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0-24 03:56:19

고육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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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십육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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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성어
쓸 고 고기 육 갈 지 꾀/채찍 책

1. 개요2. 유래3. 기타

1. 개요

병법 삼십육계의 제34계. 제 몸을 상하게 하면서까지 꾸며내는 방책이라는 뜻으로, 일반적으로 어려운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한 수단으로 어쩔 수 없이 하는 계책을 말하며 고육지계(苦肉之計)라고도 한다.

비슷한 의미를 가진 궁여지책과 헷갈리는 경우가 있는데, 가장 큰 차이점은 자기희생의 유무이다. 고육지책은 자신이 고통을 감수하고 희생해야 하는 계책인 반면, 궁여지책은 절박한 상황에서 마지막으로 내놓는 방법이지만 반드시 희생이 따르는 건 아니다. 따라서 고육지책은 궁여지책의 일환이라고도 볼 수 있다. 정리하면 두 단어 모두 어려운 상황에서 나오는 계책이지만, 고육지책은 더 큰 희생을 동반한다고 보면 된다.

2. 유래

삼국지연의》에서, 후한 말에 오나라손권형주유비가 연합하여 조조의 100만 대군을 맞아 싸우는 적벽대전이 벌어지기 직전의 일이다.

연합군인데도 주유와 사이가 안 좋던[1] 제갈량이 계책으로 조조군의 화살을 수거해오자, 그제서야 주유는 제갈량과 진심으로 뜻을 같이하여 조조군을 화공으로 격파하기로 한다. 이에 제갈량의 화살 도둑질 때문에 분노가 극에 달한 조조는 유비-손권 연합군의 비밀을 알아내기 위해 순유의 제안으로 채중채화를 오나라에 간첩으로 보냈다. 이들은 본래 주유의 계략에 빠진 조조에게 억울하게 참살된 채모의 동생들이었으나, 진심으로 조조에게 충성하고 있었다.

채중과 채화는 주유에게 '채모의 원수를 갚기 위해 투항했다'고 둘러대며 안전하게 주유의 진영에 잠입했다. 그러나 주유는 이미 그들의 계략을 꿰뚫어보고 있었고,[2] 이에 감녕에게 그들을 잘 감시하라고 한다. 한편 황개는 주유와는 별개로 혼자 궁리한 끝에 조조를 화공으로 격파할 생각을 품고 있었다. 이를 주유에게 알리자 주유는 흔쾌히 받아들였지만, 노쇠한 황개를 고육지책에 써먹기는 힘들겠다는 판단을 한다. 하지만 황개는 노익장을 과시했고, 결국 주유는 황개를 고육지책에 써먹기로 한다.

주유가 "다른 사람도 아닌 조조를 속이기 위해서라면 그만한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라며 만류하지만 황개는 "나는 손씨 3대 일가에게 두터운 은혜를 입은 몸이니 이 싸움의 승리를 위해서라면 이 한몸 바치겠다"며 주유에게 절을 하자 주유도 황개에게 맞절을 하며 계책을 의논하는 장면은 몇 안되는 오나라의 명장면이다.

이튿날 군사회의에서 주유가 "아무래도 싸움이 길어질 거 같으니 장수마다 3개월치 군량을 준비해라."라고 하자 황개가 "이딴 식으로 질질 끌면 3개월이 아니라 3년이 걸려도 조조 못이긴다. 속전속결이 안된다면 차라리 자포의 말대로 다같이 항복이나 하는 게 낫다."라며 딴죽을 걸었다.

이 말을 들은 주유가 "신성한 군사회의 도중에 그따위 망언을 지껄이고도 무사하길 바라냐!"며 화내자 황개도 지지 않고 "나는 손씨 3대를 대대로 섬긴 충신인데 너 같은 애송이가 감히 날 죽이겠다고?!"라며 받아친다. 이에 주유는 황개의 목을 베라고 하지만, 아무래도 황개가 나이도 있거니와 손견 때부터 일해온 충신이라 다들 말렸고 이 와중에 감녕은 주유의 명령으로 곤봉으로 매를 맞고 쫓겨나는 지경에 처한다.

결국 여러 사람들의 권유로 사형은 면했지만 대신 형벌로 곤장 100대가 내려진다. 하지만 곤장 50대에 황개는 정신을 잃을 정도로 심각한 부상을 입어서[3][4] 여러 사람들이 다시 사정을 빌어서 주유는 오늘은 이정도만 때리겠다고 한다. 이를 본 채중과 채화는 이 소식을 조조에게 전했고, 황개 또한 감택에게 항복 문서를 보내 투항할 뜻을 표한다. 여기에 장간주유 진영에서 빼내온 방통까지 거짓 합류하면서 조조는 완전히 속아넘어가게 된다.

여담으론, 노숙이 이를 보고 제갈량에게 주유에게 용서를 구해달라고 말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질책하나 제갈량은 이는 고육지계라며 노숙을 비웃는다. 연의에선 이부분을 통해 노숙과 제갈량의 관계를 잘 알 수 있다.

그 결과에 대해선 적벽대전 문서로.

3. 기타

현대 중국어에서는 쓰이지 않는 표현이며 대신 고육계(苦肉计)라는 표현을 쓴다.


[1] 이유는 주유가 제갈량을 경계했기 때문인데 이후의 전개를 보면 틀린 판단은 아니었지만 문제는 언제나 주유가 제갈량보다 한 수 아래였다...[2] 강유이릉의 예를 봐도 알수있듯 장수가 투항할경우 투항한 장수의 가족들은 심하면 죽거나 죽지는 않더라도 불이익을 당하는게 일상 다반사라 마초의 경우처럼 엄청 급박한 경우가 아니면 투항을 하더라도 가족도 같이 데리고 가야하는데 이들은 투항을 한다면서 본인들이 투항하면 반드시 죽을 처자식은 데려오지 않았기 때문이다.[3] 곤장은 신체 건강한 사람이 맞아도 50대가 넘으면 반병신이 되는데 하물며 정확한 나이는 알수없으나 손가 3대를 섬겨서 최소 60대는 되었을 황개가 곤장 50대면...[4] 다만 이 당시에는 곤장과 치도곤 등 매질이 법률화되어 있지 않은 상황이라, 집행관이 정황을 봐서 회초리로 때리는 경우도 있었다. 노인에게는 두꺼운 매를 잘 대지 않았다. 혹은 또 어차피 주유나 황개나 서로 짜두고 한 연기인 만큼 어떻게든 살살 한 것으로 보인다. 어쨌든 황개로 고육계를 쓰기로 한 이상 황개는 죽어서는 안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