랜덜 데이비드 슈가트 Randall David Shughart | |
출생 | 1958년 8월 13일 |
미국 네브래스카주 링컨 | |
사망 | 1993년 10월 3일 (향년 35세) |
소말리아 모가디슈 | |
복무 | 미합중국 육군 |
복무 기간 | 1976~1993 |
최종 계급 | 미국 육군 중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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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의 군인이다.2. 생애
네브래스카주 링컨 공군집안에서 태어났으며 펜실베이니아 뉴빌에서 아버지의 농장일을 도우며 성장했다.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미 육군에 입대해 병으로 복무하다가 1978년 제75레인저연대로 전입했다. 레인저 스쿨을 수료했고 1983년 델타 포스에 전입했다. 1989년 파나마 침공에 참전한 전적이 있다.
1993년 모가디슈 전투당시 태스크포스로 투입되었다. 고딕 서펀트 작전에 게리 고든과 투입되어었다. 하지만 지상군이 반군의 저항으로 진입이 늦어졌고 작전을 진행하고 있는 블랙호크[1]가 격추되자 고든과 함께 사령관인 개리 슈미트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조종사를 구출하러 갔다. [2]
2.1. 전사
윌리엄 클리블랜드와 토마스 필드, 레이 프랭크의 전사를 확인하고 마이클 듀란트의 생존을 확인한 그들은 슈퍼 62와 스타 41의 지원을 받으면서 시체를 인근 가옥에서 수습한다. 영화에서 마이클 듀랜트와 슈가트가 나눈 대화는 실제이다. "호송대는 어디 있습니까?"라는 듀란트의 물음에 슈가트는 "우립니다."라고 대답하고 헬기 조종석에 꽂혀있던 MP5K 기관단총과 레이 프랭크 준위가 착용하고 있던 권총, 그리고 자신의 탄창(M1911 탄창)을 건네줬다.이후, 상공에서 지원을 해주던 슈퍼 62는 RPG-7 로켓이 조종석에 직격타를 맞아 부조종사가 의식을 잃고 엔진이 심각한 피해를 입어 결국 파키스탄 다국적군이 주둔하는 모가디슈 운동장 인근 지역에 불시착했다. 스타 41은 계속 상공에 남아서 민병대의 접근을 봉쇄했다. 나중엔 슈퍼 61 추락지에 있던 스타 43과 교대로 날아다니며 방어를 했으며 슈퍼 67이 탄약을 보급해주는 등 족히 한 시간에 달하는 17시 40분까지 버텼다.
이 전인 17시 00분경, 토드 블랙번을 데리고 철수했던 험비 3대가 슈퍼 64의 추락지로 출발했다. 17시 41분, 고든의 사망 후 17시 42분 슈가트가 사망한다. 마이클 듀란트는 포로로 생포된다.
미군의 오폭으로 분노했던 군중들은 전사자의 시신들을 벌거벗기고 끌고 다닌 것으로도 부족해 거꾸로 매달아 오물과 돌을 던지기까지 했다.[3] 이후 시신은 수습했으나 조리돌림으로 적지않게 훼손된 상태였다.[4]
사후 명예 훈장을 수여받았다.
[1] 마이클 듀란트의 기체[2] 수도 열세인데다가 분노한 군중들에게 조리돌림당해서 비참한 꼴로 죽을 게 뻔하기 때문. 근데 슈가트와 고든은 이를 알고도 구하러 간 것이다.[3] 이 중에서 제일 험한 취급을 받은 사람이 윌리엄 클리브랜드인데 아예 나체 상태로 길거리에서 조리돌림 당했고 관련사진들이 많이 남아있다.[4] 한 다큐멘터리에서 전 소말리아 민병대원이 고든과 랜디를 사살하고 군중들이 이들의 시신을 훼손하게 내버려둔 것을 후회한다는 소감을 밝혔다. 그러면서 본인말고 다른 민병대원들도 고든과 랜디를 존경하고 있다는 말을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