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olbgcolor=#ffff00><colcolor=#DA251D,#e72d24> 럼반팟 林文發(임문발) | Lâm Văn Phát | |
| 출생 | 1920년 |
| 프랑스령 인도차이나 껀터 | |
| 사망 | 1998년 10월 30일 (향년 77~78세) |
|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타애나 | |
| 국적 | |
| 직업 | 군인 |
| 학력 | 껀터 고등학교 달랏사관학교 |
| 최종 계급 | 중장 |
| 복무 기간 | 1946년 ~ 1965년 1975년 |
| 참전 |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 베트남 전쟁 |
1. 개요
남베트남의 군인이다.2. 생애
껀터에서 교사의 아들로 태어나 1945년 독립단체인 선봉청년단에 가입해 껀터를 해방했다. 청년단을 탈퇴하고 1946년 프랑스군에 입대해 달랏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소위로 임관했다.[1] 전선에 투입되었으나 탈영해 누나인 럼티판의 집에 숨어 지냈다. 이후 프랑스로 기계공학을 공부하기 위해 떠났으나 체포되었고 누나의 도움으로 처벌받지 않고 프랑스군으로 복귀했다.1950년 중위로 진급해 소뮈르 기병학교에서 기갑과정을 수료했으며 투득 사관학교에서 기갑장교를 육성했다. 1952년 대위로 진급하고 참모로 있다가 1953년 소령, 1년 뒤 중령으로 진급했다. 베트남 공화국이 설립되고 남베트남군 중령이 되어 제13경보병사단장이 되었다. 이후 후인반까오에게 이임하고 민방감찰관을 지내다가 미국 지휘참모학교를 수료했다. 1960년 대령으로 진급하고 제2보병사단장이 되었다.
이후 제3군단장으로 재직 중 즈엉반민이 주도한 쿠데타에 참가해 응오딘지엠을 실각시켰다. 쿠데타가 성공하고 소장으로 진급했다. 하지만 쿠데타 세력간의 내분으로 즈엉반득과 함께 쿠데타를 시도했으나 실패해 군사재판에 회부되어 사형을 구형받았으나[2] 사형은 면제받고 불명예제대되었다.
1975년 사이공 공방전 당시 중장으로 현역에 복귀했고 미국으로 도망간 수도방어사령관 응우옌반민의 후임으로 방어사령관에 임명되어 전투를 치렀으나 즈엉반민의 항복선언으로 무장해제되어 체포되었다. 이후 재교화 수용소에 있었고 1986년 석방되어 미국 버지니아주로 이주했고 캘리포니아주 샌타애나에서 여생을 보내다가 1998년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