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2-10 06:47:21

구찌 땅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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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역사3. 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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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구찌 땅굴(Cu Chi tunnels, Địa đạo Củ Chi)은 베트남의 구찌 지역에 있는 군사적 목적으로 굴착된 땅굴이다. 주로 베트남 전쟁 시기에 남베트남 민족해방전선에서 미군 공습에 활용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꾸찌 땅굴, 쿠치 땅굴 등등으로도 표기된다. 한국에서는 명품 브랜드 구찌와 이름이 같아 종종 언어유희 소재가 되는데, 땅굴의 규모와 구조를 보면 과연 명품 땅굴이라 할 만하다.

2. 역사

구찌 땅굴은 1946년 인도차이나 전쟁 당시 프랑스의 침략에 대항하기 위한 목적으로 처음 굴착되었다. 당시의 땅굴은 이후 증축된 모습보다 더 단순한 구조로 되어 있었고 길이도 더 짧았다. 베트남군은 이 땅굴로 프랑스군의 습격을 피하고 피난처로 활용하는 등의 효과를 보았고, 결국 인도차이나 전쟁에서 베트남군이 승리하는 데에 기여하였다.

구찌 땅굴이 유명해진 것은 베트남 전쟁을 거치고나서부터였다. 남베트남 민족해방전선(베트콩)들은 미군에 비해 열세인 전력을 극복하고자 구찌 땅굴을 이용한 전술을 채택하고 50년대부터 땅굴을 증축해 나갔다. 그 결과 나중에는 최대 깊이 300m, 총 길이가 최대 무려 250km에 달했으며, 구조도 더욱 복잡해지고 체계화되었다.

베트콩들의 이 구찌 땅굴을 이용한 전술로 인해 미군은 베트남 전쟁 내내 골머리를 썩혔다. 미군은 어디서 기어나오는 건지 틈만 나면 여기저기서 튀어나와서 기습 공격하는 베트콩 게릴라들 때문에 미치기 직전까지 스트레스를 받았다. 또한 베트콩들은 이 땅굴을 통해서 전쟁 내내 보급로를 숨기고 안정적으로 보급을 유지할 수 있었는데, 이 때문에 미군은 베트콩들의 보급을 차단하기 위해 온갖 방법을 동원했음에도 베트콩들이 알 수 없는 경로로 계속 보급을 받으며 시간이 지나도 지치는 기색 없이 전투를 수행해나가는 모습을 보고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고 한다.

결국 미군은 Operation Crimp와 Operation Cedar Falls를 필두로 한 군사작전들로 조사를 벌인 끝에 이 땅굴의 존재를 확인하게 되고, 1966년 미군은 남베트남의 밀림도 제거할 겸 구찌 땅굴을 초토화시키기 위해 B-52 폭격기로 구찌 지역에 30여톤에 달하는 고엽제를 투하하였다. 그러나 지상이 아닌 지하에 있는 구찌 땅굴에는 당연히 큰 타격을 주지는 못했고, 여전히 베트콩들은 땅굴을 드나들며 미군을 괴롭혔다.

미군은 지속적으로 물, 가스, 폭약 등을 이용해 구찌 땅굴을 함락시키려고 노력했고, 몇몇 작전들은 꽤 효과를 보아서 땅굴 일부가 붕괴되고 갱도 내 베트콩들을 꽤 많이 소탕하기도 했지만 250km나 되는 땅굴 전체를 초토화시키기에는 당연히 한계가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땅굴 일부가 붕괴하더라도 베트콩들은 다른 곳으로 빠져나가기만 하면 그만이었으므로 별 효과도 없었다.

그러자 미군은 아예 땅굴 내부로 병력을 진격시켜 구찌 땅굴을 공략하려고 했다. 그러나 구찌 땅굴은 당시 베트남인들의 체격에 맞춰져 있기 때문에 통로가 몹시 비좁았다. 이 비좁은 땅굴 내부로 당시 베트남인들보다 덩치가 큰 미군들이 진입하는 것은 당연히 불가능했다. 이 때문에 미군은 땅굴 내부에 일명 ‘Tunnel rat’이라고 불리는 덩치 작은 미군 병사들을 특수 선발하여 투입하는 방법을 사용해보기도 했으나, 갱도 내부가 홈그라운드였던 베트콩들에게 사살당하거나 후술할 베트콩들이 땅굴 내부에 설치해놓은 갖가지 부비트랩에 걸려 비명횡사하기 일쑤였고,[1][2] 그다지 큰 효과를 보지 못했다.

온갖 노력에도 불구하고 미군은 전쟁이 끝나는 날까지 구찌 땅굴의 전체 규모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베트콩들의 땅굴 전술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했으며, 결국 구찌 땅굴은 북베트남을 승리로 이끄는 데에 기여하는 요인 중 하나로써 작용하였다.

베트남 전쟁 이후 구찌 땅굴은 중월전쟁이 발발하자 또 다시 쓰이게 되었다. 이때에도 마찬가지로 구찌 땅굴을 이용한 전략이 먹혀서 중국군에게 상당한 피해를 주었고 결국 베트남이 승리하는 데 또 기여했다.

3. 구조

베트남전 당시 땅굴의 길이는 200km에 달했으나 미군의 폭격, 붕괴, 풍화 등으로 인해 현재는 120km 가량만 온전하게 남아 있다.

땅굴의 입구는 최대한 발각되지 않도록 위장을 하기 위해 진입하는 뚜껑 위에 흙과 낙엽들을 얹어놓아 감쪽같이 위장하였고, 근처에는 함정을 설치해놓았다. 외부에만 함정을 설치해놓은 것이 아니라, 내부에도 가짜 땅굴을 만들어놓고 그 안에 부비트랩을 설치해놓아 적군이 입구인 줄 알고 진입하면 부비트랩에 빠져 죽을 수 있도록 해놓는 치밀함까지 보였다. 이 부비트랩들에는 바닥에 가시가 달린 구멍[3], 전갈이나 독사 등의 독동물들을 풀어놓은 구멍, 총이 장전되어 있어 밟으면 격발되는 구멍 등등이 있어 한번 걸리면 살아나가기는 힘들었다.

땅굴의 내부에는 주방, 의무실, 침실, 회의실, 무기저장고 등 군사 업무들을 처리할 수 있는 시설들과 주거 환경들이 대부분 갖춰져 있었다.

현재 구찌 땅굴의 일부 구간은 관광 명소가 되었으며, 몇몇 안전한 구간들 한정으로 관광객들이 통로를 드나들며 내부를 관람할 수 있게 해놓았다. 내부에는 사격장도 있어 AK47이나 M16을 비롯한 옛날 총도 실제로 쏴볼 수 있다. 비용은 2024년 기준 총알 한발당 6만동(약 3천원).
[1] 일례로 호주의 제 3 야전부대 소속 Robert "Bob" Bowtell 상병이 땅굴 내부로 진입했다가 이런 식으로 사망했다.[2] 베트콩들이 직접 설치하지는 않았지만 정글의 독사나 독충, 쥐, 박쥐 등이 갱도를 돌아다니곤 했기에 이들과도 싸워야 했다.[3] 이 가시에 독이나 분변을 묻혀놓아 치명률을 더욱 높이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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