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earfix]
1. 개요
1979년 패스트넷 레이스 참사(1979 Fastnet Race)란 1979년 8월 영국과 아일랜드 사이를 오가는 롤렉스 패스트넷 레이스 세일링 요트 레이싱 대회에서 일어난 참사를 가리킨다.2. 롤렉스 패스트넷 레이스
- 공식 홈페이지#
Rolex가 후원하는 세일링 요트 대회 중 하나인 '롤렉스 패스트넷 레이스(Rolex Fastnet Race)' 는 1925년에 시작 된 유래 깊은 대회다. 1925년부터 31년 까지는 1년마다 열렸으나, 31년부터 격년으로 2년 마다 열고 있다. 전세계 20여개가 넘는 국가에서 3,000여명의 선수가 300대가 넘는 요트를 끌고와 참전한다. 프로 외에 아마추어도 참전할수 있는데, 개인팀과 단체팀으로 나뉜다. 국내에서는 대한 요트 협회에서 참가중이다.
시작점은 영국 남해안의 와이트 섬에서 출발해 서쪽으로 항해 후 아일랜드 남서부 끝의 패스트넷 바위(Fastnet Rock)을 반환점 삼아 돌고 결승 지점인 와이트 섬으로 돌아오면 완주 성공이다. 거리는 약 695 해리, km로 환산시 1,287km에 달하는 장거리 경주다.
최초의 우승 요트는 영국팀의 요트 졸리 브라이스(Jolie Brise), 모노헐 요트로 6일 2시간 45분이 걸려 도착했고, 최초의 외국인 우승 요트는 미국 출신 폴 해먼드(Paul Hammond)였다. 1999년엔 멀티헐 종목이 추가됐다. 현재까지 최고 기록은 아랍 에미레이트 출신의 이안 워커(Ian Walker)로, 모노헐로 42시간 39분 만에 완주했다.
2021년에는 최초로, 와이트 섬이 아닌 프랑스 노르망디 코탕탱(Cotentin) 반도의 북쪽 끝에 위치한 쉘부르가 결승선이 됐다.
3. 사고 당시
1979년 8월 11일 토요일, 제 18회 패스트넷 레이스가 열렸다. 336대의 요트가 참가 신청을 냈고, 그 중 통과 된 303대의 요트가 출발했다. 참가 인원은 약 2,700명이었다. 바람은 남서풍이 10노트에서 20노트 정도로 불거라는 예보가 있었다. 하지만 예보와 달리 3,200km 떨어진 캐나다 앞 대서양 바다에서 저기압 폭풍이 발달했다. 북극에서 내려온 찬 공기가 그레이트 플레인스에서 나온 따뜻한 공기와 만나며 형성된 폭풍, 일명 로우 Y(Low Y)는 북동쪽으로 이동하면서 패스트 넷 레이스 경로로 향했다. 당시 핸드폰은 물론이고, GPS도 민간이 보급되지 않았던 시절이라 선수들은 각자 지참한 지도와 나침반 등으로 길을 찾아야 했고, 날씨는 BBC 같은 라디오 방송국에서 전해주는 정보를 들어야 했다.
8월 13일 월요일, 요트들이 반환점에 도착했을 때 쯤 폭풍도 가까이, 아일랜드 해안에서 200해리 지점에 다다랐다. 요트들에 폭풍이 올거라는 경고가 전해졌다. 그리고 14일, 보퍼트 풍력 계급으로 무려 10에 달하는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강풍이 불었고, 파도가 거칠게 일었다. 당시 가장 낮은 곳의 기압은 무려 979 헥토파스칼에 달했고, 파도 높이는 최대 18m였다. 파도가 너무 심해 배가 흔들리고, 아예 뒤집히기까지 했다. 24개의 팀은 요트를 버리고 경기를 포기했다. 요트에서 떨어져 바다에 떠다니는 이들이 계속해서 속출하자 해안구조대는 물론, 영국 해군과 네덜란드 해군, 미국 해군, 아일랜드 항공대, 인근을 지나던 여객선과 어선, 그리고 유조선까지 구조에 나섰다. 구조에 나선 사람은 무려 4,000명이 넘었다. 영국과 아일랜드 역사상 최대 규모의 해양 구조작전이었다. 폭풍은 무려 36시간에 가까이 지속된 뒤에야 사라졌다.
8월 17일, 마지막 요트가 결승점을 통과하면서 레이스가 끝났다. 우승자는 버뮤다 출신의 요트 "콘도르 오브 버뮤다(Condor of Bermuda)", 2일 23시간 25분 만에 완주했다.
경기 시작 때는 303척의 요트가 출발했으나, 끝났을 땐 겨우 85척만 완주했다. 이날 사고로 요트 70대가 뒤집혔고, 5대가 침몰했다. 24개 팀은 요트를 버리고 경기를 포기했다. 선수 136명은 바다에서 표류하거나 물에 빠졌다가 간신히 구조됐다. 그리고 15명이 사망했다. 요트 경주를 구경하던 사람과 구조하던 사람 중 폭풍우로 사망한 4명까지 합치면 사망자 수는 19명까지 오른다. 54년 동안 사망자는 단 한명밖에 나오지 않은 패스트넷 레이스였으나, 이 사고로 인해 패스트넷 레이스 역사에는 물론, 요트 역사상으로도 가장 많은 사망자를 낳은 참사로 기록됐다.
4. 사고 이후
왕립 요트 협회(Royal Yachting Association. 줄여서 RYA)와 왕립 해양 레이싱 클럽(Royal Ocean Racing Club. 줄여서 RORC)은 사고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요트 제조와 안정성, 내구성, 안전 장비 등을 개선하는 권고 사항과 규정을 신설했다.오프 쇼어 레이싱 의회(Offshore Racing Congress. 줄여서 ORC)에선 당시 구명 뗏목 문제로 사망한 사례가 나온 것을 이유로 구명 뗏목에 대한 새로운 제조 표준을 세웠다.
아일랜드의 케이프 클리어 섬에 있는 케이프 클리어 박물관에는 희생자를 기리는 추모비가 세워져있다.# 웨스트 코크에도 추모비가 세워져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