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5-26 09:22:34

1K17

파일:1K17.webp

1. 개요2. 제원3. 개발사
3.1. 1K11 Стилет3.2. СЛК Сангвин
4. 성능5. 기타6. 매체

[clearfix]

1. 개요

소련에서 개발된 레이저 조사 차량. 별칭은 «Сжатие» 으로, 러시아어로 압축을 뜻하는 말이다.

2. 제원

제원
전장 6.04m
전폭 3.584m
전고 3.3m
중량 41t
승무원 조종수 + 숫자 불명
엔진 V-84A 엔진
주행속도 60km/h
무장 레이저 포 1문(발사기 1개, 개별 조사기 렌즈 15개)
12.7mm NSVT 중기관총 1정

3. 개발사

1970년대를 전후하여 소련은 레이저의 무기화를 본격적으로 시도했다. 당시 군용 레이저 차량을 개발한 기관은 천체물리학 과학 생산 협회(НПО Астрофизика)[1]였으며, 소련 레이저 공학의 최고 권위자였던 니콜라이 드미트리예비치 우스티노프(Nikolai Dmitrievich Ustinov)가 개발을 지휘했다고 한다. 또한 니콜라이는 당시 소련군 국방장관이었던 드미트리 우스티노프의 아들이었다고 한다. 돈 먹는 하마인데 당장 큰 성과는 나오지 않던 레이저 탱크 프로젝트가 오랜 기간 진행된 것은 니콜라이의 아버지가 국방장관인 우스티노프여서 가능했었다고.[주의]

천체물리학 과학 생산 협회는 총 3대의 레이저 차량을 개발했는데, 맨 마지막으로 개발한 기체가 바로 1K17이었다.

1K17의 레이저 부품은 천체물리학 과학 생산 협회가 개발했고, 차체는 우랄트란스마쉬에서 개발했다고 한다.1990년 12월 프로토 타입이 출고되어 1991년에 테스트를 시작, 1992년에 테스트가 종료되었다고 한다. 테스트 결과는 긍정적이었다고 하지만 페레스트로이카로 인하여 돈 먹는 하마였던 이 프로젝트는 공중분해 되었다고.

그러나 2017년 들어서 러시아군이 레이저 무기에 대해 다시 관심을 가지고 연구를 시작했는데 1K17의 레이저 무기를 기반으로 연구가 진행되는 중이라고 한다.기사 링크

3.1. 1K11 Стилет

파일:1k11-image01-s.jpg

1K17의 선조뻘 차량으로, SU-100P의 차체를 활용하여 제작되었다. 천체물리학 과학 생산 협회에서 개발한 최초의 레이저 차량이었다고 한다. «Стилет»라는 별명은 러시아어로 단검을 뜻한다.

1K11은 1970년대와 1980년대 사이에 개발되었다. 이 링크에 따르면 적어도 1982년에는 1K11 개발이 끝나 실험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소련 정부는 1K11 개발을 군사기밀로 취급하였지만, 미국의 펜타곤은 소련 국방부에서 근무하던 고위 간부 출신 망명자들을 통해서 도면을 입수하는데 성공했다.

개발비가 지나치게 비쌌기 때문에 실용화는 어려웠고, 프로토타입 2대만 제작되고 개발이 취소되었다.

후일 2대의 프로토타입중 1대는 상트페테르부르크의 61차 장갑 수리 공장의 배수조에서 발견 되었으며 그 이후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스크랩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나머지 1대는 크라코프의 탱크 수리 공장에서 러시아 동호인들에게 발견되었고, 차체만 남기고 모든 부품이 분해되어 있었다고 한다.

3.2. СЛК Сангвин

파일:SANGVIN_02.jpg

1K17 이외에도 ZSU-23-4 쉴카의 차체를 활용한 СЛК «Сангвин»[3]도 비슷한 차량으로 개발되었다.실험 결과 10km 밖 헬기의 레이더에 큰 이상을 줄 수 있었다고 한다. 이 역시 실험기로 1대만 제작되어 더 이상 양산되지 않았다.

4. 성능

이 차량은 강력한 레이저를 사용하여 적군의 미사일과 항공기, 지상병기를 비롯한 무기들의 관측장비나 유도장치를 비롯한 광학 장비를 고장내서 공격을 무력화 시키기 위해 개발되었다. 스타워즈배틀테크같은 SF 시리즈에 나올법한 초강력 레이저를 발사하여 목표물을 파괴하는 레이저 병기가 아니다.

레이저 조사기 실린더 1개마다 용융 합성법으로 제조한 30kg 원통형 인공루비 결정을 사용한 루비 레이저로 빛을 모았으며, 이런 조사기 12개가 다연장 구조로 포탑에 장비되었기 때문에 조사기들에 들어간 루비의 양을 합치면 15만 캐럿에 달하는 양이 나온다. 사용하지 않을때는 조사기를 렌즈 커버로 덮어서 보호했고, 각 조사기마다 독립적인 조절이 가능했기에 포수에 해당한 운용 승무원들이 각 조사기의 세기를 조절하여 목표에 빛을 집중시키는게 가능했다.

다만 루비 레이저 이외에도 YAG 레이저를 사용했다는 설도 있다.

광원으로도 강한 제논 램프를 사용했고, 초점을 모을때 레이저 광선의 반사도를 높이기 위해서 조사기 통 안에 있는 루비 기둥의 끝에는 은으로 도금해서 거울로 만들었다. 이렇게 만든 레이저 발사기에서 나오는 레이저는 광학장비들을 고장내기에는 충분했고, 한번에 고위력의 빛을 단시간 안에 방출하는 펄스 모드도 있었다고 여겨진다. 사람이 빛에 맞을 경우 거리와 광선의 세기 조건에 따라서 각막을 태우는 정도가 아니라 3도 화상을 입을 수도 있었다고 한다. 일단 사람의 시력을 손상시키는걸 넘어서 실명시키는건 어렵지 않기에 살상력은 없지만 보병뿐만 아니라 광학기기나 창문을 통해 관측을 하는 조종사나 승무원과 같은 사람들을 대상으로는 위협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실전배치 되었더라도 제네바 조약의 레이저 및 광학병기 관련 조항 때문에 민간을 상대로 마구 사용되지는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당연하지만 레이저가 어마어마한 위력을 내기 위해서는 전력 소모량도 어마어마했고, 레이저 조사기에 들어가는 루비들은 요구된 크기와 무게를 만족시키는 천연루비를 구할 수 없어서 모두 인조 제작되어 제작비도 무시무시했다. 때문에 포탑 뒤에 대형 APU 발전기가 들어가고 보조 전력을 위한 배터리도 들어갔지만, 여전히 전력 문제로 목표하는 시간동안 목표 위력을 내는게 어려웠다고 한다. 이를 극복하려고 실험할때 외부 전력원도 가져와서 사용했다고 하지만 여전히 목표에 효과적으로 도달하지는 못했다고 한다.

지상/대공 호위용 12.7mm NSV 중기관총을 제외하면 별다른 무장은 장착되지 않았다. 차체는 2S19 므스타-S의 차체를 활용하였기에 원본 자주포처럼 T-80 기반 차대에 T-72의 구동계가 들어간 형식이다.

5. 기타

1K17은 현재 러시아 모스크바의 군사 기술 박물관에 1대 전시되어 있다. 그러나 러시아의 군사 전문가 Alexei Khlopotov에 따르면 12대 이상이 생산되어 소련군에 추가로 인도되었다는 말도 있다.

6. 매체



[1] 설계국이 아니라 의아해할 수 있는데, 당시 소련군의 모든 장비는 설계국에서 만든게 아니라 과학 생산 협회(Научно-производственное объединение)에서도 많이 제작했다고 한다.[주의] 다만 니콜라이가 1K17을 비롯한 레이저 탱크 프로젝트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맡은 것은 맞으나, 니콜라이는 1986년에 천체물리학 과학 생산 협회를 떠났다고 하는데 1K17의 프로토타입은 1990년 출고되었다.[3] 러시아어로 빨간색 크레용이라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