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0-30 01:36:53

후안 페르난도 에르모사

주의. 사건·사고 관련 내용을 설명합니다.

사건 사고 관련 서술 규정을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파일:Juan-Fernando-Hermosa.jpg

Juan Fernando Hermosa
1976. 2. 28 ~ 1996. 2. 27 (향년 19세)

1. 개요2. 생애3. 살인4. 체포5. 재판6. 최후

1. 개요

공포의 아들(El Niño del Terror)

에콰도르 역사상 최연소 연쇄살인마. 15살 밖에 안된 나이에 22명을 살해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그리고 본인 역시 끔찍하게 목숨을 잃는 실로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보통 연쇄살인마들이 노약자나 어린이, 여성을 범행 대상으로 삼는 것과는 다르게 후안에게 살해당한 피해자들은 전부 성인 남성이었다는 점이 특징.

2. 생애

후안은 1976년 2월 28일에 태어나 올리보 에르모사와 줄리아 아만다의 아들로 입양되어 키토로 이사하게 된다. 그의 아버지는 다른 지방에서 일을 하느라 집을 비우는 일이 잦았고 어머니는 주부였는데 관절염을 앓고 청각장애를 가지고 있었다.

15살이 된 후안은 시내 오락실에 놀러 가 친구들이랑 어울렸고 거기 있는 또래 친구들 10명이랑 갱단을 조직하게 된다. 갱단의 리더가 된 후안은 친구들과 무리 지어 시내 나이트클럽과 바를 들락날락거렸고 가정집에 침입해 강도짓을 저질렀다.

3. 살인

1991년 11월 21일, 후안과 친구들은 나이트클럽에서 나와 택시를 잡았다. 택시가 목적지에 도착하자 후안은 권총을 꺼내 택시기사 머리에 방아쇠를 당겼다. 택시기사는 그 자리서 즉사했고 친구들 중 한 명이 택시를 몰고 키토 남동쪽 계곡에 시신을 유기했다. 다음날 아침 경찰에 의해 시신이 발견됐다. 그들은 훔친 택시를 강도짓한 물건을 실어 나르는데 이용했다.

일주일 후, 후안은 친구들을 데리고 단골 미용실에 방문했다. 미용실 원장 찰리는 동성애자였고 트랜스베스티잇 이었다. 그날 저녁 찰리는 후안과 친구들을 자신의 집으로 초대해 함께 술을 마셨다. 분위기가 무르익어가던 중 가볍게 언쟁이 시작됐고 열 받은 후안은 권총을 꺼내 찰리를 위협했다. 찰리는 살려달라고 애원했지만 후안은 가차 없이 그에게 5발의 총알을 쏴 죽여버린다.

이후, 1991년 11월부터 1992년 1월까지 에콰도르 키토 북부지역에서 택시기사와 동성애자들이 연이어 살해당했다. 덕분에 키토 북부지역을 다니는 택시기사와 동성애자들은 공포에 떨어야만 했다. 경찰은 키토 시내를 불안에 떨게 만드는 연쇄살인범을 잡기 위해 특별수사팀을 구성했고 마침내 결정적인 단서를 확보했다. 후안과 같이 시내에서 도둑질하던 청소년들을 붙잡게 됐는데 그 청소년들이 연쇄살인사건과 관련됐다는 걸 알게 됐고 그 중심에 후안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됐다.

4. 체포

1992년 1월 9일, 후안의 거주지를 파악한 경찰은 그를 잡기 위한 작전을 펼쳤다. 오전 3시 경찰특공대가 에르모사를 체포하기 위해 그의 집을 포위했다. 그 시각 그는 집 밖이 어떤 상황인지 모른 채 깊은 잠을 자고 있었다. 경찰은 창문을 통해 후안의 방으로 진입했다. 경찰은 분명 후안이 그 방에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그 방엔 그가 없었고 그의 친구들이 자고 있었다. 그는 어머니의 방에서 자고 있었다. 경찰의 인기척에 깨어난 후안은 곧바로 권총을 집어 들어 경찰들에게 총을 쐈고 교전이 시작됐다. 후안은 경찰들에게 수류탄을 던졌고 폭발로 인해 경찰 2명이 부상당하고 집 외벽이 무너졌다. 총격전이 벌어지는 가운데 그의 어머니는 총알 여러 발을 맞고 현장에서 사망했다. 후안은 이성을 잃은 채 분노하다가 15분간의 총격전 끝에 제압당했다.

같은 날 아침 후안은 구금시설로 넘겨졌고 사람들은 도시를 떠들썩하게 만든 연쇄살인범이 15살 청소년이었단 사실에 놀랐다. 연쇄살인범이 체포됐다는 소식에 기자들이 몰려왔고 후안이 인터뷰 때 처음 내뱉은 말은 이렇다.
"나는 후안 페르난도 에르모사고 2월 28일 날 정확히 16살이 된다는 걸 밝히고 싶다"
후안의 진술에 따르면 처음부터 살인할 생각이 없었고 그들에게 가만히 있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거라 했지만 그들이 권총으로 위협했고 랜치로 날 때리려고 했기 때문에 먼저 쏴 죽였다고 했다. 이러한 범행들을 통해 후안은 공포의 아들이라는 악명을 얻게 된다.

5. 재판

후안 페르난도 에르모사는 22명을 살해한 혐의로 징역 4년을 선고받는다. 징역 4년형은 에콰도르 형법이 미성년자에게 선고 가능한 최대 형량이었다. 하지만 수감되는 곳 마저 교도소가 아닌 소년원이었다. 소년원에 들어간 후안은 그곳에서도 리더가 되어 왕 노릇을 했다. 후안은 자신이 석방되면 자신에게 해를 끼친 모든 사람들에게 복수를 할 것이라 다짐했고 탈옥을 계획했다.

1993년 6월 17일, 후안은 탈옥을 실행해 옮겼다. 권총으로 소년원을 경비하던 경찰들을 위협해 소년원 아이들 10여 명과 함께 탈옥했다. 그들을 막으려고 하던 경찰 한 명은 후안이 쏜 권총 5발을 맞고 사망했다. 소년원을 탈출한 후안은 콜롬비아로 피신했지만 얼마 못 가 다시 잡혔다.

1996년 1월, 남은 형기를 모두 마친 후안은 석방되었고 양아버지가 있는 지방으로 갔다. 경찰은 후안을 특별히 감시했는데 그가 하는 일과 가는 곳을 감시하고 보고서를 작성했다. 후안을 술집이나 매춘업소에서 자주 목격했다는 증언은 있었지만 양아버지 보호 아래에 별 사고 없이 지내고 있었다.

6. 최후

1996년 2월 28일, 후안이 20번째 생일을 맞이하는 날이다. 하지만 이틀 전 술집에 있었던 모습이 후안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후안은 자신의 생일날 강가에서 싸늘한 시체로 발견되었다. 시신은 매우 처참하게 훼손된 상태였는데 후안의 얼굴은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난도질당하고 곳곳에 총알 구멍이 뚫려있었다. 몸에도 칼자국과 구타의 흔적이 남아있었고 양손은 철사로 결박돼있었다. 경찰은 후안의 지갑 속에 있던 신분증을 통해서 신원을 확인했고, 그의 아버지를 통해 최종적으로 신원을 확인했다.

후안을 죽인 사람의 신원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아마도 그에게 살해당한 희생자 유가족들의 복수라는 설이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