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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국군/인사/1946년


대한민국 국군 주요 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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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월 15일2. 2월 1일3. 2월 8일4. 2월 10일5. 2월 17일6. 3월 29일7. 6월 15일8. 9월 11일9. 12월 1일

1. 1월 15일

대한민국 육군의 전신인 남조선국방경비대가 창설되었다. 군사영어학교의 졸업자 21명이 창군요원으로 우선 배치되었다.

2. 2월 1일

대한제국군의 계급을 참고하여 군사계급을 설치했다. 장교는 참위-부위-정위-참령-부령-정령, 하사관은 참교-부교-특무부교-정교-특무정교-대특무정교, 병은 이등병-일등병으로 제정했다.

3. 2월 8일

  • 해안경비대 설치 및 대원 모집
중앙신문 1946년 2월 8일 보도이다. 군정청 국방국에서 대한민국 해군의 전신인 조선해안경비대를 신설하기로 하고 2월 8일부터 장교 자원을 모집하였다. 대원 자격은 18세에서 35세의 중학교 졸업자이며 항해술 등의 유경력자를 우대한다고 적었다. 서류 제출장소는 지금의 서울 서대문구 냉천동인 冷泉町의 감리교신학교였다. 이 감리교신학교 건물은 당시 군사영어학교가 있던 곳이었다.

4. 2월 10일

  • 국방경비대 지역별 연대 인원 모집
광주민보 1946년 2월 10일 보도에 따르면, 전라남도국 국방경비대장인 찰스 에스루번 대위가 전남 지역에서 경비대원을 모집하였다. 군정청은 국방경비대만이 남선(남조선)[1]에서 유일한 군사조직체가 될 것이라고 하였다. 18세에서 35세의 남성을 모집하여 군경력자를 우대하였다. 국방경비대의 최초 9개 연대 중에 제4연대가 전남 광산국 극락면에 위치하였다. 일본군 해군 예비훈련소(일본어로는 예과훈병사(豫科訓兵舍))가 있던 곳이다.

5. 2월 17일

  • 국방경비대 악대 모집
자유신문 1946년 2월 17일자에 따르면 조선경비대에서 군악대를 모집했다.
  • 해안경비대 대원 입대
같은 날, 새로 330명이 해안경비대에 입대 선서하여 해안경비대의 숫자가 517명이 되었다. 훈련선은 용창호로 60톤에 이르고, 마산에서 훈련하였다.[2]

6. 3월 29일

미소공동협상이 결렬되면서 기존에 경찰의 보조 병력으로 만들어졌던 국방경비대를 정식으로 군대화하는 방편이 고려되었다. 그래서 경찰 업무를 맡은 경무국이 국방사령부에서 독립되었다. 군사영어학교는 국방경비사관학교로 개편되었다.

7. 6월 15일

국방사령부가 통위부(統衛部)로 바뀌고, 국방경비사관학교가 경비사관학교로 바뀌는 등 미국이 소련과의 협상력을 이유로 정규군으로 전환을 다소 늦추는 정책을 취하였다. 남조선국방경비대도 이름을 조선경비대로 바꾸는 등 국방이란 단어를 전체적으로 뺐다.

8. 9월 11일

조선경비대의 지휘관이 미국인에서 한국인으로 변경되었다.

9. 12월 1일

군내에서 일본군 출신들이 일본군식 계급제로 전환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임정요인들과의 절충을 통해서 1946년 12월 1일 미국 육군 계급제도를 참조하여 장교는 소위-중위-대위-소령-중령-대령, 하사관은 하사-이등중사-일등중사-이등상사-일등상사-특무상사로 변경하였다. 일본군처럼 소-중-대를 적용하면서도 좌관급 장교 대신에 한국에서 사용하던 영관급 장교를 유지하였다.

부사관의 경우 뒤에 계급체계에 변경이 있었지만, 장교는 1946년 12월 이후 80년 가까이 제도를 유지하고 있다.
[1] 당시엔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전이어서 남조선이란 말이 많이 쓰였다.[2] 보도에 따르면 연습항해 중에 일본의 밀수선을 발견하여, 위조항해증과 일본돈 16만엔등을 압수했고 선장 1명과 선원 2명 등을 체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