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09-19 19:32:35

게리 켈리

게리 켈리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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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의 前 축구선수
파일:G.Kelly_Profile.jpg
<colbgcolor=#eeeeee,#191919> 이름 게리 켈리
Gary Kelly
본명 게리 올리버 켈리
Gary Oliver Kelly
출생 1974년 7월 9일 ([age(1974-07-09)]세)
아일랜드 드로이다
국적
[[아일랜드|]][[틀:국기|]][[틀:국기|]]
신체 178cm
직업 축구선수(수비수[1] / 은퇴)
소속 선수 드로이다 유나이티드 FC (1989~1990 / 유스)
홈 팜 FC (1990~1991 / 유스)
리즈 유나이티드 FC (1991~1992 / 유스)
리즈 유나이티드 FC (1992~2007)
국가대표 52경기 2골 (아일랜드 / 1994~2003)

1. 개요2. 클럽 경력3. 국가대표 경력4.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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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아일랜드 출신의 前 축구선수.

리즈 유나이티드의 유스출신으로서 팀의 흥망상쇠를 함께한 원클럽맨이다.

2. 클럽 경력

파일:G.Kelly_leeds.jpg

드로이다에서 태어난 켈리는 13살때 스트라이커로 축구를 시작했다. 그리고 그는 공격수로서 괄목할만한 성장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러나 리즈로 팀을 옮긴 후 당시 1군 감독이었던 하워드 윌킨슨은 그가 윙백으로 대성할 재능이 있다고 평가했고 그에게 포지션 전향을 제안했다.

공격수에서 윙백으로 포지션을 바꾼 켈리는 감독의 말대로 새로운 위치에서 훌륭한 모습을 보여주었고 1991-92 시즌을 앞두고 1군에 콜업된다. 그러나 레귤러 멤버로 자리잡기까지는 2년의 시간을 기다려야했다.

1993-94 시즌부터 켈리는 기존의 주전 라이트백이었던 멜 스털랜드가 부상으로 은퇴를 하게 되면서 중용받기 시작한다.

주전으로 활약한 첫 시즌부터 놀라운 퍼포먼스로 PFA 올해의 팀에 선정되며 모두를 놀라게 한다. 이때 그의 나이는 자그만치 만 19살이었다.

또한 그는 생애 첫 월드컵 무대에 참가하는 겹경사를 누리게 된다. 어린 그의 활기는 나이 든 아일랜드 선수단에 활력을 불어넣었으며 본선을 앞두고 독일과의 친선경기에서 2:0 으로 승리를 거두기까지 했다.

다음 시즌에도 켈리의 활약은 여전했고, 1997-98 시즌을 앞두고 조지 그레이엄 감독은 23살이었던 그를 팀의 주장으로 임명했다 .그러나 정강이 부상으로 1998-99 시즌을 통째로 날려버리며 한차례 시련이 오기도 했지만 그는 여전히 팀의 굳건한 주전으로 활약한다.

1999년 여름에는 찰턴 애슬레틱의 라이트백이었던 대니 밀스가 리즈와 계약했음에도 불구하고 켈리의 자리는 전혀 타격을 받지 않았다. 그리고 9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리즈의 황금같았던 리즈시절의 주역으로 활약하며 팀의 프렌차이즈 스타로 자리잡았다.

하지만 2001년부터 팀은 무리한 선수 영입으로 재정악화가 시작되었고 흔들리기 시작한다. 심지어 이로인해 팀에서 활약했던 핵심선수들이 하나 둘씩 팔려나갔고 그에게도 여러차례 이적 제의가 왔지만 굳건한 충성심을 보이며 팀에 헌신했다.

그러나 팀은 해가 거듭할수록 무너지고 있었고 켈리도 점점 힘에 부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2003-04 시즌, 리즈는 결국 강등을 피하지 못했고 충격적인 2부리그 행을 받아들여만 했다.

2부리그로 강등된 리즈는 안 그래도 열악한 재정 상태에 더 큰 타격을 받으며 나머지 선수들도 매각을 해야만 했다. 그러나 켈리는 잔류를 선택했고 2부리그에서 팀과 함께 다시 한번 승격을 위해 싸웠다.

2006년 2월 25일, 홈구장 엘런드 로드에서 열린 루턴 타운 FC와의 경기에서 그는 리즈에서 통산 500경기 이상 출전한 10번째 선수가 되었다.

두번째 2부리그 시즌인 2005-06 시즌, 팀은 플레이오프권까지 진출하며 다시 1부 리그 복귀할 수 있는 찬스를 잡았으나.. 플레이오프 결승에서 왓포드 FC를 만나 0:3으로 지며 불행하게도 승격은 무산이 됐다.

눈앞에서 승격이 좌절되고 맞은 16번째 시즌. 켈리는 초반부에는 정기적인 출전 기회를 받았으나 이후 그는 새로운 구단주인 켄 베이츠, 리즈의 감독이었던 데니스 와이즈의 눈밖에 나면서 출전기회가 대폭 줄어들고 말았다. 또한 와이즈는 2006년 10월 26일, 부주장 자리에 켈리를 내치고 션 데리[2]를 임명하면서 더욱 갈등은 증폭되었다.

그래도 2006-07 시즌 마지막 홈경기에서 자리를 함께한 많은 홈팬들과 스태프, 선수 그리고 리즈의 레전드들의 축하 속에 그의 은퇴식은 성대하게 치러졌다. 16년간의 파란만장했던 리즈에서의 생활을 마무리하는 순간이었다.

3. 국가대표 경력

파일:G.Kelly_National.jpg

1994년 미국 월드컵2002년 한일 월드컵에 참가하며 2번의 월드컵 무대를 밟아봤고 2003년에 국가대표 은퇴를 선언했다.

4. 여담

  • 소속팀과 대표팀의 동료였던 이언 하트와는 사촌지간이다. 리즈의 영광스러웠던 순간과 월드컵 무대를 함께 누볐던 것.

[1] 라이트백[2] 박지성과 2012-13 시즌 QPR에서 동료로 있던 그 선수 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