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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rtzia II.a Santxitz | ||
가문 | 세메노 왕조 | |
생몰년도 | 919년경 ~ 970년 | |
출생지 | 팜플로나 왕국 | |
사망지 | 팜플로나 왕국 | |
재위 기간 | 팜플로나 왕국 국왕 | 931년 - 970년 |
아버지 | 안초 1세 | |
어머니 | 토타 아세아리츠 | |
누이 | 우라카 산치츠, 오네카 산치츠, 안차 산치츠, 벨라스키타 산치츠 | |
배우자 | 안드레고토 가린도이츠, 테레사 라미레스 | |
자녀 | 안초 2세, 라미로, 토타 가르체이츠, 세메노 가르체이츠, 우라카 가르체이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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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팜플로나 왕국 6대 국왕. 가르치아 산치츠 1세라고도 불린다.2. 생애
919년경 안초 1세와 아즈나르의 딸 토타 아세아리츠의 아들로 출생했다. 누이로 우라카 산치츠, 오네카 산치츠, 안차 산치츠, 벨라스키타 산치츠가 있었다. 925년 아버지가 사망했을 때 나이가 6살에 불과했기에, 삼촌 세메노 가르체이츠가 국왕을 맡았다. 931년 세메노 가르체이츠가 사망한 후 왕위에 올랐지만 여전히 나이가 어렸기에 어머니 토타의 섭정을 받았다. 933년 성년이 된 뒤 아라곤 백작 갈린도 2세 아즈나레스의 딸 안드레고토 가린도이츠와 결혼했다.934년 5월 후우마이야 왕조의 칼리프 아브드 알 라흐만 3세가 레온 왕국의 라미루 2세를 공격하여 타격을 입힌 뒤 여세를 이어가 팜플로나 왕국을 침공하려 하자, 어머니 토타가 아랍군 진영에 찾아와서 자신이 그의 고모라는 점을 상기시키며 군대를 물려달라고 요청했다. 아브드 알 라흐만 3세는 다른 기독교 지도자들과의 관계를 끊고 무슬림들을 해치지 말며, 무슬림 포로들을 전원 석방시키고 코르도바에 조공을 바치며, 후우마이야 왕조군이 팜플로나를 통과하여 카스티야를 공격하는 것을 허용하라고 요구했다. 토타는 이를 받아들였고, 아브드 알 라흐만 3세는 팜플로나 왕국의 영토를 빠르게 통과한 뒤 알라바와 카스티야를 공격해 각지를 파괴한 후 귀환했다.
937년, 가르치아는 레온 왕국의 라미루 2세, 사라고사 총독 무함마드 이븐 하심과 동맹을 맺고 아브드 알 라흐만 3세와 대결했다. 아브드 알 라흐만 3세는 이에 대응해 갈라타유드와 사라고사를 거쳐 팜플로나 왕국으로 쳐들어갔다. 939년 7월, 가르치아는 라미루 2세, 카스티야의 페르난도 곤잘레스와 함께 시만카스 전투에서 아브드 알 라흐만 3세의 아랍군을 상대로 큰 승리를 거두었다. 이후 후우마이야 왕조와 레온-카스티야-팜플로나 연합은 평화 협약을 맺었다.
942년, 사라고사 총독 무함마드 이븐 하심이 이끄는 무슬림군이 북상하여 우에스카의 센 성채를 공략했다. 이에 가르치아 2세와 페르난도 곤살레스는 힘을 합쳐 무슬림군에 맞섰고, 그해 4월 5일 투델라 전투에서 무함마드 이븐 하심을 격파했다. 951년 레온 왕국의 라미루 2세가 사망하고 956년 후계자 오르도뉴 3세가 잇따라 사망하면서 왕국 내부에서 내란이 벌어지자, 가르치아 2세는 레온의 산추 1세를 지지했다. 카스티야 백국의 백작 페르난도 곤살레스가 산추 1세를 몰아내고 사위 오르도뉴 4세를 레온 왕위에 앉히자, 팜플로나 측이 반발하면서 연합이 깨졌다.
960년, 가르치아 2세는 후우마이야 왕조와 연합하여 레온 왕국으로 진군해 이에 맞서 싸운 페르난도 곤살레스를 격파하고 생포한 뒤 오르도뉴 4세를 축출했다. 이후 페르난도는 오르도뉴 4세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고 일부 영토를 넘기는 조건으로 풀려났고, 964년 가르치아 2세의 딸 우라카 가르체이스와 결혼했다. 가르치아 2세는 970년 2월 22일에 팜플로나에서 사망했고, 비야마요르 데 몬자르딘에 있는 산 에스테반 데요 성에 묻혔다. 사후 아들 안초 2세가 팜플로나 왕위에 올랐다.
3. 가족 관계
- 안드레고토 가린도이츠: 아라곤 백작 갈린도 아즈나레스 2세의 딸.
- 안초 2세: 팜플로나 왕국 7대 국왕.
- 토타 가르체이츠: 성명 이외에 별다른 행적이 전해지지 않음.
- 테레사 라미레스: 레온 왕국의 국왕 라미루 2세의 딸.
- 라미로: 비구에라 왕국의 초대 국왕.
- 우라카 가르체이츠: 카스티야 백작 페르난도 곤살레스와 첫번째 결혼. 가스코뉴의 기예르모 산체스와 재혼.
- 세메노 가르체이츠: 토타 왕비와 아브드 알 라흐만 3세가 평화 협상을 벌인 뒤 코르도바에 인질로 보내짐. 978년경 카스티야와 알라바 백작 가르시아 페르난데스의 요청에 따라 코바루비아스로 보내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