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 구범이(具凡伊) |
이명 | 구재진(具在軫), 구승부(具勝夫) |
생몰 | 1892년 1월 23일 ~ 1947년 2월 1일 |
출생지 | 경상남도 합천군 초계면 초계리 |
사망지 | 경상남도 합천군 |
추서 | 건국훈장 애족장 |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2. 생애
구범이는 1892년 1월 23일 경상남도 합천군 초계면 초계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9년 3월 21일 초계면 초계리에서 발발한 독립만세시위에 참가해 4천 명의 군중과 함께 초계우편소를 습격하여 일본군의 통신망을 파괴하고 경찰주재소로 행진하여 주재소를 포위하고 투석과 몽둥이로 유리창을 깨부수는 등 격렬한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이때 일본 경찰이 공포를 발사하며 저지하자, 그는 시위군중과 함께 발포한 일본 경찰 2명을 붙잡아 구타하였다. 그러나 합천경찰서에서 응원 출동한 일본 경찰이 현지에 도착, 이곳 경찰과 합세하여 무차별 사격을 감행하면서 주동자를 검거하기 시작하였다. 결국 체포된 그는 8월 8일 부산지방법원 진주지청에서 소요 혐의로 징역 1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이후 합천군에서 조용히 지내다 1947년 2월 1일에 사망했다.대한민국 정부는 1983년 구범이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고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