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2-01-25 03:05:58

강기보

파일:강기보.png
1931년 9월 20일, 서대문형무소에서 촬영된 사진.
<colcolor=#fff><colbgcolor=#0047a0> 이명 강기보(姜基寶), 강영철(姜榮哲)
출생 1905년[1] 2월 10일
평안북도 영변군 읍내면 서부리[2]
(현 평안북도 영변군 영변읍)
사망 1935년 8월 21일
경기도 고양군
직업 독립운동가
상훈 건국훈장 애족장

1. 개요2. 생애3.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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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국의 항일운동가, 한국의 공산주의자. 2007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강기보는 1905년 2월 10일 평안북도 영변군 읍내면 서부리(현 영변군 영변읍)에서 태어났다.

그는 1926년 10월 평양 편리화(便利靴) 직공조합 발회식에서 축사를 했다가 이를 빌미로 체포되어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6개월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른 뒤 1927년 2월 출옥했다. 이후 조선청년총동맹 평안남도 집행위원으로 선출되었으며, 평양지역 청년단체를 총괄하는 평양청년동맹(平壤靑年同盟)의 집행위원장이 되어 청년운동을 주도했다. 또한 신간회 평양지부 위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1927년 상경한 그는 경기도 고양군 한지면 신당리(현 서울특별시 중구 신당동에 일시 거주하다가# 비밀결사인 고려공산청년회(高麗共産靑年會)에 가입하였으며, 그해 12월 고려공산청년회 평안남북도책으로 선임되었고, 빈민구제를 위한 사회운동도 수행했다.

그러나 조선공산당 검거 사건에 휘말려 체포되었고, 1931년 3월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징역 2년을 선고받고 같은 달 30일 서대문형무소에 입소하여 옥고를 치렀다.

1933년 2월 27일 만기 출소했으나, 옥고 후유증으로 출옥 후 2년 만인 1935년 8월 21일에 경기도 고양군에서 사망했다.

3. 기타

대한민국 정부는 2007년 강기보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1] 1931년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에는 1906년생으로 기재되어 있다.[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