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2-04-16 05:39:12

경취


초(楚)나라 왕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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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8000> 경취
景翠
최종직위 집규(執圭) / 주국(柱國)
미(羋)
경(景)
취(翠)
아버지 불명
생몰 기간 음력 기원전 ???년 ~기원전 ???년

1. 개요2. 기록
2.1. 《사기》〈 월왕구천세가〉2.2. 《죽서기년》2.3. 《전국책》〈동주책〉 002.秦攻宜壤2.4. 《전국책》〈동주책〉 023.杜赫欲重景翠於周2.5. 《전국책》〈초책〉 191.齊秦約攻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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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전국시대 초(楚)나라의 장군. 초나라의 거족 경(景)씨 사람이다. 《사기》〈 월왕구천세가〉, 《전국책》〈동주책〉, 《전국책》〈초책〉, 《죽서기년》 등에 언급된다.

2. 기록

2.1. 《사기》〈 월왕구천세가〉

초위왕 시기, 월왕 무강이 제를 치려하자 제위왕이 사신을 보내 제 대신 초를 치도록 설득하였는데, 이때 제나라 사신과 월왕 무강의 대화 중에 언급된다. 제 사신이 월왕 무강에게 초군은 분산되어 있음을 역설하면서, "경취의 군대는 북쪽의 노나라, 제나라 및 남양 일대에 집결되어 있다"고 말하는 대목이 있다.

2.2. 《죽서기년》

사기집해 중 한세가 한양왕 12년의 '초가 옹지를 포위하자 한이 진에 구원을 요구했다.'는 구절의 주석에서 죽서기년을 인용하며 경취를 언급한다. 한세가의 해당 구절이 죽서기년의 『초의 경취가 옹지를 포위했다. 한선왕이 졸하고 진이 한을 도와서 함께 초의 굴개를 무찔렀다.』는 대목과 일치한다고 언급한다.

2.3. 《전국책》〈동주책〉 002.秦攻宜壤

원래 의양은 현에 불과했지만 그 크기는 군에 필적했으며 군사 요충지이므로 한나라의 대군이 주둔하고 있었다. 한편 진나라에게는 장차 중원으로 진출하기 위해 반드시 차지해야 할 요충지였고 객경인 감무에게 의양 공략 실패는 곧 실각을 의미했다. 그리고 동주(東周)는 의양이 함락당하면 진나라와 접경하게 되는 상황이었다.
秦나라가 宜陽을 공격하다

진(秦)나라가 의양(宜陽) 땅을 공격해오자 周君이 조루(趙累)에게 말하였다.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조루가 대답하였다.
“의양은 틀림없이 빼앗길 것입니다.”
임금[1]이 말하였다.
“의양성은 사방 8리나 되고, 재사(材士)가 10만이나 되며, 군량도 수년은 지탱할 수 있소. 그리고 한(韓)나라 공중(公仲)[2]의 군대 20만과 경취(景翠)가 초나라의 많은 무리를 거느리고 산에 의지해 구원하고 있으니, 진나라가 틀림없이 공을 세우지 못할 것이오.”
조루가 대답하였다.
감무(甘茂)는 진나라의 기려(羈旅)[3]입니다. 그가 의양을 쳐서 공을 세우면 周公 旦과 같은 공신이 될 것이지만, 공을 세우지 못하면 진나라에서 削迹당하고 말 것입니다.
진왕은 여러 신하들과 父兄의 의견을 듣지 않고 의양을 공격하고 있습니다. 이제 만약 의양을 빼앗지 못하면 진왕은 이를 치욕으로 여길 것이기 때문에 臣이 빼앗길 것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周君이 말하였다.
“그대는 나를 위해 모책을 세워 주시오. 장차 어찌하면 좋겠소?”
조루가 대답하였다.
“왕께서는 경취에게 ‘그대의 작위는 집규(執圭)이며, 관(官)은 주국(柱國)이다. 이번 전쟁에 이기더라도 더 높여 줄 자리가 없지만 만약 이기지 못한다면 사형을 당하고 말 것이다. 그러니 진나라를 배반하고 의양을 돕느니만 못하다. 그대가 군대를 진격시키면 진나라는 그대가 그들의 피폐한 틈을 타 공격할까 두려워서 틀림없이 보물로써 그대를 섬기게 될 것이다.
한편 한나라의 공중치도 그대가 자신을 위해 진나라의 피폐한 틈을 타 공격하는 것을 사모하여 틀림없이 역시 재화와 보물을 모두 내놓게 될 것이다’라고 하십시오.”
진나라가 의양을 점거하자 경취는 과연 군사를 진격시켰다.
진나라가 두려워서 급히 자조(煮棗) 땅을 주었고, 한나라 역시 귀중한 보물을 내 놓았다.
경취는 진나라에게서 성(城)을 얻고, 한나라에게서는 보물을 받게 되었으며, 동주에게는 덕을 베푼 셈이 되었다.

본 자료의 원문 및 번역은 전통문화연구회의 동양고전종합DB(http://db.juntong.or.kr)에서 인용된 내용입니다.

2.4. 《전국책》〈동주책〉 023.杜赫欲重景翠於周

2.5. 《전국책》〈초책〉 191.齊秦約攻楚

齊나라와 秦나라가 맹약하여 楚나라를 공격하다

제나라와 진나라가 맹약하여 초나라를 공격하였다.
초나라는 경취를 시켜 여섯 성을 제나라에 주고, 태자를 인질로 보냈다.
소수(昭睢)가 경취에게 말하였다.
“진나라는 장차 경리(景鯉)와 소려(蘇厲)[4]로 인하여 초나라에 땅을 바칠까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공께서 제나라에 땅을 주어 제나라를 우리 편으로 만들면 경리와 소려는 이를 이용하여 진나라에게 땅을 달라고 하여 공의 일은 틀림없이 실패하고 말 것입니다.
그러니 공께서는 왕에게, 경리와 소려에게 많은 뇌물을 주어 진나라에 들어가도록 하느니만 못합니다.
제나라는 이에 두려움을 느껴 틀림없이 땅을 요구하지 않으면서 초나라와 화합하자고 할 것입니다. 만약 제나라가 땅을 요구하지 않게 되면 공께서는 맹약을 맺어도 됩니다.”

본 자료의 원문 및 번역은 전통문화연구회의 동양고전종합DB(http://db.juntong.or.kr)에서 인용된 내용입니다.

경취가 이 말을 따랐는지는 나오지 않는다.
[1] 周君[2] 한양왕의 아들 공중치(公仲侈). 당시 한나라의 상국이었다.[3] 다른 나라 출신으로 임시로 와서 벼슬하는 사람. 나그네로서 말을 매어 놓은 채 벼슬하는 신하라는 뜻. 여기서는 감무가 본디 초나라 사람으로 진나라에 와 벼슬하고 있기 때문에 일컬은 말이다.[4] 소진의 형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