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 FIFA 월드컵 멕시코 | ||
조별 라운드 | 1조, 2조 | 3조, 4조 |
결승 토너먼트 | 8강 이후 |
[clearfix]
1. 16강 1조
순위 | 국가 | 경기수 | 승 | 무 | 패 | 득점 | 실점 | 득실차 | 승점 | |
1 | 소련 | 3 | 2 | 1 | 0 | 6 | 1 | +5 | 5 | |
2 | 멕시코 | 3 | 2 | 1 | 0 | 5 | 0 | +5 | 5 | |
3 | 벨기에 | 3 | 1 | 0 | 2 | 4 | 5 | -1 | 2 | |
4 | 엘살바도르 | 3 | 0 | 0 | 3 | 0 | 9 | -9 | 0 |
1.1. 1경기 멕시코 0 vs 0 소련
경기장 | 에스타디오 아스테카 멕시코 시티 - 멕시코 | |
경기일[A] | 1970년 5월 31일 12:00 (1970년 6월 1일 02:00) | |
국 가 | 멕시코 | 소련 |
득 점 | 0 | 0 |
득점자 |
2006 FIFA 월드컵 독일 이전까지 개최국이 개막전을 치르는 마지막 사례가 되었다. 월드컵 본선에서 1승 3무 13패를 기록했던 개최국 멕시코와 지난 3번의 대회 모두 2라운드에 진출한 강호 소련과의 월드컵 개막전은 득점 없이 비겼다. 개최국의 첫 경기 무승부는 지난 대회에 이어 2번째 일. 월드컵 개최국가의 첫 경기 무패는 이어졌다. 그리고 소련이 개최국가를 상대로 물먹는 징크스가 있는데[2] 이번에도 개최국과 비기며 좋지 않은 기록을 이어나갔다.
하프타임 이후 소련의 아나톨리 푸자흐는 교체투입되며 월드컵 통산 제1호 교체투입 선수가 되었다.
개막전이 무득점 무승부로 끝나자 몇몇 미디어에서는 대회 전체가 이 경기처럼 느린 템포로 재미없게 이어질 것으로 전망하기도 했다.
1.2. 2경기 벨기에 3 vs 0 엘살바도르
경기장 | 에스타디오 아스테카 멕시코 시티 - 멕시코 | |
경기일[A] | 1970년 6월 3일 16:00 (1970년 6월 4일 06:00) | |
국 가 | 벨기에 | 엘살바도르 |
득 점 | 3 | 0 |
득점자 | 판 무에르 (12'), (54') 람베르 (76') (PK) |
1954년 대회 이후 16년 만에 본선에 복귀한 벨기에는 4번의 대회에서 1무5패라는 초라한 기록만 남기고 있었다. 하지만 멕시코의 개최 덕분에 북중미 TO 하나를 축구전쟁을 치르면서 따내며 월드컵 본선에 처음으로 나가는 엘살바도르를 상대로 3대0으로 완승을 거두며 첫 출전이었던 1930년 이후 40년, 5번의 본선, 7경기 만에 월드컵 첫 승리에 성공했다. 엘살바도르는 전력차를 실감하며 월드컵 본선 혹독한 신고식을 치렀다.
1.3. 3경기 소련 4 vs 1 벨기에
경기장 | 에스타디오 아스테카 멕시코 시티 - 멕시코 | |
경기일[A] | 1970년 6월 6일 16:00 (1970년 6월 7일 06:00) | |
국 가 | 소련 | 벨기에 |
득 점 | 4 | 1 |
득점자 | 비쇼베츠 (14'), (63') 아사티아니 (57') 크멜니츠키 (76') | 람베르 (86') |
첫 경기에서 개최국 멕시코와 비겼던 소련은 비쇼베츠의 2골로 첫 경기 엘살바도르에 승리를 거둔 벨기에에 4대1 대승을 거두며 일단 벨기에를 제치고 조1위로 올라갔다. 최종전 상대는 약체 엘살바도르라 8강행은 유력해졌다. 벨기에는 람베르의 골로 겨우 영패는 면했고 최종전에서 홈팀 멕시코에 반드시 승리해야 첫 2라운드 진출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1.4. 4경기 멕시코 4 vs 0 엘살바도르
경기장 | 에스타디오 아스테카 멕시코 시티 - 멕시코 | |
경기일[A] | 1970년 6월 7일 12:00 (1970년 6월 8일 02:00) | |
국 가 | 멕시코 | 엘살바도르 |
득 점 | 4 | 0 |
득점자 | 발디비아 (45'), (46') 프라고소 (58') 바사구렌 (83') |
역대 첫 북중미 국가 간의 월드컵 맞대결에서 멕시코는 이전에 6번이나 밟아본 월드컵 경험의 짬밥과 개최국 버프는 무시 못하는지 엘살바도르에게 한수 가르치며 4대0 대승으로 소련을 골득실로 제치고 조1위로 올라갔다. 4골은 멕시코의 역대 월드컵 본선 최다 골 기록을 갈아치운 기록이었으며 이 승리로 통산 2번째 월드컵 본선 승리를 거두었다. 엘살바도르는 2경기 연속 대패로 2패를 떠안고 탈락이 확정되었다.
1.5. 5경기 소련 2 vs 0 엘살바도르
경기장 | 에스타디오 아스테카 멕시코 시티 - 멕시코 | |
경기일[A] | 1970년 6월 10일 16:00 (1970년 6월 11일 06:00) | |
국 가 | 소련 | 엘살바도르 |
득 점 | 2 | 0 |
득점자 | 비쇼베츠 (51'), (74') |
소련은 지난 경기에 이어서 비쇼베츠가 다시 두 골을 득점하며 가볍게 4회 연속 8강에 진출했다. 멕시코와 골득실이 같았으나 다득점에서 1골 앞서 조1위가 되었다. 반면 첫 출전한 엘살바도르는 무득점 9실점 3패로 월드컵 본선 첫 득점과 승점은 다음 대회로 기약하게 되었고 대회 전체 꼴찌가 되었다.
1.6. 6경기 멕시코 1 vs 0 벨기에
경기장 | 에스타디오 아스테카 멕시코 시티 - 멕시코 | |
경기일[A] | 1970년 6월 11일 16:00 (1970년 6월 12일 06:00) | |
국 가 | 멕시코 | 벨기에 |
득 점 | 1 | 0 |
득점자 | 페냐 (14') (PK) |
페냐의 페널티킥 결승골과 함께 멕시코는 안방에서 사상 첫 2라운드에 진출에 성공했다. 이전까지 6번의 대회에서 월드컵 17경기 1승이었지만 이 대회에서만 2승을 기록하게 되었다. 하지만 추가 득점에는 실패하여 결국 소련과 득실차 동률이 되어 추첨으로 순위를 정하게 되었고#, 추첨 결과 소련이 조 1위가 되고 멕시코는 2위로 밀려나[B] 유로 1968 우승국 이탈리아를 8강에서 상대하게 되었다.# 조 1위를 했다면 지난 대회에서도 0대0으로 비긴 바 있는 우루과이라 한결 나았을 수도 있다. 8강을 위해서 반드시 승리해야 했던 벨기에는 결국 홈 팀의 열렬한 응원과 고지대의 산소 부족을 넘지 못하고 사상 첫 2라운드 진출 기회는 다음으로 기약하게 되었다.
1.7. 1조 총평
개최국 멕시코가 톱시드를 받은 조. 직전 대회처럼 개최국의 이점을 살리고자 1조의 여섯 경기 모두 멕시코 시티의 에스타디오 아스테카 경기장에서 치러졌다. 소련은 4회 연속 진출, 전 대회 4강에 오른 강호였지만 톱시드에서 미끄러지며 개최국 멕시코와 같은 조에 편성되었고, 엘살바도르는 멕시코와 같은 북중미 국가지만 이 때만 해도 대륙별 안배라는 개념이 없었기 때문에 같은 북중미의 멕시코와 붙어버렸다. 이는 지금까지도 북중미 두 나라가 한 조에 들어간 전무후무한 사례로 남아있다.소련은 벨기에를 4:1로 이기고, 엘살바도르를 2:0으로 누른 덕택에 멕시코와 득실차 동률을 이루었고 추첨에서 이기면서[B] 멕시코가 2위, 소련이 1위로 8강에 진출했다.
멕시코는 이전에 여섯 번이나 월드컵 무대를 밟았음에도 1승 3무 13패라는 처참한 성적을 가지고 있었는데, 고지대의 홈이라는 이점을 앞세워 개막전에서 강호 소련과 0:0 무재배를 시작으로 엘살바도르를 4:0, 벨기에를 1:0으로 누르고 2승 1무 조 2위의 호성적을 거두며 자신들의 월드컵 도전사에서 첫 2라운드 진출에 성공했다. 벨기에는 첫 경기에서 엘살바도르를 3:0으로 눌러 40년만의 월드컵 본선 첫승을 했지만, 두 번째 경기에서 소련에 1:4로 대패함에 따라 마지막 경기를 꼭 이겨야만 8강에 진출할 수 있었는데, 고지대로 인한 산소 부족과 홈팀 멕시코의 열렬한 응원을 버티지 못하고 0:1로 석패함으로써 역시 첫 2라운드 진출은 다음으로 기약해야 했다.
엘살바도르는 멕시코가 월드컵 개최로 빠지면서 온두라스와 축구전쟁까지 벌인 끝에 힘겹게 오른 첫 무대에서 혹독한 신고식 끝에 3전 전패 무득점 9실점 전체 최하위(16위)로 쓸쓸히 짐을 쌌다.
2. 16강 2조
순위 | 국가 | 경기수 | 승 | 무 | 패 | 득점 | 실점 | 득실차 | 승점 | |
1 | 이탈리아 | 3 | 1 | 2 | 0 | 1 | 0 | +1 | 4 | |
2 | 우루과이 | 3 | 1 | 1 | 1 | 2 | 1 | +1 | 3 | |
3 | 스웨덴 | 3 | 1 | 1 | 1 | 2 | 2 | 0 | 3 | |
4 | 이스라엘 | 3 | 0 | 2 | 1 | 1 | 3 | -2 | 2 |
2.1. 1경기 우루과이 2 vs 0 이스라엘
경기장 | 에스타디오 콰우테모크 푸에블라 - 멕시코 | |
경기일[A] | 1970년 6월 2일 16:00 (1970년 6월 3일 06:00) | |
국 가 | 우루과이 | 이스라엘 |
득 점 | 2 | 0 |
득점자 | 마네이로 (23') 무이카 (50') |
이탈리아, 브라질과 함께 월드컵 2회 우승에 빛나는 우루과이는 본선에 처음 출전한 이스라엘을 2대0으로 가볍게 누르며 좋은 출발을 했다. 월드컵 본선 첫 경기에서 지지 않는 기록도 이어나갔다.
다만 이 경기에서 공격의 핵심이자 주장이던 페드로 로차가 부상을 당하며 월드컵에서 하차. 이후 우루과이는 심각한 빈공에 시달리게 된다.
2.2. 2경기 이탈리아 1 vs 0 스웨덴
경기장 | 에스타디오 루이스 도살 톨루카 - 멕시코 | |
경기일[A] | 1970년 6월 3일 16:00 (1970년 6월 4일 06:00) | |
국 가 | 이탈리아 | 스웨덴 |
득 점 | 1 | 0 |
득점자 | 도멘기니 (10') |
1938년 대회 우승 이후 북한 쇼크 등을 딛고 32년 만의 2라운드 진출에 도전하는 이탈리아는 전반 10분 스웨덴 골키퍼의 알까기로 나온 도멘기니의 선제골을 잘 지키며 12년 만에 본선에 올라온 스웨덴을 1대0으로 제압하고 기분좋게 시작했다. 그리고 1950년 대회에서의 3대2 패배도 설욕했다.
2.3. 3경기 우루과이 0 vs 0 이탈리아
경기장 | 에스타디오 콰우테모크 푸에블라 - 멕시코 | |
경기일[A] | 1970년 6월 6일 16:00 (1970년 6월 7일 06:00) | |
국 가 | 우루과이 | 이탈리아 |
득 점 | 0 | 0 |
득점자 |
월드컵 우승 2회를 기록한 국가들의 맞대결은 수비적인 플레이 끝에 0대0 무승부로 끝났다. 경기 후 관중들은 지루한 경기를 한 양 팀 선수단에 야유를 쏟아냈다. 무승부로 마친 우루과이와 이탈리아는 각각 승점 3점으로 조 1위와 조 2위를 나눠가지게 되었다.
2.4. 4경기 스웨덴 1 vs 1 이스라엘
경기장 | 에스타디오 루이스 도살 톨루카 - 멕시코 | |
경기일[A] | 1970년 6월 7일 16:00 (1970년 6월 8일 06:00) | |
국 가 | 스웨덴 | 이스라엘 |
득 점 | 1 | 1 |
득점자 | 투레손 (53') | 슈피글레르 (56') |
스웨덴은 반드시 잡아야했던 상대인 이스라엘을 상대로 후반 8분 투레손의 선제골로 앞서갔지만 3분 뒤 이스라엘의 슈피글레르에게 빨래줄같은 중거리슛으로 동점골을 실점하며 승점 1점을 잃었다. 이스라엘은 월드컵 본선 첫 득점과 함께 첫 승점의 기쁨을 맛보게 되었다. 결국 승부가 갈리지 않으며 양팀은 최종전에서 각각 우루과이와 이탈리아를 상대로 2점차로 이겨야 자력으로 8강에 갈 수 있는 상황이 되었다.
2.5. 5경기 우루과이 0 vs 1 스웨덴
경기장 | 에스타디오 콰우테모크 푸에블라 - 멕시코 | |
경기일[A] | 1970년 6월 10일 16:00 (1970년 6월 11일 06:00) | |
국 가 | 우루과이 | 스웨덴 |
득 점 | 0 | 1 |
득점자 | 그란 (90') |
자력 8강 진출을 위해선 2골 차 이상의 승리가 필요했던 스웨덴은 우루과이의 거센 저항에 득점없는 경기가 이어지다가 종료 직전 그란의 극적인 헤딩 결승골로 일단 희망의 불씨는 살렸다. 그러나 우루과이를 골득실로 뒤집지 못해 다음날 이스라엘이 이탈리아를 1:0으로 이겨야만 8강에 갈 수 있는 좋지 않은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이스라엘이 2:1로 이길 경우 추첨을 통해서 이탈리아나 스웨덴 중 8강 진출팀을 정해야하고, 2골 이상 실점하고 1점차로 이길 경우 이탈리아 진출, 이스라엘이 2점차로 승리하면 이스라엘이 조2위 8강 진출이 되며 3점차 이상으로 이길 경우 이스라엘이 조1위가 되는 상황이 되었다. 우루과이는 최소 조2위는 확보하며 8강 확정. 이때는 히혼의 수치 이전이라 조별리그 최종전 동시에 열리는 그런건 없었다.
2.6. 6경기 이스라엘 0 vs 0 이탈리아
경기장 | 에스타디오 루이스 도살 톨루카 - 멕시코 | |
경기일[A] | 1970년 6월 11일 16:00 (1970년 6월 12일 06:00) | |
국 가 | 이스라엘 | 이탈리아 |
득 점 | 0 | 0 |
득점자 |
패하지만 않으면 8강이 확정되는 이탈리아는 일방적인 경기에도 득점없이 0대0으로 비기며 단 1골만 넣고 2라운드에 올라가는 기록을 세웠다. 1938년 우승 이후 32년 만의 월드컵 2라운드 진출에도 성공했다. 월드컵에 처음 출전한 이스라엘은 강팀들 틈바구니 속에서도 선전했고 8강 희망도 남아있었지만 아쉽게 짐을 싸게 되었다. 이와 함께 스웨덴의 본선 진출 시 2라운드 100퍼센트 진출 기록도 여기서 마감하였다.
2.7. 2조 총평
유로대회에서 우승하며 오랜 부진을 말끔하게 씻은 이탈리아, 코파아메리카의 전신인 남미 챔피언십 1967에서 우승하며 역시 오랜 침체에서 벗어나 승승장구하고 있던 우루과이, 월드컵에 올라오기만 했다하면 2라운드는 무조건 밟았고 출전한 최근의 3번의 대회에서 모두 4위 안에 입성한 스웨덴까지. 네 나라 중 세 나라가 월드컵 결승 진출 경험이 있고 지난 8번의 대회 중 4번의 우승팀이 이탈리아와 우루과이에게서 나왔기 때문에 이 당시만 해도 40년 월드컵 역사 이래 최고 죽음의 조였다. 더욱이 브라질, 이탈리아, 우루과이 모두 유력한 우승후보로 뽑혔기에 이 대회에서 줄리메컵의 소유자가 결정날 가능성이 매우 높았고, 그 중 유력 후보가 둘이나 속한 조였다. 그래서인지 모든 나라들이 처절하게 진흙탕 싸움을 했던 피터지는 조였는데, 그 때문인지 여섯 경기에서 총 여섯 골밖에 나오지 않았다. 정확히 경기당 1골. 다른 조에서 한 경기에 나온 득점이 조 전체에서 겨우 터진것으로, 아직도 역대 월드컵 최소 득점 조다. 서로 간에 눈치 싸움이 워낙 심했던지라 카테나치오 시스템을 보여준 이탈리아는 물론이고 우루과이, 스웨덴까지 수비전술로 일관했다. 아시아 소속으로 첫 월드컵 무대를 밟은 이스라엘도 나머지 세 나라가 워낙 강력했던 탓에 우주방어를 시행, 네 나라 모두 수비전술로 일관한 유일무이한 조이기도 했다. 덕분에 아주 치열할 거란 예상과는 다르게 무기력한 경기들이 이어진 조가 되었다.(물론 전술이 수비였을 뿐 엄청난 싸움이었다.)첫 경기에서는 우루과이가 이스라엘을 2:0으로, 이탈리아가 스웨덴을 1:0으로 잡으면서 예상대로 흘러가는 듯했다. 하지만 두번째 경기에선 2조 최고의 매치 우루과이:이탈리아가 붙었는데 서로 수비적으로 일관한 탓에 제대로 된 흐름이 나오질 못했고 관중들의 야유가 이어졌다. 결국 두 팀 모두 기대 이하의 경기를 펼치며 0:0 무재배. 스웨덴 또한 승점 상대였던 약체 이스라엘을 상대로 1:1로 무재배하며 기대 이하의 경기력을 보여주었고, 이로써 상위 2팀 1승 1무, 하위 두팀 1무 1패를 기록하며 일찍 승패의 향방이 갈렸다. 마지막 경기에선 경기 내내 무기력한 모습을 보여주다 막판 일격으로 스웨덴이 우루과이를 1:0으로 눌렀고 이탈리아가 이스라엘을 상대로 최악의 삽질을 하며 2경기 연속 무득점 무재배를 기록했다. 특히 이탈리아는 겨우 한 골 넣고 1위를 차지했다!!! 2위 우루과이 또한 1승 1무 1패 2득점 1실점. 3위 스웨덴 1승 1무 1패 2득점 2실점, 4위 이스라엘 2무 1패 1득점 3실점으로 끝났다. 겨우 한두골씩 넣고 올라간 이탈리아와 우루과이에 대한 비난은 엄청났으며, 기대 이하의 실력을 보여준 탓에 우승컵은 커녕 8강전이나 제대로 할 수 있겠느냐는 비아냥을 동시에 받았지만 결국 둘 다 일을 냈던 걸 생각하면 뭔가 단단히 꼬였던 조였다.
[A] 괄호 안은 한국시간[2] 1958년과 1962년 모두 8강에서 개최국 스웨덴과 칠레에 져 탈락했다.[A] 괄호 안은 한국시간[A] 괄호 안은 한국시간[A] 괄호 안은 한국시간[A] 괄호 안은 한국시간[A] 괄호 안은 한국시간[B] 이 대회에선 득실차 제도는 있었지만 다득점 제도가 없었기에 승점과 득실차만 같으면 다득점과 상관없이 추첨으로 순위를 정해야 했다. 다득점 제도가 있었더라도 소련이 멕시코보다 1골을 더 넣었기에 소련이 1위, 멕시코가 2위가 되는 것은 똑같았다. 참고로 다득점 제도는 다음 대회인 1974년 월드컵부터 도입됐다.[B] [A] 괄호 안은 한국시간[A] 괄호 안은 한국시간[A] 괄호 안은 한국시간[A] 괄호 안은 한국시간[A] 괄호 안은 한국시간[A] 괄호 안은 한국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