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dddddd,#000><colcolor=#000000,#dddddd> 지코손 [ruby(璽光尊,ruby=じこうそん)] | Jikoson | |
본명 | 나가오카 나가코 ([ruby(長岡 良子,ruby=ながおか ながこ)])[1] |
출생 | 1903년 4월 22일 |
일본 제국 오카야마현 에요미촌[2] | |
사망 | 1983년 8월 16일 (향년 80세) |
일본 가나가와현 요코하마시 | |
국적 | [[일본| ]][[틀:국기| ]][[틀:국기| ]] |
직업 | 종교인 |
종교 | 새우(璽宇)[3] |
재위기간 | 신성천황 (자칭) |
1946년 5월 ~ 1983년 8월 16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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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일본의 종교인. 통칭 새광존(璽光尊/지코손). 새우(璽宇)의 교주였다.2. 생애
2.1. 초년 시절
1903년, 오카야마현에서 농가의 딸로 탄생했다. 어릴 적 이름은 오오사와 나카(大澤 ナカ).[4]교단이 성립한 이후의 공식 견해에 의하면, 그녀는 구 오카야마번 이케다가(家) 제13대 당주인 후작 이케다 노리마사(池田 詮政)와 아키코(安喜子) 사이에서 태어난 낙윤이라고 하지만, '낙윤'이란 고귀한 남성이 배우자가 아닌 여성과 관계해 낳게 한 사생아를 뜻하는 말인데다가 아키코는 구니노미야 아사히코 친왕의 딸이므로 신빙성은 없다. 아무튼 새광존은 자신과 고준 황후(香淳皇后)가 사촌지간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것이다.
고등소학교 졸업 후에는 수습 간호사가 돼 안과 진료소에서 근무했고, 20세 때 정식 간호사가 되기 위해 잠시 고베시에 나와 간호사 양성 학교에 다녔다. 25세 때 일본우선 사원과 결혼해 '나가오카 나카'가 되었다. 이 때까지만 해도 평범한 여성의 인생이었지만...
2.2. 종교가가 되다
결혼 후 3년 정도 지났을 때[5], 종종 원인 불명의 고열에 시달려 혼수상태에 빠져 신을 입에 올리게 되었다. 도쿄대학병원에서 진찰을 받은 결과, 하이네메진병(일종의 급성 회백수염)이라고 진단되었다. 소아마비 바이러스로 감염되는 병으로 통상 감기 같은 증상으로 끝나지만, 나카의 경우 이 이후로 뭔가 언행이 점점 이상해지게 된 것 같다.1934년, '영구불변의 진리를 설파하여 중생을 구제하고 비상시 국가에 힘쓰라'는 신의 계시를 받았다고 말하기 시작해 남편에게 이혼을 요구했고, 또 남편 쪽도 아내를 교주 취급하는 신자가 몰려와 결혼 생활을 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에, 1935년경부터 별거했다.
이혼 후에는 사업가이기도 한 미네무라 쿄헤이(峰村恭平)를 만난다. 미네무라가 1941년 새우(璽宇)라는 교단을 창설하자 합류했으나, 미네무라가 사업에 실패하고 나약해지면서 카리스마를 잃어간 반면 나가오카는 침착하고 위엄 있는 태도를 보임으로써 신자들의 신망을 모으게 되었다.
1945년 5월 25일 미군의 도쿄 공습으로 교단의 본부로 사용하던 미네무라의 저택이 소실되자 미네무라는 별장이 있는 야마나시현의 야마나카호(山中湖)로 소개하게 되었고, 새우는 사실상 나가오카가 교주인 단체로 변모해 갔다. 이 즈음 그녀는 나가오카 나가코(長岡良子)라고 개명했는데, 다분히 휘가 나가코(良子)인 고준 황후를 의식한 것이다. 6월 25일, 신으로부터의 계시가 있었다고 해서 스스로를 새광존(璽光尊)이라고 자칭한다.
2.3. 천황을 자칭하다
일본이 패전하고 난 1945년 11월 15일, 정식으로 교단 결성식을 갖고 다시 활동을 시작했다. 이듬해인 1946년 정초 쇼와 천황이 인간선언을 하자, 이후 천황의 몸에서 아마테라스 오오미카미가 떠나 자신의 몸으로 옮겼다고 선언, 자신이 정통의 황위 계승자라고 주장했다. 스스로를 '아마츠시루스테루타에히카리나가히메노스메라미코토(天璽照妙光良姫皇尊, 약칭 새광존(璽光尊))', '신성천황'이라 자칭하고, 사는 곳을 '새우황거'(璽宇皇居)로 칭했다.1946년 5월에는 교단의 독자적인 연호를 제정해 쇼와 21년을 레이주(霊寿) 원년으로 고쳤으며, 국기와 헌법을 제정하고 사조지폐(私造紙幣)[6]까지 발행했다. 또한 교단 내에 '병부경', '문부경' 등의 직책을 만들어 가상적인 내각을 조직했다. 또한 같은 달, GHQ의 더글러스 맥아더에게 직소(直訴)했다.[7] 수도직하지진이 일어난다고 거듭 예언해, '새우황거'라고 부르는 교단 본부를 '위험'한 도쿄를 떠나 이시카와현 가나자와시로 옮겼다.[8] 현지에서도 종말 사상을 전파하고 신자를 늘려 갔다.
종전 직후였기 때문에 향후 일본의 체제가 확실하지 않은 상황이기도 해서 '새 천황'에 기대하는 신자가 급증하자, 교단을 경계하는 GHQ의 명령으로 일본 경찰은 교단 내에 간첩을 잠입시켰다. 교단 간부들의 도피 준비 첩보를 입수한 일본 경찰은 포츠담 선언 위반, 사기 혐의로 1947년 1월 21일에 '새우황거'를 급습, 새광존 간부들을 식량 관리법 위반으로 체포했다.(지코손 사건, 혹은 가나자와 사건) 하지만 정신감정 결과 과대망상성 치매 진단을 받고 11월에 풀려났으며, 식량관리법 위반 혐의도 불기소로 끝났다.
이 사건을 계기로 교세는 단번에 쇠퇴해, 1948년이 되면 후타바야마[9]나 오청원(吳淸源) 같은 이들도 교단을 모두 떠났다.[10] 새광존 일행은 도쿄·시즈오카·아오모리·하코네를 전전하고 최종적으로는 요코하마에 거처를 잡고 소수의 신자와 함께 만년을 보내고, '천황'으로 머무른 채 80세의 나이로 1983년 사망했다. '현인신'의 자존심인지는 몰라도 의료기관의 진찰을 일절 받지 않았고, 사후 3일간이나 부활을 믿는 신자들에 의해 사체가 늦여름 더위에 입관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녀의 사후에는 교단의 최고참 간부인 카츠키 토쿠지로(勝木徳次郎)가 (천황은 아니고) 교주가 되어 쇼칸(照観)이라 이름했으나, 그에 의하면 소수의 신자만 남아 사실상의 해산 상태라고 한다.
3. 외모
▲ 1946년 10월 25일, 아사히신문 기자가 그녀의 허락 없이 도쿄 스기나미구(杉並区)의 "황거"에서 촬영한 사진.
평소 '새우황거'에 틀어박혀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실상이 수수께끼에 싸여 있다. 교단에 출입한 적이 있는 도쿠가와 유메나리(徳川夢声) 작가에 의하면 쿠죠 다케코를 닮은 미인이었다고 한다. 또 교단을 조사한 이시카와현 경찰부 공안과장은 "경시청 경찰관 시절 조사했던 아베 사다와 닮았다"고 평했다.
[1] 여성 만화가 나가오카 나가코(長岡良子)와 동명이인이다. 지코손이 일본 사회에 한창 오르내리던 1948년생이라 이 사람에게서 이름을 따왔을 가능성도 있다.[2] 江与味村. 현 미사키정(美咲町)[3] 일본어로는 '지우'라고 읽는다.[4] 大澤奈賀로 쓰기도 한다.[5] 1930년경[6] 일본 엔의 위조지폐가 아니라, 교단에서 자칭하는 지폐[7] 직소하는 편지는 의외로 맥아더 원수가 읽었지만 웃어넘겼다고 한다.[8] 교단에서는 궁을 옮겼다 하여 천궁(遷宮)이라 불렀다. 하지만 실제로는 집주인에게 거처를 명도해 줄 것을 요구받았기 때문이라고 한다.[9] 双葉山 定次. 쇼와 초기의 스모 스타[10] 사실 일본 경찰이 노린 핵심적 효과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