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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 고규영 (高圭永) |
출생 | 1913년 3월 2일 |
전라북도 옥구군 개정면 통사리 (現 전북특별자치도 군산시) | |
사망 | 1932년 12월 21일 (향년 19세) |
전라북도 옥구군 (現 전북특별자치도 군산시) | |
본관 | 제주 고씨 |
추서 | 건국훈장 애족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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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2008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2. 생애
고규영은 1913년 3월 2일 전라북도 오국군 개정면 통사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전라북도에서 사회 운동과 노동 운동에 관여했다가 1932년 5월 말 옥구의 일본인 농장인 웅본농장(雄本農場)의 소작인들이 예전부터 소작인들에게 불리한 정조삽앙(正條揷秧)을 강제당하고 있으니 이를 타파하기 위해 농민조합을 조직하기로 결의했다. 그러나 그와 함께 전북 일대에서 비밀결사 활동을 하고 있던 김철수 등이 검거되면서 전북지역 사회운동이 부진 상태에 빠지게 되었다. 더욱이 일제 경찰은 전북지역 운동자들에 대한 탄압을 시작하였고 1932년 봄부터 대대적인 검거가 이루어져 200여 명이 체포되어 44명이 재판에 넘겨졌다.이때 고규영도 경찰에 체포되어 1932년 4월 전라북도 경찰부를 거쳐 1933년 12월 4일 공판에 회부되었고, 1934년 3월 19일 전주지방법원에서 제1회 공판이 열려 42명이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판결을 받았다. 이들과 함께 재판을 받던 그는 감옥에서 중병에 걸려 병보석 처리되었지만 1932년 12월 21일에 병사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8년 고규영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