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몰년도 미상
1. 개요
삼국시대 위나라의 인물로 형주 남양군 사람.2. 생애
분위장군을 지냈고 고락향후에 봉해졌다.[1]전론에 따르면 유훈, 조비와 함께 술자리를 가졌다고 하며, 등전은 팔뚝이 훌륭하면서 군사에 통달했고 빈 손으로 칼이 난무하는 곳에 들어갈 수 있다고 칭송되었다. 조비와 오랫동안 검술을 논해 조비가 등전의 검법을 별로라고 여겼다고 하며, 일찍이 조비가 등전을 좋아하고 조비가 뛰어난 검술을 익혔기에 조비와 겨루길 구했다고 한다.
당시 조비가 술에 취해 숙취를 위해 사탕수수를 먹었는데, 이를 지팡이로 삼아 수 합을 겨루었다. 그런데 3합에 조비가 등전의 팔을 맞추어 좌우에서 크게 웃었고 이를 못마땅해 한 등전은 다시 겨루기를 원했다고 하며, 조비는 자신의 검법은 재빠르고 연속돼 서로 얼굴을 맞추는 것을 꺼렸기에 팔을 맞췄을 뿐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등전은 다시 한 번 겨루자고 말했고 조비는 등전이 부딪혀서 서로 적중되고자 함을 알았기에 거짓으로 깊숙이 들어갔으며, 등전은 갑자기 전진했고 조비는 다리를 피해 등전의 이마를 쳐 좌중에서 모두 놀라면서 바라봤다고 한다.
조비가 자리로 돌아와 웃으면서 이르길 과거에 양경이 순우의에게 그의 옛 방식을 버리게 하고 다시 비술을 수여했으니 조비 또한 등전이 옛 검술을 버리고 요긴한 검술을 다시 받아들이길 원한다고 하자 좌중에서 모두 기뻐했다고 한다.
삼국지집해에 따르면 213년에 조조를 위공에 오르길 권한 신하 중 한 명으로 분위장군 악향후를 지낸 유전(劉展)과 동일인물이라고 한다.
3. 기타 창작물
소설 비열한 성자 조조에서는 양상군자 일화에 등장하는 도둑으로 진식이 자신을 혼내기는 커녕 비단 두 필을 주어 돌려보내자 10년 동안 명사와 고수를 찾아다니면서 검술을 익히는데 전념했으며, 그 때의 은혜를 갚기 위해 진씨 가문의 종복으로 들어왔다. 조조가 하비를 함락하고 하비를 돌아보던 도중에 설영이 조조를 비롯해 여러 사람을 습격하자 등전이 나타나 설영을 쫓아냈으며, 조조가 자신을 섬기기를 권했지만 등전은 진씨 가문을 모셔야 한다고 거절했다.진기가 죽자 조조를 섬겼고 오환 정벌에 종군해 백랑산 전투 때 오환족과 싸우다가 쓰고 있던 칼이 두 동강 나고 오환족 4명이 한꺼번에 달려들자 바닥을 굴러 피했으며, 오환족 10여 명이 조조가 있는 곳을 오자 의천검을 받아 군사들을 이끌고 싸웠다.
조비가 태자가 된 후에는 전투에 참여한 지 오래되어 검술이 퇴보했을 것이라 하자 조비와 사탕수수로 검술을 겨뤘는데, 처음에는 조비가 생각보다 검술을 잘하는 것을 보고 뛰어난 검객에게 배웠을 것이라 추측했다.
그런데 조비가 갑자기 사탕수수를 엉뚱하게 휘두르는 것을 보고 등전은 조비가 고작 세 가지 검법 밖에 배우지 못한 것을 알아챘으며, 조비가 완전 엉터리로 휘두르자 피할 생각 조차 하지 않고 막으려 했다가 갑자기 예상치 못한 공격을 받아 팔꿈치를 맞자 다시 겨루자고 했다. 조비와 다시 겨루다가 조비가 다음 대에 왕이 될 것이라면서 함부로 이기면 안 된다는 것을 깨닫고 일부러 조비에게 일격을 맞아주어 연극을 했다.
[1] 안사고의 한서서례의 주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