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오주의 중국특색 사회주의 | 자유주의 (민주화 운동) | 신권위주의 신유교주의 |
△ 중국의 가장 대표적인 현대 보수주의(신권위주의) 사상가 왕후닝 | |
<colbgcolor=#ee1c25> 신권위주의 新權威主義 | |
주요 학자들 | <colbgcolor=#ffffff,#1f2023>왕후닝, 간양 샤오궁친, 장시공 정융녠, 천위안 등등 |
창시일 | 1980년대 |
이념 | 보수주의 (중국) 아시아적 가치 전통적 보수주의[1] 권위주의적 보수주의 탈공산주의 (사실상)[2] 반자유주의 국가자본주의 (관료주의) 홍콩 한정: 경제적 자유주의[3] |
스펙트럼 | 우익[4] |
주요 정치인 | 왕후닝, 장쩌민 존 리, 시진핑 등등 |
연관 주제 | 장제스의 학설[5][6][7] 중국특색 사회주의 (신시대) 슈미트주의[8] 중국 내셔널리즘 홍콩 국가보안법 |
정당 |
新權威主義
新保守主義[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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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신권위주의는 자칭 "마르크스주의"로 대표되지만 실질적으로는 고전적 보수주의에 가까운 중국공산당의 우익적 이데올로기를 가리킨다. 공산당원 중에 대놓고 신권위주의자를 자처하는 인물들도 꽤 있다. 신보수주의라고도 불리며, 보통 해외에서 중국의 보수주의라고 했을때 이 이념을 가리키는 경우가 많다. 중화인민공화국의 보수주의라고 볼 수 있다.'신권위주의'는 '신유교주의', (중국식)'신좌파'[10], '자유주의'(반권위주의)와 함께 현대 중국 정치철학계의 4대 이념으로 간주된다.
국수주의와 혼동하면 안되는게, 신권위주의는 정치적,사회적으로 권위주의적 보수주의가 핵심이지, 외교 정책 등에서 내셔널리즘에 방점을 둔 개념이 아니다.[11] 실제로 신권위주의는 개혁개방 이후 중국공산당의 실질적 이념이였지만 시진핑 이전에는 그리 국수주의적이지 않았고 주변 국가들과 관계도 나름 원만했다. 즉 신권위주의자들 중에 내셔널리스트가 있는 것이지 아예 같은 것으로 볼 수는 없다. 영어 위키백과의 신권위주의 문서에서도 내셔널리즘에 방점을 찍는 서술은 보이지 않는다.
2. 역사
신권위주의는 사실 철학적 뿌리가 단단한 이념은 아니다. 1980년대의 개혁개방 정책과 함께 '자연스럽게' 형성된 것이다. 중국 대륙을 극좌 마르크스-레닌주의(마오주의)로 이끌었던 마오쩌둥이 사망하고 하이에크 등 우파 신자유주의 경제학자들에 조언을 받은 덩샤오핑은 개혁개방을 통해 자칭 '사회주의 시장경제'라는 사실상 국가자본주의 시스템을 도입하였고, 그러면서도 천안문 6.4 항쟁을 진압하는 등 민주주의에 대해서는 억압하는 등 중공은 사회주의로부터 서서히 탈피해 사실상 현재의 권위주의적 보수주의로 전환하기 시작하였다.[12]사회문화적으로도 과거 마오 시대에는 홍위병의 문화대혁명 등 전통적 가치가 억압되었던 것에 대한 반동으로 덩샤오핑, 장쩌민 시대부터 유교나 도교, 불교나 법가 등에서 비롯된 보수적 미덕들을 점점 장려하기 시작하였다. 해리 하딩(何漢理)를 비롯한 일부 학자들은 덩샤오핑 시기에 마오주의를 탈피하면서 중국 체제가 '전체주의'에서 '협상적 권위주의'로 전환되었다고 보았다.
1990년대부터 신권위주의는 '신보수주의'라고 불리면서 구체화되었다. 특히 장쩌민의 삼계대표사상, 후진타오의 과학적 발전관, 시진핑 사상등을 설계한 왕후닝은 자신을 대놓고 "신보수주의"자이자 "신권위주의"자로 지칭하였다. 장쩌민, 후진타오, 시진핑 모두 공산당 당내 계파가 다름에도 불구하고[13] 왕후닝은 실세로써 지속적으로 신뢰받고 개혁개방 이후 거의 언제나 중국공산당 이데올로기의 설계자였다. 이로 인해 왕후닝은 현대 중국의 제갈량으로 불리고 있다. 왕후닝은 일본이 1940년대 태평양 전쟁에서 군사적으로, 1980년대에 경제적으로 미국을 위협한 것을 언급하며 서구의 개인주의와 향략주의, 민주주의를 질타하고 결국에는 아시아의 집단주의, 권위주의에 패배하게 될 것이라는 무서운 발언을 했다.# 실제로 '차이나 모델'은 일본 제국의 그것과 상당히 흡사하다.#
중영공동선언, 홍콩 반환으로 홍콩에서는 일국양제가 실시되었는데, 경제적 자유는 확고히 보장하면서[14] 정치적 자유는 제한하였다.# 다르게 말하면 빈부격차 등에 대해서는 방치하면서 정치적으로는 중화민족주의 등을 강조한 전형적인 근대적 보수주의 모델을 홍콩에 적용한 것이다. 실제로 건제파의 주류는 친기업 보수주의자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2020년에는 아예 홍콩 국가보안법이 제정됨에 따라 홍콩 내 자유주의자들, 반권위주의자들이 탄압받고 있다. 홍콩 내 극우파인 급진건제파의 경우는 민주파에 대한 백색테러를 하는데다가 일부는 아예 일국일제를 주장하기도 한다. 마카오 등에서도 경제적 자유와 정치적 부자유, 보수주의로 운영되고 있다.
시진핑 시대에 들어서서는 사회보수주의가 매우 강화되었다. 중국의 저출산 심화로 인해 2024년 시진핑은 중국여성대표회의에서 '여성들은 중화민족의 전통적 미덕을 고취하고 가풍을 확립하는데 특별한 역할을 해야 한다'고 발언했다.# 타임지 등 영문 언론에서도 conservative social views라고 표현했다.# 취직하지 말고 집에서 애나 낳으라는 것을 돌려말한 것인데, 중국이 실상 권위주의적 보수주의 국가지 공산주의 국가가 아니라는 것을 방증한다.
3. 대표적인 신권위주의자들
- 간양(甘陽) - 중국의 신권위주의 옹호자이자 정치 철학자로, 중국이 나아갈 노선으로 유가사회주의공화국을 제시하였다.
- 덩샤오핑 - 그가 실권을 쥔 시기기 중국공산당이 신권위주의/신보수주의화되는 시기라고 볼 수 있다. 본격적으로 보수적으로 변한 건 장쩌민 시기이다.
- 샤오궁친(蕭功秦)
- 시진핑
- 왕후닝 - 중국 신보수주의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이다.
- 장시공(强世功) - 중국(중화인민공화국)의 극우 정치 이론가로, 카를 슈미트 사상을 중국식으로 재해석했다.[15] 사실 아주 젊었을때는 중국식 신좌파, 마오주의자였는데 사상적으로 전향했다고 볼 수 있다.
- 장쩌민
- 정융녠(郑永年) - 신보수주의 사상가. 시진핑의 외교책사라고도 불리는 인물이나 최근 성추행 추문으로 논란을 빚고 있다.
- 존 리 - 홍콩의 행정장관. 강경 친중파이며 2019년 홍콩 민주화 운동 당시에는 홍콩 행정부 내에서 진압 관련 최고 책임자였다.
- 천위안(陈元) - 신권위주의 옹호자이자 중국 본토에서 저명한 경제학자이다.
- 후시진(胡锡进) - 전랑외교의 상징적 인물 중 하나이며, 전 환구시보 편집장이였다.
4. 같이 보기
- 국가자본주의
- 권위주의적 자본주의, 권위주의적 보수주의
- 박정희/사상 - 실제로 중공이 개혁개방 할때 박정희의 경제정책도 많이 참고했다고 한다.
- 유교 사회주의
- 중국 내셔널리즘
- 친중/홍콩 (급진건제파)
- 푸틴주의
- 환구시보 - 중공의 보수언론
- 홍콩 행정장관, 마카오 행정장관 - 아직까지는 역대 행정장관들이 모두 친베이징 보수 계열들이였다.
- 중화애국동심회 (대만)
5.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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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에 따라 사회보수주의, 문화적 보수주의도 두드러진다. '고전적 보수주의'는 '전통적 보수주의'와 같은 의미다.[2] Moody, Peter R. (2007). Conservative Thought in Contemporary China. Lexington Books. ISBN 978-0-7391-2046-0.[3] 홍콩은 싱가포르처럼 경제적 자유와 정치적 부자유로 유명하다. 출처: #[4] Yuezhi Zhao (2008). Communication in China: Political Economy, Power, and Conflict. "... right-wing ideology of neo-authoritarianism , limiting itself to championing China's national self-interests in a neoliberal global order." Rowman & Littlefield Publishers.[5] 중국이 개혁개방 하고 경제,정치 롤모델을 선정할 때 싱가포르나 대한민국식 개발독재 시스템 뿐 아니라 당궈(당과 국가의 일체성 중시)라고 불리는 중국국민당 모델에도 깊이 영향을 받았다. 실제로 현대 중국의 시스템은 마오쩌둥이 꿈꾼 중국이 아니라 장제스가 꿈꾼 중국에 가깝다. 과거 중원을 지배했던 중국국민당도 장제스 시기에 보수우익을 표방하면서도 쑨커의 민주집중제에 영향을 받아 소련식 국가 위에 당이 군림하는, 서구적 자유민주주의와는 억만년은 떨어진 사실상의 일당제 통치를 선호하였고, 일본 침략 이전까지 국가협동조합주의 기반 시장경제정책과 제한적인 무역개방만으로도 난징10년 등 꽤 괜찮은 경제적 성과를 달성했다. 일당독재체제를 유지하면서 국가가 통제하는 시장경제를 원했던 중공지도자들이 눈길 갈만한 모델이다.[6] 현 중국모델이 마오주의보다 장제스주의에 가까워서 그런지 대만의 극우는 2010년대 이후 친중공 세력이 절대다수고 대륙수복 운운하는 반공극우는 소수파로 전락했다. 이제는 되려 장제스 시대에 용공세력이라 탄압받았던 민주진보당과 대만민족주의자들이 대만주권 수호를 위해 반공을 내세우고 있다. 현 중공체제가 마오쩌둥식 공산주의가 아닌 장제스주의에 가까운 보수적인 중국이므로 대만 극우들 입장에선 더이상 반중공을 내세울 이유 자체가 사라져버렸기 때문이다. 장제스가 반공한 이유가 빈곤을 조장하고 문화적 파괴를 일으켜 중화민족을 나락으로 떨어뜨릴 것을 우려한 것인데, 오히려 덩샤오핑 이후 그러한 정책을 폐기하고 장제스식 정책을 추구해 (그들 기준)대중화 조국과 찬란한 문명을 부흥시키니 더 이상 공산당에 반대할 이유가 없고, 오히려 대만민족주의와 자유주의에 대한 환멸로 장제스를 빨면서 동시에 (모순적이게도) 중공에 흡수통일되길 바라게 된 것이다.[7] 정작 중공은 국민당의 이념은 표절했으면서 국민당의 중국 내 정치활동은 차단하고 있으니 모순이 아닐 수 없다.[8] 장시공(强世功) 등 일부 신보수주의자들이 옹호하고 있다. 슈미트에 영향받은 국가주의자(statist)들로 인해 홍콩 국가보안법 제정으로 이어졌다.# 슈미트의 결단주의 사상이 중공 독재와 민족주의에도 영향을 주는 것으로 보인다.[9] New conservatism으로 표기하기도 한다.[10] 주로 마오주의자들이나 좌파공산주의자들[11] 물론 권위주의적 보수주의 특성상 내셔널리즘에서 자유롭지는 못하다.[12] 사실 덩샤오핑의 이런 모습은 문화대혁명 흑역사로 인해 학생운동에 대한 반감에서 비롯된 것이다. 본인도 문혁때 극좌 학생들에게 조리돌림 당했던 트라우마가 있다 보니...[13] 장쩌민은 상하이방, 후진타오는 단파, 시진핑은 태자당 내 습가군[14] 홍콩은 선진국 기준으로도 경제적 자유가 높은 지역이다.[15] Pils, Eva (2015). China's Human Rights Lawyers: Advocacy and Resistance. Abingdon: Routled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