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9-08 07:55:00

권영규(독립운동가)

1. 합천군 출신 독립운동가, 권영규2. 만주방면 독립운동가, 권영규

1. 합천군 출신 독립운동가, 권영규

<colcolor=#fff><colbgcolor=#0047a0> 초명 권영우(權永佑)
족보명 권재규(權載圭)
영규(永圭)
이명 권상주(權喪主)[1]
출생 1865년 9월 18일
경상도 삼가현 둔내면 둔내리
(현 경상남도 합천군 가회면 둔내리 두심마을)
사망 1919년 3월 24일
경상남도 합천군 삼가면
묘소 경상남도 합천군 가회면 둔내리 두심마을
상훈 건국훈장 애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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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규는 1865년 9월 18일 경상도 삼가현 둔내면 둔내리(현 경상남도 합천군 가회면 둔내리 두심마을)에서 아버지 권석원(權錫元)과 어머니 파평 윤씨 윤평수(尹平秀)의 딸 사이의 1남 1녀 중 외아들로 태어났다. 이후 딸만 둘 있던 큰아버지 권석평(權錫平)에 입양되었다.

그는 1919년 3월 23일 김상준(金相峻)과 윤규현(尹圭鉉)이 주동한 삼가면에서의 독립만세시위에 참가해 약 4천 명의 군중과 함께 면사무소를 불태우고 삼가읍의 중심지를 돌며 독립만세를 고창했다. 이 때 경찰의 발포로 임종봉이 대퇴부에 총을 맞자 군중들은 주재소와 우편소를 파괴하기 위해 몰려갔고, 권영규는 그 과정에서 일본 군경이 쏜 총탄을 맞고 다음날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8년 권영규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2. 만주방면 독립운동가, 권영규

성명 권영규(權永圭)
생몰 ? ~ 1922년 10월 14일
출생지 미상
사망지 만주 관전현
추서 건국훈장 애족장

권영규는 1920년 서간도지역을 무대로 항일무장투쟁을 펼친 민국독립단(民國獨立團)의 국내특파원으로 국내에 잠입하여 친일주구배 숙청, 일제의 군경 토벌, 군자금 모금 등의 활동을 펼쳤다. 그리고 1920년 말 광복군사령부의 예하부대인 광복군총영(光復軍總營)의 지방 출동부대의 대원이 되어 활동하였다. 그리고 1922년 중엽에는 남만주 지역 독립운동 단체 통합운동에 의해 대한통의부(大韓統義府)가 성립되자 이 단체의 대원으로 활동하였다. 그러나 1922년 10월 14일 관전현에서 병사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9년 권영규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1] 권영규의 생부 권석원(權錫元)이 1918년 8월 17일에 별세, 양부 권석평(權錫平)이 1918년 10월 26일 별세했기에 당시 상중(喪中)이었으므로 이런 별칭이 붙었던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