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삼국지 가후전의 등장인물. 가후와 같은 염충의 문하 출신으로 등장하며[1], 황건적 토벌에 나서 위세가 줄어든 황건적 세력을 몰아붙여 영천 전체를 움직이게 만든 조조에게 큰 관심을 두고 있다고 나온다. 조조의 책사로 나오기 때문에 작중 내에서 활약은 상당할 듯.가후나 진규의 말에 따르면 재능은 있지만 주류가 되기엔 어긋난 인재만 골라모으던 염충의 떼써서 제자 맞이하기[2]를 안 당한 유일한 사람이라고 한다. 본인의 말에 따르면 사마휘의 수경장에 몸 담았던 적이 있었다는 것을 보면, 수경장과는 맞지 않아서 염충의 밑으로 들어간 듯 하다.
2. 상세
염충의 제자[3]로 가후와는 사형제 관계. 나이상 아주 어릴 때 염충 밑으로 들어와 가후와도 교분을 쌓은 듯하며 가후나 염충의 반응을 보면 아주 어릴 때부터 명석함을 인정받은 듯하다. [4]작중에서는 대단한 지략을 지닌 인물로 나온다. 조조가 영천의 황건적을 몰아넣고 싸워 민심을 얻은 일이 그가 노리고 한 일이라고 생각하며, 영천 지역에서 명성을 사 영천에 있는 수경장 출신인사들의 마음을 얻고자 한 일이라 예측한다. 그리고 조조와의 대면을 통해 자신의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확신, 조조를 주군으로 선택할 생각을 한다.
당초 황건적 토벌군은 황보력-황보숭의 양 군이 나뉘어 황건적의 후방 보급기지를 점령하러 갈 계획이었다. 어느 한쪽이 각개격파를 당하지 않도록 별동부대를 이끌고 양쪽을 적절히 지원해주는 것이 조조의 역할. 그러나 조조는 황보력은 황보숭을 일부러 필요 이상으로 적극 지원, 황보숭이 지나치게 빨리 진군하여 적진 깊숙이 고립되게 만들고 그 틈에 황건적 본진을 점령하여 명성을 떨칠 계략을 짜고 있었다.
그리고 희지재는 조조의 계략을 사전에 눈치챘을 뿐더러, 조조가 실패해서 궁지에 빠질 것까지 미리 간파, 진군하기 전날 밤 내기를 걸어 황보숭-황보력-조조 3군 중 제일 먼저 본진에 깃발을 꽂는 측이 이기는 것으로 하자고 제의한다.[5] 희지재가 내기를 걸든말든 당초 계획대로 움직여 황보숭을 적진 깊숙이 진군시키는 조조였지만, 고립된 황보숭이 무쌍을 찍어 적을 금방 몰살시키고 본진으로 금방 돌아와버리는 바람에 실패. 황건적 본진도 황보숭이 점령하고 깃발도 당연히 황보숭군이 먼저 꽂아 내기도 황보숭이 이기게 된다. 게다가 조조의 꿍꿍이를 눈치챈 황보숭이 조조를 위험인물로 판단, 정계의 거물인 조조의 할아버지와 척을 지는 한이 있어도 조조를 군법위반으로 죽여버릴 각을 세운다.
이때 희지재가 나서 "이 내기는 조조의 승리다"라고 선언. 황보숭군 깃발이 제일 먼저 꽂혔는데 어째서 조조의 승리냐는 질문에 깃발을 자세히 보라고 한다.[6] 실은 내기가 벌어졌던 그날 밤 희지재가 몰래 황보숭군 깃발을 바꿔치기해 놓은 것. 실제로 깃발을 내려 확인해보니 조조의 성인 조 자가 빼곡히 적혀있었다. 즉 그 깃발은 내기가 벌어질 당시 조조군에 있었던 깃발이니 내기는 조조의 승리라고 볼 수 있다는 것. 희지재는 어차피 열렬한 형 빠인 황보력은 내기에 승리해 형을 이겨먹을 생각이 없었으니 빼도 되고 내기에 이기려면 황보숭만 적극 지원해도 되지 않았겠느냐, 단지 전력을 다해 황보숭을 돕고자 한 말장난 내기였을 뿐인데 황보숭이 예상보다 너무 빨리 진군해버려 실수를 한 거지 악의가 있었던 건 아니라고 둘러댄다. 황보숭도 이게 희지재가 사전준비한 헛수작이라는 것은 눈치챈 듯하나, 조조의 행동에 변명거리가 생긴 이상 조조를 죽일 명분이 없어 조조를 살려두기로 한다. 즉 희지재는 조조를 살려냈을 뿐 아니라 향후 주군으로 모실 조조에게 목숨빚을 지움으로써 확실한 눈도장까지 찍고 발언권을 얻은 것.[7] 심지어 이 모든 짓을 말장난 한번 쳐주고 깃발 하나 바꿔치기하는 걸로 해냈다! 더군다나 이는 조조의 그릇과 속셈을 다 알아보고 황보숭의 실력까지 정확하게 파악했기 때문에 할 수 있었던 것이므로 안목이 대단하다고밖에는 할 수 없다. 가후는 이 모든 사태를 지켜보며 '그새 어엿한 한 명의 군사가 되었다'고 평한다.
이후 스승인 염충에게 신나게 쿠사리를 먹은 후[8] 가후와 술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눈다. 황보숭의 그릇을 재볼 생각이었냐는 희지재의 질문에 가후는 그렇다고 하고 능력이 있는 건 맞지만 체면이고 뭐고 막 나갈 만큼 절박한 사람은 또 아니라 자기 성향에 맞지 않는다고 대답. 또한 조조에게 무엇을 기대하고 있냐, 조조가 나름 능력이 있는 건 맞지만 빈틈이 너무 많은데다 이번 일로 예주 일대의 민심을 죄다 황보숭이 다 해먹게 됐는데 아무리 잠재력이 대단해도 이걸 메울 수 있겠냐는 가후의 질문에 희지재는 가능하다고 한다. 조조는 당장 감정적이고 성급해 보이지만 그 발상과 추진력이 범인의 것이 아니니 단점을 보완해줄 인재들만 모이면 게임 끝이며 이번에 실수한 것도 한때일 뿐이라는 것. 가후는 그 한때일 뿐이라는 게 무슨 뜻이냐고 물어보려 했으나 꽐라가 된 희지재가 뻗어버리는 바람에 물어보는 데 실패했다.
긴 갈색머리를 눈에 띄는 모양으로 반묶음하고 남은 머리칼 중 길게 늘어뜨린 양 옆머리의 끝을 방울달린 끈으로 묶어 장식한[9] 헤어스타일을 한 미형의 여성or여장남자[10] 캐릭터이며, 삼중 눈물점이 있다. 조조는 그의 이름을 명분(志)도 재능(才)도 놀잇감에 지나지 않는다고 풀이한다. 즉 이 이름은 가명일수도 있다. 만약 정말로 희지재가 가명이라면 설마...?[11] 참고로 5부에서 그림작가가 희지재의 컬러링을 바꾸기로 한건지 갈색 머리+녹안에서 금발에 가까운 옅은 갈색 머리+자안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5부에서도 조조의 참모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희지재가 조조를 따르기로 결정한 이유는 단점은 많지만 그 단점을 보완해줄 인재들만 갖춰진다면 천하를 뒤흔들 수 있는 잠재력을 갖춘 인물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토벌전으로 인해 예주의 민심이 황보숭에게 돌아섰지만 그건 한때일 뿐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염충은 조조를 기회만 잘 탄 애송이로 보고 있고 가후 역시 광종 토벌전에서 조조가 저지른 스스로의 목을 조를수도 있었던 엄청난 실수 때문에 좋게 보지 않는다. 그 외에 희지재와 진궁을 제외한 다른 책사들도 조조를 높게 평가하지 않는다.
여담으로 원래 희지재라는 인물이 연의에서 아예 등장도 못 했다는 점과 정사 삼국지에서도 그다지 높은 비중을 지니지 못한 인물[12]이었다는 점을 고려해봤을때, 연의와 정사를 합친 것보다 훨씬 더 높은 비중과 활약상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는 진규와 통틀어서 이 작품에서 확실히 재조명된 케이스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
동탁이 가후의 대계를 벗어나 황실을 끼고 권신 놀이를 하는 쪽을 택하자 가후는 자신이 천하에 더 큰 혼란을 풀어놓았다고 좌절했는데, 그런 가후 앞에 오래간만에 나타난다. 이 모든 일이 자신의 책임이라고 자책하는 가후를 질타하면서 천하는 '한 사람'의 힘만으로 이래저래 되는것이 아니며 앞으로의 난세 또한 위대한 한 사람의 힘으로 바로잡을 수는 없다 말하며 이제부턴 이 흐름을 기다려온 재사들을 끌어모으겠다고 위로 겸 도전장을 내민다.
113화에서 곽도의 입에서 곽가라는 단어가 나오면서 희지재=곽가가 확정되었다. 곽씨 가문의 기대를 받던 곽도의 수경장 입학 시험에 몰래 따라가서 13살에 어린 나이에도 역대 최연소로 합격한 과거가 있으며, 이후 남장을 하면서 목욕 등 곤란한 상황에선 곽도의 도움을 받았고 7살 연상인 차석 순욱보다 뛰어난 성적으로 수석을 도맡았다. 순욱의 합격이 남다른 재능 때문이라는 의견에 맞서 모든 결과를 재능 탓으로 치부하는 점을 비판하는데, 비판당한 세 명은 자신보다 한참 어린 희지재에게 논쟁에서 패배한 것이 부끄러워 수경장을 나오지만, 그 전에 희지재를 구타해 얼굴이 곤죽이 된다. 아무리 노력해도 여자라고 소용 없다는 말들이 싫었기에 남자로서 노력만 하면 되는데도 재능 운운하는게 싫었다고. 본인이 원하는 것은 그저 남들과 동등한 위치에서 평가받는 것이기에 여자인 것을 숨기고 다니는데, 이후 몸이 자라며 더이상 남장을 할 수 없는 상황이 되기 전에 수경장에서 졸업하는 것이 목표이기에 졸업을 앞두고 무리한다. 자신의 졸업이 걸린 시험의 마지막 상대가 하필이면 곽도였고, 곽도는 지면 2학년으로 강등될 상황이었다. 궁지에 몰린 곽도가 논쟁에서 이기기 위해 희지재의 성별을 폭로하며 둘의 사이는 금이 가게 되고, 희지재는 다음 날 수경장을 떠난다. 이후 염충의 제자가 되고 조조와 뜻을 같이하며 지금에 이른 것이다.
조조에게 곽도를 천거하는 것을 보면 아직 곽도에 대한 정은 남아있는 것으로 보이나, 곽도를 대할 때의 차가운 표정을 보면 애증인지 혐오인지 구분하기 어렵다. 어쨌든 희지재의 요청을 곽도는 거절하고 이는 순욱을 포함한 다른 수경장 출신 또한 마찬가지이며, 이들은 조조보다 원소를 더 높게 평가한다. 곽도는 원소가 반동탁 세력의 중심으로 떠오른 반면 조조는 동탁에게 아부하는 소인배라는 평판이 있기 때문이며, 순욱은 원소는 이미 동탁과 척을 졌으나 조조는 진심으로 동탁을 따르는건 아니지만 만에 하나 정말 마음이 변해 동탁에게 붙을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후 조조가 의도적으로 단검을 떨어뜨려 동탁 암살에 실패하는 모습을 보이며 조조의 기지에 감탄하고 조조를 고른 자신의 선택이 틀렸지 않았음을 확신한다. 한편으로 반동탁의 수장 격인 원소의 밑으로 들어가라고 조조에게 조언한다.
그리고 마침내 반동탁연합이 일어나자 예주의 민심이 황보숭에게 돌아선 것도 한 때라는 말의 진의가 드러난다. 예주 일대가 동탁군에게 약탈을 당해 백성들의 원한이 커진 상황에서, 황건적의 난 당시 자비를 보인 황보숭보다는 무자비하게 적을 짓밟은 조조쪽이 복수심에 불타오르는 백성들의 지지를 얻어낸 것이다. 진궁은 이 책략을 빌려 기병으로 서영을 유인하고 복병으로 후퇴하게 만든 뒤, 도망치는 적을 복수심에 불타는 농민군으로 저지해서 큰 피해를 준다.
3. 이야깃거리
29화의 조조와 희지재의 대화장면이 2초짜리 애니화한 팬도 있다. #[1] 다만, 가후가 수학할 당시에는 어린 나이였던 것으로 나온다.[2] 제자로 점찍은 사람에게 다음 제자 맞이할 때까지만 제자 하라고 떼를 써서 제자로 맞이했다.[3] 본디 사마휘(수경선생)의 제자였지만 사마휘와 뜻이 맞지 않았던지, 아니먼 다른 사유가 있었던건지는 몰라도 사마휘의 휘하를 떠나 염충에게 직접 찾아왔다고 한다. 참고로 가후와 진규의 대화로 보아 염충에게 직접 찾아와 제자로 받아달라고 한 사람은 희지재가 처음이라고 한다. 덤으로 가후가 처음 희지재를 만났을 때는 어린아이였다고 하니, 현재 시점의 희지재는 가후와 처음 만난 이후로 꽤 세월이 지난 뒤의 희지재인 듯 하다.[4] 여담으로 처음 3부에서 얼굴을 드러냈을 때 가후를 보고 오랜만에 만났는데 추억에나 잠겨있을 분위기는 아니게 됐다라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때 가후가 황보력에게 욕을 먹느라 분위기가 험악해서...[5] 사실 내기 자체는 황보숭이 가후를 꼬시기 위해 먼저 건 것. 즉 이 둘의 내기였는데 희지재가 수를 써 조조까지 내기에 던져넣는다.[6] 몇 달 내내 전쟁터에 있었던 군기가 어떻게 저렇게 깨끗하고 때깔이 곱겠냐고 했다.[7] 원래 조조는 희지재를 딱히 믿지는 않았고 좀 께름칙해했으나 이 사건으로 목숨을 빚진 후 희지재의 말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8] 염충은 희지재와 가후의 재능을 아깝게 여겨 황보숭에게 소개시켜 줄 생각이었는데 희지재는 조조에게, 가후는 동탁에게 정신이 팔리는 바람에 다 망했다고 욕을 욕을 한다.[9] 덕분에 그녀가 등장할 때마다 머리카락을 묶은 방울끈이 흔들려서 나는 방울 소리가 등장하는 빈도가 제법 높다. 어쩌면 컨셉일지도.[10] 아직 확실히 밝혀지지 않았다. 하지만 여자일 가능성이 높다고 점쳐지고 있다.[11] 정사에서 희지재와 곽가 두 사람 모두 비슷한 행보를 걷고 있는데 두 사람 모두 순욱의 추천으로 조조 휘하에 출사했으며 둘 다 조조의 책략 담당이었는데다 둘 다 요절했다는 점까지 똑같다. 결정적으로 둘 다 출신지가 예주 영천군으로 같다. 동일인으로 재창작되기에 떡밥이 충분한 셈. 물론 어디까지나 추측일 뿐이니 성급하게 확정지을 수는 없지만 만약 희지재 = 곽가라면 이후 조조와 장수가 맞붙은 양성 전투가 상당히 재밌어진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가후를 압도할 정도의 대단한 포텐을 가지고 있어보였던 희지재/곽가였지만 결국은 사형한테 발려서(...) 주군인 조조의 목숨이 몇번이나 위태롭게 만든 허당(...) 캐릭터일수도 있다. 하지만 결국엔 가후도 조조를 주군으로 삼으면서 경기에서는 졌지만 승부에서는 이겼다.[12] 그래도 재능이 뛰어나다는 건 확실히 부각되어 기록되긴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