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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강영파 & (우) 유진동 | |
<colbgcolor=#0047a0> 출생지 | 경기도 |
추서 | 건국훈장 애족장 |
배우자 | 유진동 |
자녀 | 장남 유수현 차남 유수연 삼남 유수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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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2019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2. 생애
강영파는 경기도 출신인 것만 알려졌을 뿐 출생년도, 출생지, 독립운동 가담 이전 행적에 대해서는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그녀는 1930년 8월 중국 상하이에서 상해여자청년회 창립대회주비위원 및 임시위원을 맡았고, 1932년 4월 상해여자청년회 총무부장을 역임했다. 이후 임시정부를 따라 중국 각지를 전전하던 그녀는 간호사로서 근무하다가 1940년경 김구의 중매에 따라 독립운동가 유진동과 결혼했다.그녀는 남편과 함께 임시정부 요원및 한인들을 치료하는 임무를 수행했으며, 1943년 2월 중경에서 한국애국부인회 재건 당시 재무부 주임을 역임했고 1944년 3월 한국독립당 당원으로 활동했다. 8.15 광복 후 중국에 살아가다가 생계가 어렵자 남편을 따라 북한으로 이주해 함경북도의 '주을 요양소'에 거처했다. 그러나 남편이 지병을 치료하러 평양으로 간 후 소식이 끊기고 뒤이어 요양소에서 쫓겨나고 차별대우를 받자, 1962년 두만강을 건너 중국으로 도주했다.
큰아들 유수현은 정신이상자가 되어 평생 정신병원에 감금되었다가 1991년 사망했고, 둘째 아들 유수연은 우울증에 시달리다 1981년 독을 마시고 자살했다. 유일하게 살아남은 셋째 아들 유수동은 현재 충칭에서 독립운동가 이달의 딸 이소심의 도움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다. 한편 강영파가 언제, 어디서 죽었는지는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9년 강영파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