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궈홍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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궈홍즈
郭泓志 / hong-chih kuo
출생 1981년 7월 23일 ([age(1981-07-23)]세)
대만 타이난시
국적
[[대만|]][[틀:국기|]][[틀:국기|]]
학력 지엔싱중 - 난잉상고
신체 188cm / 109kg
포지션 투수(선발 투수, 중간 계투)
투타 좌투좌타
프로입단 1999년 국제 아마추어 자유계약 (LAD)
소속팀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2005~2011)
퉁이 라이온스 (2014~2015)
푸방 가디언스(2017~2018)


1. 개요2. 선수 경력3. 기타4.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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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무라카미 마사노리 이후 40년만에 MLB에 진출한 동양인 좌완투수이자 왕젠민과 더불어 대만 최고의 투수로 평가받는 선수. 박찬호와 함께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에서 활동하고 2006년 도하 아시안게임에서 한국전 선발로 6이닝 호투를 기록해 한국인들에게도 이름이 알려져있다.

2. 선수 경력

고등학교 3학년때 153키로 강속구를 뿌리던 파이어볼러던 그는 1999년 고등학교 3학년 시절 LA 다저스와 자유계약[1]으로 2000년 입단하고 4년간 마이너 리그 생활을 보내고 2005년 9월 2일 드디어 메이저 리그 데뷔전을 가졌다.
이후 7년동안(2005~2011) 메이저 리그에서 선발,중간투수로 활약하면서 218게임 방어율 3.73 292.1이닝 삼진 345개 13승 17패 13세이브를 기록하였다.
그리고 커리어하이 시즌이었던 2010년에는 올스타에 뽑히는 대만야구의 역사와 개인적인 영광을 이루면서 성공적인 선수생활을 하였다.계약종료 이후에는 시애틀 매리너스,시카고 컵스와 마이너계약을 맺었으나 활동기간동안 부상이 잦아지면서 눈에 띌만한 활약상은 보이지 못했다.
고등학교 졸업 후 미국에서만 뛰던 궈홍즈는 2013년 CPBL퉁이 라이온스와 3년 옵션포함 4,080만 위안[2]의 역대 대만 프로야구 리그 최고 계약 기록을 만들면서 대만 야구팬들을 들썩이게 만들었다.
퉁이 라이온스에서의 활약후 본인의 몸상태를 믿고 자신있던 궈홍즈는 샌디에이고 파드리스를 통해 다시한번 메이저리그에 도전하게 된다.
마이너 계약이후 스프링캠프에서 초청선수로서 공을 던졌으나 끝내 방출당하며 그의 파란만장했던 미국야구생활은 마무리하게 된다.
이후 다시 한번 대만 프로야구 리그의 푸방 가디언스와의 계약으로 2017시즌과 2018시즌을 보내게 되고 2018시즌,친정팀 퉁이 라이온스와의 플레이오프 경기 패배 직후 은퇴를 선언하게 된다.

3. 기타

  • 동시대에 활약하던 왕젠민과 더불어 대만야구의 얼굴과도 같은 선수이다.
  • 메이저리그에서 7시즌을 뛰면서 WAR 4.7을 기록했지만[3] 어깨와 팔꿈치 부상에 시달리면서 커리어 동안 5번의 팔꿈치 수술을 했다는 점에서 매우 아쉬운 선수이다.
  • 2010년에도 1.20의 ERA를 기록하면서 맹활약해 올스타에 선정됬다.
  • 2006년 도하 아시안게임에서 한국전 선발로서 6이닝 호투를 해 한국인들에게 잊지 못할 기억을 줬지만 이후 금지약물을 복용했다는 의혹이 있다.
  • 2013 WBC 한국전에 불펜으로 나와 강정호에게 결승 역전 2런 홈런을 허용했다. 대만 캐스터가 직후 한국에게 정말 이기고 싶다며 눈물을 흘리며 울부짖었던 그 경기다.

4. 관련 문서



[1] 계약금 125만 달러[2] 한화 약 14억 9천만원[3] 동시대에 활약했던 박찬호의 WAR은 18.1이고 왕젠밍은 12.5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