능을 발휘하지 못했다. 때문에 이러한 저질 로렌츠 소총은 대부분 스프링필드나 엔필드를 노획하면 바로 버려지는 처지였다.
로렌츠 소총은 1862년 추가 개량을 거치고 계속 오스트리아 제국군의 제식 총기로 사용되었는데, 이후 1866년 벌어진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에서 프로이센 왕국군의 후미장전식 드라이제 소총에 명백한 열세를 보이면서 완전히 도태되고 만다. 전쟁이 끝나고 오스트리아는 로렌츠 소총 70,000정을 브리치로딩 방식의 벤츨 소총으로 개조하여 베른들 소총으로 전군 교체가 완료될 때까지 사용했다. 또한, 많은 양의 로렌츠 소총을 노획한 프로이센 왕국은 이 중 35,599정을 드라이제와 같은 후장식 소총으로 개조한 후 프랑스-프로이센 전쟁에서 활용했다.
3. 특징
로렌츠 탄에 대한 건들건들의 소개 영상 |
그러나 남북전쟁에서는 그 성능을 온전하게 발휘하지 못했는데, 앞서 언급된 총의 품질 문제도 있었지만 이 탄약 문제도 무시할 수 없었다. 북군에서는 로렌츠 소총에 미군 표준 탄을 호환하기 위해 총열을 .54구경에서 .58구경으로 인위적으로 넓혔다. 남군에서는 .54구경 상태 그대로 사용했는데, 전용 탄약이 아닌 같은 구경의 M1841 미시시피 소총의 탄약을 사용하다 보니 많은 문제를 일으켰다. 또한 오스트리아가 제작한 교범에는 로렌츠 소총의 사용 및 유지관리 방법이 적혀 있었으나 이를 영어로 번역해 배포하지 않았기 때문에 유지관리가 개판이 되었다.
결정적으로 로렌츠 탄이 나왔을 때는 드라이제로 대표되는 탄피를 이용한 후미장전식 총기가 대세가 되어 가고 있는 추세였기 때문에 큰 빛을 보지 못하고 도태될 수밖에 없었다.
4. 파생형
- M1854
기본형.
- M1862
M1854의 개량형. .58구경 미니에 탄도 사용할 수 있게끔 총열이 두꺼워졌으며, 품질이 중구난방이었던 M1854에 비해 품질이 비교적 일정했다.
- Zündnadelgewehr Ö/M
프로이센 왕국이 노획한 M1854를 후장식 소총으로 개조한 버전.
- 피보디 M1870
세르비아 공국에서 약 30,000정의 M1854와 M1867 그린 소총을 피보디 시스템을 적용한 브리치로딩 시스템으로 개조했으며, 세르비아-오스만 전쟁(1876~1878)에서 주력 소총으로 사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