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모든 이보다 낮은 여신이여. 한 자루 도끼를 쥐고 당신의 가호 속에 싸웠던 전사가 이제 그 도끼를 놓으려 합니다. 때론 승리했고 때론 패배했습니다. 도끼로 얻었던 명예는 모두 당신에게 보내고 도끼로 갚아야할 원한은 모두 잊으려 합니다. 세상에 맺었던 것들을 모두 끊어내고 풀어내어 아무 것도 남기지 않으려 합니다. 이후로 그는 다시는 무기를 들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죽음을 제외한 어떤 것도 그에게 무기를 들지 않을 겁니다."
지멘은 고개를 숙여 즈라더에게 말했다.
"보살펴주신 여신과 병기에게 인사하십시오."
즈라더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가 이미 숨을 멈췄나 생각한 지멘은 벼슬을 뻣뻣하게 세웠다. 그러나 즈라더는 곧 부리를 움직여 말했다.
"모든 이보다 낮은 여신이여. 긴 세월…… 당신의 가호 덕분에…… 제 도끼와 동행할 수 있었습니다. 명예도 없이, 원한도 없이…… 당신에게 갈 시간을 조용히 기다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지멘은 소리 없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즈라더의 말이 계속되었다.
"적과 나 사이에…… 언제나 서주었던 신의 있는 벗이여. 고맙다. 이제 편히…… 쉬거라."
지멘은 고개를 숙여 즈라더에게 말했다.
"보살펴주신 여신과 병기에게 인사하십시오."
즈라더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가 이미 숨을 멈췄나 생각한 지멘은 벼슬을 뻣뻣하게 세웠다. 그러나 즈라더는 곧 부리를 움직여 말했다.
"모든 이보다 낮은 여신이여. 긴 세월…… 당신의 가호 덕분에…… 제 도끼와 동행할 수 있었습니다. 명예도 없이, 원한도 없이…… 당신에게 갈 시간을 조용히 기다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지멘은 소리 없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즈라더의 말이 계속되었다.
"적과 나 사이에…… 언제나 서주었던 신의 있는 벗이여. 고맙다. 이제 편히…… 쉬거라."
눈물을 마시는 새와 피를 마시는 새의 용어. 레콘이 속세의 모든 인연과 은원 관계들을 잊어버리고 모든 이보다 낮은 여신에게 병기를 반납하는 의식을 말한다.
2. 상세
레콘이 최후의 대장간에서 받은 별철 병기는 여신으로부터 받은 선물이며 평생을 함께하는 진정한 반려자이고, 따라서 그런 무기를 놓는다는 것은 그의 인생이 끝났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모든 은원을 잊는다는 말 그대로 은혜도 원수도 정리하고, 따라서 납병례를 한 레콘에게는 그 어떤 레콘도 무기를 들지 않는다.[스포일러] 일생을 투쟁으로 보내는 레콘의 종족성을 생각해 보면 레콘식 은퇴라고 생각해도 될 듯 하다. 납병을 한 레콘은 무기를 쥘 수 없는 노인 취급을 받으며, 시구리아트 유료도로당의 요금 면제자 목록에도 들어간다.원래 레콘의 무기들은 남들이 함부로 만지는 것조차 예의가 아니지만, 납병례를 치른 무기는 다른 이가 만져도 되게 된다. 이렇게 납병된 무기는 납병례에 참관한 레콘이 최후의 대장간에 가져가게 되고, 최후의 대장장이에게 전달되어 마지막까지 주인을 지킨 좋은 무기를 기리고 그런 무기를 다시 만들 수 있길 바라는 의식을 치른 뒤[2] 녹인다. 녹인 무기에서 나온 별철은 다른 무기의 제작에 쓰인다.
작중 묘사된 납병례는 즈라더의 것 하나뿐이다. 레콘들은 평생 무기를 휘두르다 전장에서 죽는 것이 비일비재하므로 제대로 된 납병례를 치르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한다. 납병할 만한 상황이 돼도 반려자나 다름없는 무기를 납병하기 아쉬워서 차일피일 미루다 못하게 되는 경우가 대다수라고...
그 외에 납병례에 대해 언급된 부분은 셋이 있다. 그을린발 히베리가 자신이 받은 무기 무차별 학살을 시험해 보고는 그 황당한 위력 때문에 납병하려다가 납병의 의미 때문에 재고한 적이 있다. 민들레 여단의 여단장인 다이렌은 레콘 기준으로도 유난히 공수증이 심한 편인데, 하필이면 레콘 수용소인 센시엣 특수 수용소[3]에 변고가 있을 경우 우선적으로 투입되는 부대의 대장이라 '배 타고 절망도에 들어가느니 납병해 버릴 테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지만 차마 무기를 놓을 수 없어 시행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스카리 빌파에게 포로로 잡힌 팡탄이 충성 서약을 할 때 '죽을 때까지, 혹은 납병할 때까지 충성하겠다'라고 표현한 일이 있다. 팡탄 딴에는 혹시 납병할 일이 생기면 그 후에는 스카리에게 짐이 될 테니 납병에 대해 끼워넣은 것인데, 스카리 빌파는 납병례의 무게에 대해 이해하지 못해 '바로 납병하고 날 떠나려는 수작이 아니냐'라고 트집을 잡는다. 이는 팡탄이 스카리에게 살의를 품는 원인이 된다.
모티프는 국궁에 실제로 있는 납궁례(納弓禮)인 듯. 무협지를 자주 본 독자들은 레콘식 금분세수로 이해하는 경우도 있다.
[스포일러] 그래서 죽기 직전인 즈라더가 납병례를 부탁하자 지멘이 '그러면 망치를 쓸 수 없다'(=당신을 죽여줄 수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즈라더는 '은원의 도구(무기)가 아니라 (안식을 위한) 친절의 도구로 사용하는 거니 상관없다'고 대답한다. 이미 허리가 부러지는 등 전신에 치명상을 입어 회생 가능성이 없었기 때문에 오히려 살려두는게 비정한 상황이었다.[2] 거창하진 않다. 대장장이들끼리 모여서 이런 무기를 다시 만들 수 있기를 기원하는 수준.[3] 일명 절망도. 레콘만을 수용하는 감옥섬이다. 사실 헤엄은커녕 물 근처에만 가도 공포를 느끼는 레콘의 특성상 탈옥 걱정은 할 필요가 없지만, 그래도 만에 하나를 대비해 만든 것이 민들레 여단이다. 하지만 민들레 여단 역시 레콘이긴 매한가지라서 (배가 있기는 하지만) 배 타는 훈련 따위는 안 하고, 차라리 어떻게든 섬 밖으로 탈출한 레콘을 쫒아다니는 편이 나을 거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