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시인 이용악의 대표시 가운데 하나이다. 1938년 두 번째 시집 《낡은 집》에 수록되어 있는 작가의 대표시 가운데 한 작품이다. 시인 자신의 가족사의 한 기록이라고 할 수 있는 초기 시의 대표작이다. 고향을 떠나 유랑하는 당대 민족 현실을 전형적으로 반영하고 있는 리얼리즘의 시이다.임화의 시적화자가 지닌 감상성이나, 백석의 이야기시에 나타난 과거지향적이고 정태적인 의식성에 비해 보다 적극적인 현실 문제에 대한 탐구의 소산으로서 높이 평가받고 있는 사실주의 시 가운데 대표작이다.
2. 시 전문
낡은 집 이용악 날로 밤으로 왕거미 줄치기에 분주한 집 마을서 흉집이라고 꺼리는 낡은 집 이 집에 살았다는 백성들은 대대손손에 물려줄 은동곳도 산호관자도 갖지 못했니라 재를 넘어 무곡을 다니던 당나귀 항구로 가는 콩실이에 늙은 둥글소 모두 없어진 지 오랜 외양간엔 아직 초라한 내음새 그윽하다만 털보네 간 곳은 아무도 모른다 찻길이 놓이기 전 노루 멧돼지 쪽제비 이런 것들이 앞 뒤 산을 마음놓고 뛰어다니던 시절 털보의 셋째아들은 나의 싸리말 동무는 이 집 안방 짓두광주리 옆에서 첫울음을 울었다고 한다 "털보네는 또 아들을 봤다우 송아지래두 붙었으면 팔아나 먹지" 마을 아낙네들은 무심코차거운 이야기를 가을 냇물에 실어보냈다는 그날 밤 저릎등이 시름시름 타들어가고 소주에 취한 털보의 눈도 일층 붉더란다 갓주지 이야기와 무서운 전설 가운데서 가난 속에서 나의 동무는 늘 마음 졸이며 자랐다 당나귀 몰고 간 애비 돌아오지 않는 밤 노랑고양이 울어 울어 종시 잠 이루지 못하는 밤이면 어미 분주히 일하는 방앗간 한구석에서 나의 동무는 도토리의 꿈을 키웠다. 그가 아홉살 되던 해 사냥개 꿩을 쫓아다니는 겨울 이 집에 살던 일곱 식솔리 어데론지 사라지고 이튿날 아침 북쪽을 향한 발자욱만 눈 우에 떨고 있었다 더러는 오랑캐령 쪽으로 갔으리라고 더러는 아라사로 갔으리라고 이웃 늙은이들은 모두 무서운 곳을 짚었다 지금은 아무도 살지 않는 집 마을서 흉집이라고 꺼리는 낡은 집 제철마다 먹음직한 열매 탐스럽게 열던 살구 살구나무도 글거리만 남았길래 꽃피는 철이 와도 가도 뒤울안에 꿀벌 하나 날아들지 않는다 |
3. 해설
8연 50행의 자유시이다. '낡은 집'이라는 시적 대상의 내력과 그를 둘러싼 사건을 다룬다는 점에서 서사시적 성격을 지니며, 시의 구성은 맨 처음에 현재 상태를 제시하고, 이후 과거로 돌아가서 시간 순서대로 설명을 해나가는 비순차적 구성 방식을 취한다. 서사성을 효과적으로 구현하기 위해 시적 화자가 관찰자의 시점에서 시적 대상에 대한 정보를 전해주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이 시는 구체적인 사례를 서사적으로 구성함으로써 일제의 억압과 착취에 의한 농촌의 피폐화와 그에 따른 농민의 유이민(流移民) 현상을 생생하게 고발하고 있다. 1연과 2연에서는 현재 흉가로 불리는 털보네 낡은 집을 제시하고, 3, 4연에서는 털보네 셋째 아들의 탄생을 둘러싼 근심어린 분위기를 다루고 있다. 5연은 털보네의 극빈한 삶을 다루고, 6, 7연은 털보네 가족의 이향(離鄕)을 보여주고 있다. 마지막 8연에서는 황폐한 낡은 집의 현재 모습을 그리고 있다.
이 시에서 고향을 버리고 만주와 시베리아 등지로 떠나는 털보네의 고난사는 한 가족만의 문제가 아니라 일제 치하에서 고통당하는 우리 민족의 문제이다. 따라서 이 시에 등장하는 ‘낡은 집’은 단순한 한 개의 폐가가 아니라, 일제에게 국권을 빼앗긴 우리나라로 치환될 수 있다. 이 작품은 이런 문제의식을 객관적인 현실 묘사를 통해 성공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 작품은 단편 서사시의 방식을 계승하여 일제 치하에서 고통당하는 우리 민족의 비극적인 삶을 생생하게 형상화하였으며, 이를 통해 리얼리즘 시의 새로운 차원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문학사적 의의를 지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