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1891년 8월 30일 ~ 1977년 12월 20일 (향년 86세)
제1차 세계 대전에서 활약한 영국의 군인. 전장에서 우연히 마주친 히틀러를 살려주었단 이야기로 유명하다.
2. 어린 시절
헨리 텐디는 영국 웨스트미들랜즈주 코번트리에서 전직 군인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호텔의 보일러 종업원 일을 할 때까지, 어린시절의 일부를 고아원에서 보낸다.3. 히틀러 일화
그는 1차대전 당시 일등병으로 영웅적 행동으로 빅토리아 십자무공훈장을 수여받은 뛰어난 군인이었다. 빅토리아 십자무공훈장은 영국군 최고 무공훈장으로 현재까지도 받은 사람을 다 합쳐봐야 그 수가 1300여명에 지나지 않는 영국군 희대의 무공훈장이다. 근현대 영국군이 수백만의 군인을 동원해서 수많은 전쟁에 참전한 것을 생각해보면 그 가치는 엄청나다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는 그보다는 그가 구해준 병사 하나로 유명해졌다. 그는 1차 세계대전에서 전투 중 한 독일군 병사와 맞이했는데, 부상을 입어 무기도 제대로 들지 못하는 그 병사를 보고 그는 신사도를 발휘해 그 병사를 살려주었는데, 그 병사가 1차대전에서 끝까지 질기게 살아남아 그에게 이 얘기를 영국 정치가 네빌 체임벌린에게 전했다고 한다.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병사에게, 독일의 퓌러 아돌프 히틀러가 감사를 전한다고.
관련기사.그러나 그는 그보다는 그가 구해준 병사 하나로 유명해졌다. 그는 1차 세계대전에서 전투 중 한 독일군 병사와 맞이했는데, 부상을 입어 무기도 제대로 들지 못하는 그 병사를 보고 그는 신사도를 발휘해 그 병사를 살려주었는데, 그 병사가 1차대전에서 끝까지 질기게 살아남아 그에게 이 얘기를 영국 정치가 네빌 체임벌린에게 전했다고 한다.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병사에게, 독일의 퓌러 아돌프 히틀러가 감사를 전한다고.
이것이 알려진 후, 그는 주변에서 엄청난 비난을 받았으며, 크게 괴로워했다고 한다. 만일 그가 순간의 양심으로 눈앞의 적군을 죽이지 않은 것이 사실이라면, 나치당의 비약으로 세계대전도 터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하지만 이건 결과론적인 이야기고 군인을 살려준 일화만 놓고보면 오히려 전쟁 중에도 인류애를 잃지 않는 훌륭한 군인의 이야기로 볼 수도 있다. 오히려 은혜를 원수로 갚은 히틀러가 나쁜 사람이며 따라서 헨리가 비난받을 이유는 없다.
그리고 나치당은 히틀러 개인이 처음부터 만들어낸 집단이 아니라 당시 바이마르 공화국에 잔뜩 있던 극우 단체들 중 하나였을 뿐이며, 패전과 대공황의 여파로 독일이 극단주의화, 우경화되는 것은 히틀러가 유도한 상황이 아니었다. 이때 히틀러가 죽었다 해도 독일에서 또 다른 독재자가 나타나 2차 세계대전을 벌였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결정적으로 이 이야기는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일단 히틀러는 해당 날짜에 휴가중이었기 때문에 텐디가 있었던 프랑스가 아닌 독일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히틀러는 텐디를 직접 만나거나 사진으로 본 것이 아닌, 기록화에 그려진 작은 얼굴만 보고 자신을 구해준 병사라고 인정했는데, 이 정도 수준으로 수많은 병사 중 한 명을 특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무엇보다 히틀러의 발언이 순수하지 않다는 것이 문제인데, 히틀러가 텐디의 이야기를 체임벌린에게 전한 시점은 뮌헨 협정 당시였고, 히틀러는 "그때 영국 군인(텐디)이 자신을 쏘지 않은 것은, 지금 양국이 평화협정을 맺으라는 신의 섭리다"라는 얼토당토않은 주장을 내세워 협정에 도장을 찍도록 유도하는 의도성 발언이었기 때문. 거기에 협정을 "우리 시대의 평화"라며 자신의 업적으로 포장하고 싶었던 체임벌린 역시 이 이야기를 퍼뜨린 덕분에, 결국 2차대전 발발 후 애꿎은 텐디만 욕을 먹게 된 것이 진실에 가깝다.
앞에 적힌 바와 같이 받기가 정말 어려운 영국 최고의 무공훈장인 빅토리아 십자무공훈장 수훈자이다. 텐디는 이프르 전투, 솜 전투, 파스샹달 전투 등 영국군이 참전했던 거의 대부분의 치열했던 전투들에 참가했으며, 훈장은 종전 두 달전인 1918년 9월 28일 프랑스에서의 활약으로 수훈받았다.