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대학교 축구부 仁川大學校 INCHEON NATIONAL UNIVERSITY | ||
<colbgcolor=#01499a><colcolor=#ffffff> 이름 | 김시석 Kim Si-Seok | |
출생 | <colbgcolor=#ffffff,#191919>1963년 1월 24일 ([age(1963-01-24)]세) 인천광역시 | |
국적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 |
신체 | 177cm, 72kg | |
직업 | 축구선수(은퇴) 축구 감독 | |
학력 | 통진종고 - 인천대 | |
프로 입단 | 1985년 상무 축구단 | |
소속 | <colbgcolor=#01499a><colcolor=#ffffff> 선수 | 상무 축구단 (1985~1987) 할렐루야 축구단 (1987~1993) |
감독 | 부평동중학교 (1994~1996) 할렐루야 축구단 (1997~1998 / 수석 코치) 서울공업고등학교 (1999~2000) 인천대학교 (2000~2003) 인천 유나이티드 FC (2004~2007 / 수석 코치) 셀틱 FC (2008 / 코치) 인천 유나이티드 FC (2009~2010 / 유소년 총괄) 인천대학교 (2013~2023) | |
기타 | 인천광역시축구협회 (2011~ / 전무이사) 2014 인천 아시안 게임 (2013~2014 / 축구 종목 조정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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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전 축구선수이자 현 축구 지도자로, 인천대학교 축구부의 살아있는 전설이다.2. 선수 경력
인천에서 태어나서 축구를 배웠던 김시석은 통진종합고등학교[1]를 졸업한 이후 새롭게 창단한 인천대학교 축구부의 1기 멤버로 합류하였다. 인천대 축구부 시절 신생팀의 주축으로 활동한 그는 1995년 상무 축구단에 입단하면서 프로 선수로의 첫 커리어를 시작했고 전역 이후에는 할렐루야 축구단으로 이적했다. 할렐루야 소속으로 몇 차례의 우승을 이끈 김시석은 1991년 군, 실업 축구대회에서 최우수선수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김시석은 1993년까지 할렐루야 소속으로 뛴 뒤 은퇴했고, 잠시 신동아화재 보상팀에서 직원으로 근무하였다.3. 지도자 경력
3.1. 부평동중학교 감독
하지만 사실 그는 선수로 은퇴한 이후에도 바로 지도자로 나아가고 싶은 꿈이 있었다. 그의 아내가 사회 생활을 경험할 필요가 있다고 추천하여 직장 생활을 했고 능력을 입증받아 회사에서도 인정을 받았지만 2년이 지나자 미련없이 사표를 내고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 그의 첫 지도자 생활은 부평동중학교에서 시작되었는데, 당시 부평동중에서 그는 김정우, 박용호, 조용형, 이천수를 배출하는 데 성공하였다. 그가 길러낸 주축 선수들은 대부분 부평고등학교로 진학하여 유명세를 계속해서 떨쳤고 국가대표팀에도 승선했다. 그의 지도력은 선수들 사이에서도 인정받았는지, 이천수는 월드컵 종료 이후 가장 존경하는 감독 중 하나로 김시석을 꼽기도 했다.3.2. 인천 유나이티드 부임 이전
1997년에는 그의 현역 시절 소속팀인 할렐루야 축구단의 코치가 되었으나 할렐루야가 1998년 해체되면서 새 팀을 찾아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잠시 서울공업고등학교 감독으로 활동한 김시석은 2000년에 자신의 모교 인천대학교의 감독으로 부임했다. 인천대에서 감독으로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기도 했고, 2001년에 몇 차례의 우승을 거머쥐기도 했다.3.3. 인천 유나이티드 코치 시절 및 유학
2004년에 김시석은 새로이 창단한 인천 유나이티드의 수석코치로 선임되었다. 베르너 로란트 감독을 보좌하던 김시석은 장외룡 감독 시기에도 코치진의 일원으로 남아 팀의 준우승이라는 역사적인 순간을 함께하기도 했다. 2007년 장외룡 감독이 해외 유학을 갔다 온 이후 김시석은 그 뒤를 이어 유학을 떠났으며, 셀틱 FC에서 1년을 보내게 되었다. 셀틱에서 외로운 시기를 보내기도 했지만 구단에서도 능력을 인정해 종종 벤치에 앉는 기회를 얻기도 했고, 김시석 본인은 이 시기를 거치며 선수들을 부드럽게 대하는 자세의 필요성과 창의적인 플레이의 중요성을 깨달았다고 한다.유학에서 돌아온 후에는 인천의 유소년 총괄 감독 직책을 맞아 직접 유망주들을 발굴하고 키우는 역할을 맡았다. 이 때 그가 인천에 데려온 선수들이 바로 김정민, 박명수, 김진야 등이며, 이승우가 FC 바르셀로나로 가기 직전에 잠시 인천 광성중으로 온 이유도 김시석의 스카우트가 있었기 때문이다. 한편 대건고 출신인 국가대표 수비수 박지수 역시 김시석에 의해서 인천에 합류한 선수였다. 하지만 허정무 부임 이후 격변하는 상황 속에서 김시석은 구단에 여러 공로를 세운 과거를 뒤로 하고 팀을 떠나게 됐다.
3.4. 인천대학교 감독으로 복귀, 인천대 전성기의 주인공
인천을 떠난 이후에는 인천시 축구협회의 일원으로 있었지만 지도자 생활은 한동안 쉬고 있었다. 그러던 중 2013년 9월에 인천대학교 축구부의 지휘봉을 다시 잡게 되면서 지도자로 복귀했다. 그가 인천대로 돌아올 당시 인천대는 대학 무대에서 그리 특출난 모습을 보이지 못하던 팀이었다. 처음에 갑작스럽게 이정빈과 같은 대건고 졸업생들이 인천대로 진학하자 인천 팬들은 의문을 품기도 했는데, 그 배경에는 인천 구단 출신의 김시석이 인천대에 존재했기 때문임이 금방 드러났다. 김시석은 인천 유스 출신들 다수를 인천대로 불러들였고 이들의 기량을 만개하도록 도왔으며, 인천 유스 외에도 다른 팀의 유스, 학원 축구계 출신 선수들 역시 김시석의 지도 하에 매우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다.인천대에서 김시석은 자유로운 분위기를 만들고 팀워크를 다지는 모습을 보여주었으며, 전방압박과 활동량을 강조하여 인천대에 들어온 선수들의 체력을 강화시키기도 했다. 김강국은 본래 매탄고등학교 시절까지는 패스에 주력하는 선수였는데, 인천대에 온 이후로 놀라울 정도로 체력과 활동량이 늘어 현재는 패스를 뿌려주면서 박스 투 박스 역할까지 맡는 선수로 변모하였다. 그리고 선수들의 포지션 변경을 통해 포텐셜을 이끌어내는 경우도 있다. 김정호는 인천대에 오기 전까지 피지컬이 좋은 공격수로 활약했는데 인천대에 온 이후로는 수비수와 공격수를 번갈아가며 맡게 되었고 졸업이 다가오는 시점에서는 완전히 센터백으로 정착했다. 포지션 변경이 성공적이어서 김정호는 프로 진출 직후 김학범호에 소집되는 기회를 얻기도 했다. 그 외에도 수비력을 굉장히 중시해서 조직적인 수비를 가르치기도 하고 골키퍼들의 경쟁을 유도하여 기량을 끌어올리기도 한다.
대회 성적도 뛰어나 인천대는 2017년부터 2019년까지 3년 동안 2017년 전국체전 우승, 2018년 전국체전 우승, 2019년 전국체전 준우승, 2018 U리그 권역별 우승, 2018년 춘계대학축구대회 3위, 2019년 춘계대학축구대회 준우승을 달성하며 대한축구협회가 공인한 '가장 전국대회 성적이 좋은 대학팀'으로 거듭났다.
2017년, 2018년 2년 연속 한국대학축구연맹 선정 우수 감독상을 수상했다.
2020년과 2021년에도 U리그 권역 1위를 달성했고 2023년 1월 1, 2학년 대학축구대회에서 마지막 우승컵을 들어올린 뒤 2023년 2월 정년 퇴임했다. 퇴임 이후 최광훈 코치가 감독 대행으로 팀을 이끈다.
[1] 현 통진고등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